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호

이재명 "나도 두렵다. 법 집행기관이 공정하지 않다"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21-03-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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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적 풍요 최소한으로라도 함께 누려야

    • 금융 불공정이 부동산 시장 왜곡

    • 재산에 따라 범칙금 차등 둬야

    • 불로소득은 누군가 잃었다는 뜻

    • 주택정책 거주 여부가 제일 중요

    • 약자 편에 서는 독특한 정책들

    • 저에게 다른 일 맡겨도 되겠다는 분들 많이 늘어

    • 보수정당은 가짜 보수, 진보정당은 가짜 진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경제적 풍요를 일부가 독점하는 상황이 가장 불공정한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영철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경제적 풍요를 일부가 독점하는 상황이 가장 불공정한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영철 기자]

    포스트코로나 시대가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다. 3월 8일 현재 세계적으로 2억4900만회의 백신 접종이 이뤄졌다. 2월 26일 한국에서도 최초로 접종이 시작됐다. 방역 당국은 국내의 집단면역이 11월이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제 우리가 환호할 준비를 해도 될 것인가. 

    하지만 경제는 아직 백신 같은 강력한 대책이 준비되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우리 사회에 양극화를 심화했다. 코로나19 시대는 모두에게 왔지만 부자에겐 새로운 기회가 됐고, 빈자에겐 더 무거운 고통으로 다가왔다. 이에 정부는 4차 재난지원금으로 19조5000억 원을 마련해 385만 명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했지만, 일시적 방편이다. 

    이제는 양극화를 더 완화하고 사회적 약자를 더 보듬는 포용적 경제를 위해 불공정 과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에는 대중소 기업 상생과 관련된 입법안들이 줄지어 서 있다. 재난지원금의 선별·보편 지급, 금융 부동산 등 주요 경제정책,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의 영업제한 기준 형평성, LH 직원들의 땅투기 등 공정성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일들이 끊이질 않는다. 

    불공정 앞에 세대 간의 차이가 있을 수 없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특히 여기에 민감하다고 한다. 문성후 리더십중심연구소 소장은 한 칼럼에서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자)는 삼불(불의·불공정·불이익)을 결코 용납하지 못한다”라고 주장했다. 불황과 저성장, IT 영향이라고 한다. 

    경기도정을 이끌고 있는 이재명 지사도 공정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도정 슬로건이 ‘새로운 경기, 공정한 세상’이다. 더 공정한 사회로 가는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최근 경기도청 회의실에서 이 지사를 만났다. 이 지사는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로 생겨난 경제적 풍요를 일부가 독점하는 상황이 가장 불공정한 대표 사례라고 생각한다”며 “그것을 시정하는 것이 공정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지사의 이날 인터뷰 일부는 신동아 3월호(‘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소득論 재반박’ 참고)에 실렸다.




    경제적 풍요 최소한으로라도 함께 누려야

    -공정에는 여러 양상이 있다. 무엇이 가장 대표적 불공정이라고 생각하나. 

    “공정이라는 개념은 추상적이지만 기준선이 있는 상대적 개념이다. 이걸 자로 계량할 수는 없다. 다만 쉽게 표현하면 억울한 사람도 억울한 집단도 억울한 지역도 없는 그런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모두 욕망을 갖고 있고, 모두 만족할 수는 없다. 결국 공정의 기준선을 어디에 두느냐는 문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경제적 풍요를 (예외 없이) 최소한으로라도 함께 누리는 것이 (공정의) 제일 중요한 기준선 같다. 이미 우리 사회는 정치적 기본권이나 사회적 기본권은 어느 정도 확보했다. 그런데 인간 문명 발전이나 과학기술 발전 또는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로 생겨난 경제적 풍요를 일부가 독점하는 상황이 가장 불공정한 대표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시정하는 게 공정이다.” 

    -그런 불공정을 완화하는 정책으로 어떤 것이 있나. 

    “저는 경제적 기본권을 내세우고 있다. 양극화가 너무 심하고 결과 배분의 불공정도 너무 심화돼 있으니 이 경제적 풍요의 일부를 국민의 권리로 인정해 주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크게 기본소득, 기본금융(대출), 기본주택이 있다. 이들은 개인에게 풍요를 주는 동시에 저성장 경기침체를 이겨낼 수 있는 공정한 성장 정책이다.” 

    ‘경제적 기본권’의 사전적 의미는 국민의 생존에 필요한 경제적 조건의 보장을 국가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우리 헌법에도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천명하고 있으며, 적정임금·인간의 존엄성·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담고 있다. 국가는 이를 위해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 유지, 경제 민주화 등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돼 있다. 문제는 어떻게 어느 수준으로 이를 달성하느냐다. 기본소득은 이 지사가 논쟁을 주도하면서 이제는 야권에서도 주요 어젠다로 부상했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선거토론회에서도 기본소득이 주요 토론 주제가 될 정도였다.


    금융 불공정이 부동산 시장 왜곡

    -서민과 고소득층에게 똑 같이 돈을 주는 기본소득은 결국 서민에게는 불공정하고 반서민적이라는 주장이 있다. 

    “저는 기본소득을 자본주의 시각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 존속하고 지속적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융합적 경제정책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제일 큰 반론이 부자에게 돈을 주는 건 불공정이라는 지적이다. 일면은 맞다. 하지만 복합적으로 전모를 보면 다 지급하는 게 더 공정하다.” 

    이 지사는 피해를 본 소상공인 등에게 선별지원을 통해 더 두텁게 지원하는 게 공정하다는 말은 지출 측면만 본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인이 자선사업 할 때는 어려운 이에게 더 많이 지원하는 게 맞지만 공공정책 영역에서는 재정을 지출할 때 그 재원을 누가 만드느냐를 생각해야 한다. 수입과 지출 측면을 동시에 보자. 수입에 크게 기여하는 고액 납세자들을 다 빼고 세금 안 내는 사람만 골라서 지출을 하면 납세자의 반발이 생긴다. 부자들은 많은 세금을 내면서 사실 차별을 한번 당하는데, 경제정책에서 다시 배제되는 건 공평하지 않다.” 

    경기도가 재난지원금을 기한이 정해진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해 지역 소상공인의 매출을 높였듯, 기본소득은 수요를 창출해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될 수 있게 하는 융합적 경제정책이라는 것이다. 

    이 지사는 요즘 이에 덧붙여 기본금융(대출), 기본주택을 많이 강조하고 있다. 국가가 화폐에 권위를 부여해서 생기는 금융 이익을 특정 소수가 독점하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이 결국 부동산 시장까지 왜곡하고 있다고 한다. 

    “금융정책이 잘못돼 주택이 투기 수단이 되고 있다. 그 중에 제일 심각한 부작용을 빚고 있는 게 등록임대주택사업자 보호제도다. 임대사업자에게 감세 혜택을 주면 안 된다. 오히려 제재를 가해야 한다. 더욱이 돈 많은 사람이 다시 저리로 돈을 빌려서 투기에 이용하다 보니 자산에 거품(자산 버블)이 발생한다. 은행은 자산가나 고소득자를 고신용등급자로 분류해서 고액을 장기 저리로 대출해주지만 신용등급이 낮은 청년이나 서민에게는 돈을 잘 안 빌려준다. 이들은 카드론, 저축은행, 대부업체, 사채시장 등 제2,3 금융권에서 매우 비싼 이자를 내고 돈을 빌린다. 이건 정의롭지 않다. 불공정하다.”


    불로소득은 누군가 잃었다는 뜻

    -금융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난한 사람, 진짜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이 흘러갈 수 있게 해 주면 된다. 그 방법이 기본 금융, 기본대출이다. 금융이익이나 혜택을 모두가 누릴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금액은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을 수준의 1000만 원 이내 장기 저리로 빌려주되, 그 중에 발생하는 결손은 우리 공동체가 책임지는 방식이다.” 

    -부동산 값 상승도 자산 버블 영향이라고 보나. 

    “대표적인 자산 버블이 부동산과 주식에서 일어난다. 그래도 주식을 통해서는 기업 현장에 돈이 들어가니까 상관없다. 부동산 문제가 심각하다.” 

    -부동산 시장에서 바로 잡아야 할 가장 큰 불공정은 무엇인가. 

    “불로소득이 너무 많다. 합리적 수준의 지대는 인정해 줘야 하지만 불로소득은 없애야 한다. 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가 만들어 낸 건데 누군가가 불로소득을 얻는다는 것은 누군가가 잃는다는 뜻이다. 불로소득은 사람들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경제성장에도 장애 요인이 된다. 옛날엔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위장전입이 흔했는데, 지금은 투기 광풍으로 프리미엄을 얻을 수 있는 분양을 받기 위해 이사를 다닌다. 경기도가 위장전입과 청약 서류 조작 사례를 찾아내 형사처벌에 분양 취소까지 하자 벌어진 일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그대로 둬선 안 된다.” 

    -기본주택도 부동산의 불공정을 바로잡는 중요 수단인가. 

    “기본주택이야 말로 주택의 불로소득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길이다.” 

    기본주택은 무주택자가 적정 수준의 임대료를 내면서 평생 거주할 수 있는 고품질 장기 공공임대주택이다. 이 지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말 언급한 ‘평생주택’과 개념이 같다며 “경기도내 3기 신도시의 주택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로또 분양’을 막고 기본주택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2월 28일 SNS에서 주장했다.


    주택정책 거주 여부가 제일 중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월 25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경기도 기본주택’ 컨퍼런스 개막식에서 개회사를 했다. [뉴시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월 25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경기도 기본주택’ 컨퍼런스 개막식에서 개회사를 했다. [뉴시스]

    이 지사는 주택 정책을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구분해서 봤다. 첫째 집값이 과도하게 오르내리는 것을 통제하는 가격 통제 정책이다. 둘째 다주택 제재 등 보유주택수를 제한하는 정책이다. 셋째 거주 여부에 따른 보호와 제재다. 

    “이 가운데 대개는 가격 통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억누르려고 한다. 그러면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시장에서 풍선 효과가 생겨난다. 이제는 가격보다는 주택 수에 집중해야 되고. 다주택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거주 여부다. 주인이 직접 거주하고 있다면 다주택자라도 억압해선 안 된다. 대신 합당한 세금을 내게 하면 된다. 정상화 된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형성된 가격은 존중해 줘야 한다. 그게 시장을 지키는 일이다. 제가 이런 얘기를 했더니 ‘저 사람 빨갱이 아니네’라고 하더라. 저는 완전한 시장주의자다.” 

    이 지사는 의료, 교육, 안전, 문화예술 정책 등을 포괄하는 기본서비스라는 정책도 만들었다. 삶에 필요한 모든 공공서비스에 대해 최소한의 기본적 혜택을 보장해주려는 취지다. 

    이 지사는 지난해 ‘신동아’ 인터뷰에서 자신이 불공정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학을 가기 전까지는 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했다. 산재도 당하고, 장애인도 되고, 폭력도 많이 당하고, 돈도 많이 떼였다. 그게 제 운명인 줄 알았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개인의 운명이거나 본인이 부족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불공정의 산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좀 바른 세상, 공정한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인권변호사가 됐고, 시민운동도 했고, 도지사가 됐다.” 

    -어려서 겪은 불공정에 대한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머리로 배운 지식의 결과물이라기보다 삶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라 공정한 사회에 대한 열망이 컸던 것 같다. 제 스스로 또는 저의 가족들과 이웃이 현장에서 실제로 겪었던 일, 지금도 많은 사람이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한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정책을 만들거나 특별한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 특히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통해서는 언론 문제라든지 국가폭력 같은 불공정을 아주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제가 광주를 ‘사회적 어머니’라고 부른다. 그런 계기가 없었으면 제 개인의 안락함을 찾아서 살았을 것이다.”


    재산에 따라 범칙금 차등 둬야

    -보통 능력에 따른 보상과 성취를 공정이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현재 코로나19가 심화되면서 양극화나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는 상황에서는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고착할 수 있다고도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능력주의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려면 행정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우리는 보통 능력주의 측면에서 기회가 공정하면 공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신자유주의하고 맞물리면서 각 개인이 능력에 따라 취득한 것을 무제한으로 허용한다고 여긴다. 출발점의 공정성을 중시하는 게 신자유주의이기도 하다. 기회의 공정은 최종 목표는 아니고, 공정성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개인에 따라 그 기회를 활용하는 도구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 배분의 공정성도 중요하다. 세계적으로 포용국가, 포용 금융 얘기가 나온 것도 그런 이유다. 물론 결과 배분의 공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사회주의로 귀착될 수도 있다. 결국 출발지와 종착지 간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할 것이다.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평소 법 앞의 평등을 외쳤는데, 법 앞의 평등도 약자를 위해 조정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형식적 공정과 실질적 공정은 다른 것이다. 법 앞의 평등이 가끔씩 그런 논쟁에 노출된다. 예컨대 속도위반 범칙금은 똑같아서 공정해 보이는데 사실은 부자들 쪽에는 제재 효과가 별로 없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에겐 매우 큰 제재일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재산 상황에 따라 범칙금 액수에 차등을 두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사실 저도 그런 걸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지사는 우리 사회에 공정성이나 정의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진 이유를 저성장 사회에서 찾았다. 이런 사회에선 고도성장 사회보다 그만큼 개인에게 기회가 적게 돌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지사는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일화를 언급했다. 당시 젊은 층은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면서 북한 선수를 엔트리(선발선수)에 넣으면 남한 선수가 불이익을 받게 된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기성세대 다수는 통일문제나 민족 문제 앞에 선수 자리 몇 개로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는 젊은 층에게서 문화충격을 받았다. 이것이 고도 성장기를 거쳐온 기성세대와 저성장기의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는 청년세대의 차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정성의 기준도 상황에 따라서 바뀔 수밖에 없다. 실질적 형평이 중요하다. 이렇게 되려면 국가와 공동체의 역할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소위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에서 큰 정부로 서서히 옮겨갈 수밖에 없다. 국가 공동체가 더 세심하게 개인의 삶을 보살펴야 하는 상황이 오고 있다.”


    약자 편에 서는 독특한 정책들

    경기도에는 약자 편에 서는 독특한 정책이 많다. 경기 먹거리 그냥 드림 코너, 현장 노동자 휴게시설 개선, 대부업법 조정, 공정임대료, 청년기본소득, 기본주택, 외국인 노동자 주거환경 개선…. 

    -이런 정책의 목적은 결국 공정한 사회를 위한 것인가. 

    “공정한 사회라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고 수단이다. 최종 목적은 인간다운 삶, 공존하는 삶이다. 이런 삶을 위한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수단이 공정성이다.”
     
    경기 먹거리 그냥드림 코너는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당장의 생계가 막막해져 저지르는 ‘장발장 범죄’을 막기 위한 맞춤형 지원 정책이다. 지난 1월부터 성남, 광명, 평택의 푸드마켓 3곳에 마련된 코너에서 누구든 빵, 음료수, 마스크, 위생용품 등 2만 원 상당의 생필품을 무료로 가져갈 수 있다. 이 지사는 경기도 각 시군에 최소한 한 곳씩은 설치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것을 악용하는 이들이 있다. 실제로 한 지역 코너 관리자에 따르면 궁핍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센터에 들러 생필품을 그저 가져가는 사례가 제법 있다고 한다. 

    “이용자 가운데 10%만 정말로 궁핍한 이들이었다고 해도 이 제도의 취지는 달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코너 덕에 한 명이라도 ‘장발장 범죄’를 예방하고, 한 명이라도 목숨을 구했다면 그 90%가 가져간 물품은 결코 비싼 비용은 아닌 것이다. 이 코너는 최소한의 인간 존엄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다. 이것은 공정을 말하기 이전 단계인 인도적 문제다.” 

    -그냥드림 코너 한 곳에 들렀는데 관리자가 연락처를 기록하게 하고, 제품 고르는 방법도 직접 안내했다. 이용자가 매우 쭈뼛거리며 어색해했다. 이용자의 자존감에 상처를 덜 주는 방식이 필요할 듯하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이용자의 자존감이 훼손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해야 하는 것이 맞다. 사실 제일 좋은 방법은 무인 관리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지만, 연락처를 기록하는 것은 필요하다. 반복적으로 이용하는 이가 확인될 경우 그들을 기존의 복지제도에 연결해주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의 자존감을 높이는 경기도의 세밀한 정책은 청소년 급식카드 교체에서도 확인된다. 도내 청소년 7만5664명에게 급식카드를 지원하고 있으나 사용 가능한 곳 1만1500개소 가운데 8000여 곳이 편의점이라 컵라면 정도밖에 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경기도가 비씨카드 가맹점 15만4000여 곳 어디나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기존 카드가 급식지원용 카드임을 드러내는 디자인이라 그 ‘낙인감’을 없애기 위해 일반 체크카드와 같은 디자인으로 바꿨다. 또 1식에 4500원이던 지원급식비를 6000원으로 올렸고, 다시 7000원으로 올리는 절차를 진행중이다. 1회 사용한도도 8000원에서 1만2000원으로 올렸다. 

    -코로나19 영향이라고도 하는데 코로나블루, 외로움 같은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었다. 관련 정책이 있나. 

    “방역 초기에는 보건 측면만 강조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방역, 심리방역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경기도에서도 심리 방역을 위한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우울증인 코로나블루뿐 아니라, 우울이나 불안의 감정이 폭발하는 코로나레드 현상까지 나오고 있다. 보건, 경제, 심리 영역이 다 중요하지만 그동안 별로 집중하지 않았던 심리 방역에도 만전을 기해야 하겠다. 사람이 꼭 물질로만 사는 건 아니다. 요즘은 1인 가구 증가 등에서 알 수 있듯 삶 자체가 매우 고립화 돼 가기 때문에 외로움이나 배제감 같은 것이 정말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저도 두렵다, 법 집행기관이 공정하지 않다”

    -언론 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많이 나오고 있다. 공정성 제고 차원에서 언론에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나. 

    “언론은 대의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 중 하나다. 그래서 입법 사법 행정에 이어서 ‘제4부’라고 부른다. 대의민주주의에서는 대리인을 선정하고 대리 행위에 대해서 평가하고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정보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원래 언론들이 해왔다. 그만큼 언론은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언론이 왜곡된 정보, 소위 가짜 뉴스를 퍼뜨리면 이건 개인의 이익에 관한 문제가 아니고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대의민주 체제를 위협한다. 저는 이것이 함께 사는 공동체용 우물에 독극물을 푸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고의가 아닌 오보는 고치면 된다. 하지만 악의적 왜곡, 고의적 조작에 대해선 징벌적 배상을 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찰 개혁도 수사와 기소의 불공정성 때문에 시작됐다. 현재의 개혁은 어느 정도 완성됐다고 보나. 

    “제가 검찰이나 사법 개혁에도 매우 관심이 많고, 지난 대통령 선거 때부터 끊임없이 공수처 설치를 주장해왔다. 수사권 독립, 수사기관들 간의 상호견제 같은 것들을 중시했던 이유는 이들 사법기관이 우리 사회 구성원 간에 공정성을 확보하는 최후 보루가 되기 때문이다. 사법이 왜곡되면 공정질서 자체가 보장받을 수 없다. 법과 규칙은 각자가 인간으로서 갖고 있는 자유의 일부를 공동체 전체를 위해 조금씩 내놓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의 공정성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법의 제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힘 센 사람만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규칙을 지키는 이가 손해를 보는 사회가 된다. 그런데 있는 죄는 덮고, 없는 죄는 만들며,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나 권력에 따라 제재 양이 다른 게 현실 아닌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도 검사나 경찰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있다.”
     
    -죄를 짓지 않고도 두려워한다? 

    “저도 두렵다. 제가 한번 당했지 않나. 저는 공인으로 살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어떤 경우에도 꼬투리 잡히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정말 나름 철저히 관리해 왔다. 너무 열심히 관리하다 셋째 형님하고 부딪친 거다. 우리 셋째 형님이 정신질환도 있었지만, 시장의 친형으로서 부당한 권력 행사를 시도하다 공무원들과 충돌했고 제가 형님 편을 들지 않아서 갈등이 격화된 거다. 법은 원래 우리 모두를 편하게 하는 장치여야 하는데,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게 된 것은 이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사법권한을 공정하게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익이나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왜곡하지 못하게 하는 게 사법개혁의 중요한 과제다.” 

    이 지사는 3월 3일 국회의원들과의 정책협의를 위한 여의도 방문에서도 기자들의 질문에 “국가 질서 유지, 국민 인권 보장을 위해 제 기능을 하는 검찰로 거듭나게 하는 검찰 개혁 과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여권의 검찰 개혁에 반기를 들어온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3월 4일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하는 방향의 중대범죄수사청 입법 추진에 반대하며 사직했다. 윤 전 총장의 사직에 대해 이 지사는 한 언론에 윤 총장이 정치에 나설 것이라고 보고 합리적 경쟁을 하자는 뜻을 내비쳤다.


    “저에게 다른 일 맡겨도 되겠다는 분들 많이 늘어”

    -설 명절 즈음 SNS에 “정치라는 일이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만 때로 칼날 위를 걸으며 세상에 홀로 된 기분일 때가 많습니다”라는 글을 썼는데, 왜 그랬나. 지지자율이 높아져 기운이 날 것 같은데…. 

    “제가 정치한다고 가족이 고통을 많이 겪었다. 제 아내나 아들, 특히 어머니가 너무 고통스러워했다. 사실 평범한 사회인이었으면 겪지 않을 고통을 겪었다. 제가 성남시장이 된 이후 셋째 형님과 어머니의 불화가 있었고, 화해도 하지 못한 상태로 돌아가셨다. 작년 3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코로나19 때문에 명절 차례나 성묘도 가지 못해서 너무 서러웠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게 다 제가 정치를 하느라 벌어진 일이었다.” 

    -그래도 앞으로 정치를 잘 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지 않나. 

    “보상이야 이미 받고 있다. 많은 대가를 치르기는 했지만 일단 제가 원하는 세상이 조금씩이라도 가까워지는 것 같다. 사람들이 존중받는 공정한 세상, 함께 사는 대동 세상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저의 보람이고, 보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국민이, 도민이 많이 사랑해주시고, 저에게 다른 일을 맡겨도 되겠다는 분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가 말한 “다른 일을 맡겨도 되겠다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표현은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를 의미한다. 새해 들어 이 지사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유지했다가 윤석열 총장 사퇴 이후에는 윤 전 총장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지사는 아직까지 차기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말을 아끼고 있다. 공개적으로는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상당히 유머가 없다. 진지한 건 좋은데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막무가내인 경우가 많다. 이 지사는 인터뷰 중에도 유머나 은유 같은 것을 잘 활용하는 편인데,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건가. 

    “시민운동이나 변호사 업무, 정치도 사실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결국은 상대가 들을 수 있게 해 줘야 하고, 상대가 수용할 수 있게 하려면 비유나 은유적 표현이 도움이 많이 된다. 기본소득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오리너구리에 견주어 표현한 것도 그런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자주 하다 보니 표현이 좀 느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부작용도 있다. 은유적 표현을 왜곡해서 받아들이고는 그것을 빌미로 공격하는 경우가 있다.”


    보수정당은 가짜 보수, 진보정당은 가짜 진보

    -그 이유를 어떻게 보나. 

    “우리의 경우 정치인(집단) 간에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그리고 진보 정당 간에 생각의 차이가 너무 크다. 보수정당은 가짜 보수고 진보정당은 가짜 진보다. 정치 체제가 진정한 보수, 약간 중도 보수, 아니면 중도 진보가 형성돼 있으면 경쟁하기가 적당하다. 우리 정치를 보면 수구세력이 합리적 보수를 참칭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념적 지형으로 보면) 중도보수 정도에 해당하는데, 진보정당인 것처럼 보이고 있다. 저는 민주당 당원이므로 편향적으로 얘기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길을 찾아보려는 진보 정치 블록이 생겨서 진짜 보수와 진짜 진보 정치 집단이 합리적으로 경쟁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이 지사는 미국의 정치문화를 하나의 사례로 들었다. 

    “미국의 경우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치적 지향점 차이가 일반적으로 크지 않다. 그렇게 간극이 좁으면 그 미세한 차이를 잘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상식적이고 합리적 경쟁을 하게 된다. 발전된 사회일수록 쟁투 상태가 아니고 진정한 논쟁과 토론이 가능해진다. 논쟁과 토론에서 우세를 점하기 위해서는 설득을 해야 하고, 공감을 얻어야 하니 유머가 매우 유용한 장치다.” 

    -오늘 우리 사회의 불공정에 대한 얘기를 주로 나눴는데, 고쳐야 할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사람 사는 세상이 원래 그렇지 않나. 그래서 우리가 언젠가 도달할 최종 목표가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결론은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삶이고, 사회인 것이지 궁극적인 최종 종착지는 없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과제는 끊임없이 생겨나고, 인간의 욕망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언제나 생겨난다. 그러나 인간의 문제는 또 인간이 다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고쳐 가면 된다. 사회적 삶이나, 개인의 인생살이나 다를 바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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