2022년 7월호

부동산, 김동연을 확장성과 시험대 사이에 놓다

1기 신도시는 여야 ‘표 싸움’ 치열하게 벌어지는 공간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2-06-2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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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파트 30년 이상 4%, 25~30년 66.5%

    • 신도시 주민 83.8% “재정비 필요”

    • 김동연 살린 ‘1기 신도시 특별법’

    • “다른 野 후보 말이었다면 안 먹혔다”

    • 양날의 검이 된 3기 신도시의 출현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청구 아파트 단지. [지호영 기자]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청구 아파트 단지. [지호영 기자]

    1988년 박승 당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5대 신도시 계획을 입안했다. 훗날 등장한 신도시들과 구별해 1기 신도시라는 명칭이 붙었다. 1기 신도시 입주가 시작된 건 1991년 9월이다. 경기 성남시의 분당신도시, 고양시의 일산신도시, 군포시의 산본신도시, 부천시의 중동신도시, 안양시의 평촌신도시에 29만2000여 가구가 입주했다. 수용 인구는 110만 명이 넘었다. 공동주택을 이토록 단기간에 대량 공급한 건 이때가 처음이다.

    1기 신도시는 수년 후 대부분 재건축 연한(30년)을 채우게 된다. 국토연구원이 지난해 말 내놓은 보고서 ‘올드 뉴타운(Old New-town) 쇠퇴에 대응한 대안적 접근: 1기 신도시 재고주택 관리를 중심으로’를 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1기 신도시에서 준공 30년이 지난 아파트는 1만4454채(4.0%)다. 25~30년에 해당하는 아파트는 24만3154채(66.5%)에 달했다.

    현행으로는 재건축 사실상 어려워

    그렇다 보니 주거환경 노후로 인해 주민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6월 9일 경기연구원은 3~4월 분당, 평촌, 산본, 일산, 중동 주민 500가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 ‘경기도민은 새로운 1기 신도시를 기대한다’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신도시 주민의 83.8%가 ‘거주 아파트의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으로는 중동 88.6%, 산본 86.7%, 일산 84.1%, 평촌 83.8%, 분당 80.4% 순이었다. 재정비 사업 방식 선호도에서도 재건축(48.4%)이 리모델링(35.1%)과 유지보수·관리(16.5%)보다 높았다.

    현재로는 1기 신도시 재건축이 사실상 어렵다. 재건축은 기존과 비교해 늘어난 주택을 일반에 분양해 여기서 얻은 수익으로 사업비를 확보한다. 그런데 1기 신도시들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도시 과밀을 막기 위해 만든 ‘지구단위계획’의 용적률 제한에 묶여 있다. 그러니 가구수를 늘리는 게 불가능하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정비계획 수립뿐 아니라 조합조차 세울 수 없다.

    이로 인해 정치권에서 내놓은 대안이 ‘1기 신도시 특별법’이다. 지구단위계획을 뛰어넘는 별도의 법을 만들어 용적률을 대폭 높여야 한다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1기 신도시 재정비사업 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 용적률을 상향 조정해 충분한 공급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도 “1기 신도시 재건축, 리모델링은 더디기만 하다”며 “일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측에서 “1기 신도시 재건축 문제는 부동산 태스크포스(TF)가 중장기 과제로 검토 중인 사안”이라고 밝히며 속도 조절에 들어간 듯한 뉘앙스를 보였다. 이에 1기 신도시 주민 사이에서는 ‘공약 파기’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앞선 국토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분당은 30년이 지난 아파트가 8223채(6.5%), 25~30년에 해당하는 아파트가 8만2917채(65.6%)로 노후화 속도가 가장 빨랐다. 일산은 30년이 지난 아파트는 179채(0.2%)에 불과했지만 25~30년에 해당하는 아파트는 6만570채(70.8%)에 달했다. 평촌은 30년이 지난 아파트가 4282채(5.2%), 25~30년에 해당하는 아파트가 4만2502채(52.1%)였다. 산본은 30년이 지난 아파트가 1770채(5.0%), 25~30년에 해당하는 아파트가 2만8268채(79.2%)였다. 중동은 30년이 지난 아파트가 없는 대신 25~30년에 해당하는 아파트가 2만8897채(79.7%)였다.

    지금 1기 신도시는 여야의 ‘표 싸움’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는 공간이다. 3월 9일 대통령선거와 6월 1일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나타난 표심의 양상을 보자.

    분당과 일산에서도 선전

    5월 13일 김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가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아파트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1기 신도시 특위 현장회의에서 노후된 아파트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김동연 캠프]

    5월 13일 김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가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아파트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1기 신도시 특위 현장회의에서 노후된 아파트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김동연 캠프]

    먼저 분당.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곳에서 18만3094표를 얻어 14만966표를 받은 이재명 전 민주당 후보를 따돌렸다. 지방선거에서도 김은혜 전 국민의힘 경기지사 후보가 14만622표를 받아 10만4254표를 받은 민주당 소속 김동연 당선인을 따돌렸다. 투표자 수가 8만 명 정도 줄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눈에 띄는 변화는 나타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자세히 뜯어보면 김 전 후보에게 아픈 대목이 있다. 김 당선인은 같은 당 배국환 성남시장 후보가 분당에서 얻은 표(9만8247표)보다 더 받았다. 반면 김 전 후보는 같은 당 신상진 성남시장 후보가 분당에서 얻은 표(14만7753표)보다 덜 받았다. 6000~7000명 안팎의 교차 투표가 있었다는 얘기다.

    일산동구의 표심은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엇갈렸다. 대선에서는 이 전 후보(9만6990표)가 윤 대통령(9만1849표)을 제쳤는데, 지방선거에서는 김은혜 전 후보(5만8884표)가 김동연 당선인(5만5015표)을 제쳤다. 단, 여기서도 분당과 마찬가지 양상이 나타났다. 김 전 후보는 같은 당 이동환 고양시장 후보가 일산동구에서 얻은 표(6만4212표)보다 적게 받았다. 김 당선인은 같은 당 이재준 고양시장 후보가 일산동구에서 얻은 표(4만9242표)보다 많이 받았다. 역시 6000~7000명 안팎의 교차 투표가 나타났다.

    일산서구는 대선 때 이재명 전 후보(9만9597표)가 윤석열 대통령(8만9677표)을 이긴 곳이다.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승리했다. 김동연 당선인(6만1038표)이 김은혜 전 후보(6만788표)를 간발의 차로 제쳤다. 김 전 후보는 이동환 고양시장 후보(6만6667표)보다 5800여 표 적게 받았고, 김 당선인은 이재준 고양시장 후보(5만4487표)보다 6500여 표 많이 받았다.

    평촌신도시가 속한 안양 동안구는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모두 민주당을 택했다. 대선에서는 이재명 전 후보(10만5221표)가 윤석열 대통령(10만2552표)을 이겼고, 지방선거에서도 김동연 당선인이 7만7230표를 얻어 7만4669표를 받은 김은혜 전 후보를 따돌렸다. 이곳의 경우 김 당선인은 같은 당 최대호 안양시장 후보(7만7742표)보다 512표 덜 받았으나, 김 전 후보가 같은 당 김필여 후보(7만6597표)에 비해 1928표를 까먹은 점에 비하면 손실 폭이 적었다.

    산본이 속한 군포는 이번 지방선거 최대의 이변을 연출한 지역이다. 군포시장 선거에서 하은호 국민의힘 후보는 겨우 1134표(0.89%포인트) 차로 한대희 민주당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군포가 보수정당 시장을 택한 건 2006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경기지사 선거에서는 김동연 당선인(6만5647표)이 김은혜 전 후보(5만8979표)를 비교적 여유 있게 이겼다. 군포는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전 후보에 1만4000표 이상 뒤진 곳이다.

    중동이 있는 부천에서 김동연 당선인(18만2163표)은 같은 당 조용익 부천시장 후보(18만5표)보다 2000표 넘게 더 받았다. 김은혜 전 후보(15만4942표)는 같은 당 서영석 부천시장 후보(16만2895표)보다 7000여 표 덜 받았다. 대선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전 후보에 6만 표 이상 뒤졌다.

    개인 경쟁력의 힘

    정리하자. 분당은 국민의힘의 전통적인 강세 지역이다. 일산의 경우 동구와 서구 공히 현역 국회의원이 민주당 소속이지만, 이번에 치러진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크게 밀린 지역이다. 평촌이 있는 안양 동안구는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꼽히긴 하나 해마다 재건축 연한을 채운 아파트가 쏟아지고 있어 마냥 텃밭이라고만 마음 놓고 있기는 어려운 곳이다. 군포는 기초단체장은 국민의힘을 택하면서도 광역단체장으로는 김 당선인을 찍었다. 부천에서도 김 당선인이 기초단체장 후보보다 많은 표를 받았다. 전반적으로 김 당선인의 득표력이 돋보였다.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인물 경쟁력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 당선인은 정통 경제관료로 잔뼈가 굵고 스토리까지 갖춘 인물이다. 이런 후보가 민주당 안에 없다”면서 “민주당 조직력이 작동했다면 경기도 기초단체장을 국민의힘에 그렇게 많이 뺏기지 않았을 것이다. 김동연 개인의 경쟁력이 발휘된 결과”라고 말했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 역시 “보수우파 지지자의 상당수도 초선의원보다 경제부총리 출신이 경기지사감으로 적임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1기 신도시에서 관심 갖는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하려면 중앙정부와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집권여당 후보를 선출하는 게 맞는데도 1기 신도시 주민들이 이념과 정당을 넘어 객관적 평가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하나는 김 당선인 측이 전선을 흩트리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김 당선인은 이번 선거에서 지속적으로 1기 신도시 특별법 제정을 약속했다. 5월 9일 KBS 라디오에 나와서는 “국회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이기 때문에 (1기 신도시 특별법) 제정에 있어 저희가 잘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경기지사 경선 당시 한 캠프에서 활동한 여권의 한 전략통은 “경제관료 출신인 김 당선인이 그렇게 말하니 효과를 냈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1기 신도시 주민 사이에서도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컸는데, 만약 기존 민주당 정치인 출신 후보가 나와서 같은 말을 했다면 전혀 먹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동연이 부쩍 협치 강조하는 이유

    김 당선인의 임기 말인 2026년에는 1기 신도시에서 준공 30년을 넘은 아파트가 70.4%까지 늘어난다. 시간이 갈수록 1기 신도시의 경쟁력은 줄어들 공산이 크다. 약 20만 가구로 예측되는 3기 신도시는 올해 하반기에 본청약을 시작한다. 자칫 1기 신도시에서 볼멘소리가 더 커질 수 있다. 외려 3기 신도시 개발이 1기 신도시의 규제 완화를 촉진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이럴수록 야당 소속인 김 당선인은 중앙정부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 그가 부쩍 협치를 강조하는 데는 이런 저간의 사정이 자리한다.

    이것은 대권을 꿈꾸는 ‘잠룡 김동연’에게는 거대한 딜레마다. 전임 지사(이재명 민주당 의원)가 민주당 정체성에 어울리는 복지정책(기본소득, 기본주택)으로 자기 브랜드를 만든 데 비하면 김 당선인은 상대 정당 정체성에 어울리는 정책을 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좋게 보면 확장성을 증명할 기회이고, 나쁘게 보면 고약한 시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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