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는 피할 곳이 없다. 반복되는 핵실험으로 북한의 핵무기 능력이 궤도에 오른 지금, 이제 질문은 ‘북한이 핵을 사용하도록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이다. 10기 남짓한 탄두를 가진 북한이 1700기 이상의 전략핵 탄두를 보유한 미국과 맞서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 볼모로 잡힌 한국은 이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과연 우리에게 답은 있는가.
그간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가장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주면, 혹은 어떤 압력을 가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인가”였다. 북핵이 협상용이냐 아니냐는 지리한 논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평양이 “소형화·경량화 완수”를 소리 높여 외치는 현재 상황은 이제 상황이 전혀 다른 수준으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경제적 반대급부나 체제보장 같은 정치적 해결방식으로 비핵화를 달성할 가능성은 사라졌고, 대신 어떻게 하면 이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을 것이냐는 질문이 솟아오른 것이다. ‘비핵화·비확산’에서 ‘억제’로 상황이 급격하게 변했다. 냉전 기간 미국과 소련의 엘리트들이 고민했던 핵 억제전략이, 냉전의 소멸과 함께 도서관 서고 속으로 사라졌던 어제의 고민이 이제 우리의 당면한 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북핵 개발의 아이러니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기 위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북한의 핵 개발이 수면으로 떠오른 1990년대 초반은 냉전체제 붕괴와 소련의 해체가 줄줄이 이어지던 시점이었다. 그간 보장받았던 소련으로부터의 핵우산이 사라지면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핵 개발을 가속화했다는 것이 북핵에 대한 일차적인 해석이다. 이후 20여 년의 세월 동안 평양이 반복적으로 공언해온 ‘핵 억제력 확보’라는 말은 바로 이를 뜻한다. 미국의 핵미사일이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들도 어쩔 수 없이 핵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이러한 주장은 곰곰이 따져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에 대한 억제력 확충을 위해 핵을 개발했다는 구소련의 동맹국은 북한 외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 오히려 베트남 등 다른 국가들은 “핵우산이 없는 비핵국가는 핵으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소극적안전보장(NSA) 약속과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수용하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길을 택했다.
소련의 핵우산이 사라지면 미국의 핵 선제공격 우려도 함께 제거된다는 판단이 온 세계를 뒤덮는 동안 오로지 평양만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같은 시기 미국은 한반도에 배치돼 있던 전술핵을 철수하는 등 이전에 비해 한반도에 대한 핵 투사 능력을 축소해나갔고, 남한은 비핵화선언과 그 후속조치를 통해 독자적인 핵개발 능력을 사실상 상실했다. 그러나 이 무렵 ‘로동신문’ 등을 통해 드러나는 북한의 모습은 한반도 전술핵 철수 같은 조치를 오히려 선제공격의 준비조치로 인식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단적인 것이었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북한의 이러한 행보가 오히려 자신들의 안보를 매우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1993년 3월 북한의 NPT 탈퇴로 1차 북핵 위기가 국제사회에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이후, 워싱턴은 ‘불량국가(rogue states)’가 핵무기가 아닌 대량살상무기(WMD), 즉 화학무기나 생물무기를 대규모로 사용하는 경우에도 핵무기로 보복할지 모른다며 모호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미국이 약속한 핵우산은 유사시 남북한 간 전쟁에 참전한 소련이나 중국이 한국에 핵을 사용할 경우 대신 보복해주겠다는 의미가 주를 이뤘지만, 이러한 개념 변경으로 인해 북한이 화학무기나 생물학무기로 남한을 공격하는 경우에도 미국이 핵으로 보복하겠다는 뜻으로 확장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2002년 2차 북핵 위기의 과정에서 한층 더 극적으로 드러난다. 우라늄 농축 설비 확보 시도 등 북한의 핵보유 움직임이 가시화하자 부시 행정부는 전략핵 사용을 위한 작전계획 8044를 통해 평양을 그 공격 대상에 포함시키기에 이른다. 이전에는 유사시 북한에 투하될 수 있는 핵전력의 최대치가 전선이나 후방을 타격하기 위한 전술적인 용도에 그쳤다면, 이 시기를 거치면서 평양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으로 변화했다는 뜻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변화한 안보의식과 북한의 핵개발 시도가 합쳐져 만들어낸 상승작용의 결과물이었다.
이 무렵 김정일 위원장이 수개월간 공개석상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공포감에 시달렸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요컨대 자신들의 안보를 위해 개발했다는 핵이 오히려 북한의 안전을 극단적으로 위태롭게 만든 지독한 아이러니였다.
‘조선 없는 지구는 필요 없다’
일련의 과정은 핵 억제에 대한 북한과 미국의 시각이 판이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정교하게 설계된 논리적 흐름에 기초한 미국의 억제전략과 달리, 북한의 사고방식은 철저하게 미국에 대한 불신과 독자적인 무장능력에 대한 집착에 기초하고 있다. 다시 말해 워싱턴은 “아무도 자신이 멸망할 것을 뻔히 알면서 핵을 사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평양은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상대에게 해를 입히겠다는 자세가 아니면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고 믿는다. 미국의 핵 억제 게임이 지극히 이성적인 수학적 모델에 가깝다면 평양의 그것은 원한과 복수의 정서 위에서 만들어진 감정적 태도를 기반으로 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진행된 가운데 2월 12일 오후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반면 억제에 대한 북한의 사고방식은 김일성의 항일유격대 시기부터 북한군의 군사전략에 깊이 자리 잡아온 DNA로부터 출발한다. 비이성적인 태도를 과시함으로써 ‘예측이 불가능한 존재’라는 악명을 쌓아 올릴수록 더욱 안전해질 수 있다는 게 주된 골격이다. 전쟁의 와중에도 상대 역시 공멸을 원치 않을 것이므로 ‘핵전쟁도 제한적일 수 있다’는 미국식 억제개념과 달리 북한은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나의 죽음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는 자세를 취한다. 외부에서 압박을 가하면 한층 더 강경한 도발을 감행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평양 3대 혁명 전시관에 걸려 있다는 “조선이 없는 지구는 필요없습니다”라는 김정일의 말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슬로건이다.
北核, 對美 핵 억제력 없다
핵 억제를 둘러싼 양측의 이러한 인식 차이는 이후에도 북한의 핵 개발과 그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작동하게 된다. 2월 12일의 3차 핵실험 역시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읽을 때 그 정확한 의미가 드러난다. 핵실험 직후 ‘조선중앙통신’이 발표한 보도문의 “이전과 달리 폭발력이 크면서도 소형화 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했다는 대목과 “다종화된 우리 핵 억제력의 우수한 성능”이라는 문장이다. 자신들의 핵무기가 이미 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수준까지 작아졌고, 이를 지난해 12월 광명성 3호 발사를 통해 입증해보인 장거리 로켓 기술과 결합해 미 본토까지 핵으로 타격할 수 있게 됐다고 만방에 과시하고자 하는 시도다.
이러한 북한의 위협을 미국의 잣대로 보면 어떨까. 억제전략 연구의 중심 기능을 담당해온 미국 랜드연구소는 북한 핵개발이 국제사회의 관심사로 떠오른 직후인 1995년 미 육군과 공군의 의뢰를 받아 100페이지가 넘는 장문의 보고서 두 편을 작성한 바 있다. 소련 같은 핵 강국이 아닌 소규모 지역 국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핵전략을 구축해야 하는지를 정교하게 들여다본 결과물이다. 보고서에는 당연히 북한도 핵심 대상에 포함돼 있고, 그 주요 골자는 최근까지 미국 대량살상무기 정책의 준거 텍스트 역할을 해 왔다.
지난해 12월 12일 북한은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기지에서 장거리 로켓(은하3호)을 발사했다. 맨 윗부분 탄두에 핵폭탄을 장착하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된다.
따라서 ‘미국에 대한 핵 억제력’이라는 평양의 공언은 워싱턴의 시각에서 볼 때는 의미 없는 공갈에 불과하다. 북한이 자살특공대가 아닌 다음에야, 전쟁을 시작할지 말지, 핵을 쓸지 말지를 결정하는 위기상승의 지배권(dominance)은 결국 자신들의 손아귀에 있다는 미국 특유의 자신감이다. 그간의 핵 개발 과정에서 미국이 확산(proliferation) 문제, 즉 북한이 중동 국가 등으로 핵 기술을 이전하는지 여부만을 중점적으로 따져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한국과 일본이 직접적인 위협을 체감하는 것과 달리 워싱턴의 판단이 한결 느긋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평양이 아무리 핵 기술을 강화한다 해도 자신들과 맞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계산을 이미 한 것이다.
이러한 셈법 뒤에는 역사적인 경험도 한몫을 한다. 그간 그 어떤 나라도 이러한 기본 공식에 어긋나는 억제전략을 구사한 적도, 상상한 적도 없다. 냉전 시기 프랑스와 영국 등이 소련의 압도적인 핵전력에 맞서는 이른바 ‘최소억제(minimal deterrence)’ 전략을 채택한 바 있지만 이는 결국 최종적으로 미국의 핵전력이 소련을 응징할 것이라는 사실을 최후의 보루로 삼은 개념이었다.
파키스탄과 인도 등이 ‘단 하나의 핵무기로도 억제가 가능하다’며 활용했던 ‘실존적 억제(existential deterrence)’ 전략은 모두 자신들처럼 소량의 핵무기를 보유한 적국을 상대로 삼은 것이었을 따름이다. 요컨대 북한 대(對) 미국처럼 압도적인 핵전력 차이를 가진 나라들 사이에서도 핵 억제가 성립할 수 있다는 평양의 주장은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이단적이고 불합리한 억지라는 게 미국 측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북한이 감히 미국에는 맞설 수 없다고 쳐도,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동맹국들을 핵으로 위협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이들에 대한 핵 공격 위협으로 북한이 미국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해내려고 시도할 때 워싱턴이 이를 막을 방법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그에 대한 답 역시 명확하다. 대표적인 것이 소련의 핵 능력이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던 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행보다.
자살특공대식 핵 억제 개념
이 무렵 소련은 서유럽에 대한 핵 공격 가능성을 들어 미국을 위협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 가능성을 최소화하려고 시도했지만, 미국은 오히려 당시의 일방적 핵 우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대량보복정책을 과시하고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등 공격적인 외교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결과적으로 소련의 시도는 도리어 서유럽에서 미국의 핵 능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었다. 이를 북한에 적용해보자면, 한국과 일본에 대한 북한의 핵 공격 능력이 미국에 대한 억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가정은 근거가 없다.
뒤집어 보자면 지난 20년간 북한이 벌여온 핵 게임의 골자는 바로 이러한 워싱턴의 억제 개념을 뛰어넘고자 하는 것이었다.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 탑재 대륙간탄도탄(ICBM)의 확보라는 목표에 절대적으로 집착해온 그간의 모든 노력이야말로 이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한국과 일본 같은 주변 동맹국들이나 이 지역에 주둔한 미군을 타깃으로 설정하는 정도로는 미국의 행보를 충분히 제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가장 어설픈 미사일로 미국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캘리포니아를 건드리는 게 가장 정밀한 미사일로 주한미군 기지를 타격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안보에 훨씬 유리하다고 믿는 고유의 억제 개념이 작용한 결과물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군사전략상의 ‘억제’는 크게 공격해봐야 별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거부(denial)에 의한 억제’와 공격을 하면 더 큰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두려워하게 만드는 ‘처벌(punishment)에 의한 억제’로 나뉜다. 그러나 북한의 억제 개념은 거의 전적으로 후자에만 경도돼 있고, 실제 북한은 오로지 이 목적을 위해 핵전력 구축에 주력해왔다.
북한의 목적이 유사시 미국의 대북(對北) 공격을 무력화하는 것이었다면 주한·주일미군의 주요 기지나 전시 병력 증원의 통로가 되는 남한 내 주요 항만시설과 공군기지를 핵으로 타격할 수 있는 수준으로도 충분하다. 또한 이미 보유한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의 정밀도를 높이는 작업은 기술적으로 훨씬 쉬울뿐더러 즉각적인 안보적 효과도 얻을 수 있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그러나 평양은 이들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 등을 실전 배치한 2000년대 이후에도 로켓 기술의 사거리 연장에 온 힘을 기울여왔다. 단거리 미사일의 정밀도를 높여 미국이 전개할 한반도 인근의 전력을 효과적으로 막는 데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정밀도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미국 본토를 핵으로 타격하는 능력을 확보하는 일에 매진해온 것이다. 유사시 자국의 대도시 민간인 희생을 우려하는 워싱턴이 쉽게 전쟁을 결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그 최종적인 목표였던 셈이다.
북한의 핵 개발이 플루토늄을 기반으로 먼저 진행됐다는 사실 역시 같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미국과 소련을 제외한 대부분의 2세대 핵 국가들은 기폭장치의 설계와 제작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해 핵 개발에 나선 뒤 일정 수준의 핵 능력이 확보된 후에야 플루토늄탄으로 넘어가는 기술적 경로를 택했다. 핵실험이 없어도 기술적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우라늄탄이 비밀리에 개발하기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라늄탄은 장거리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소형화하기가 쉽지 않다는 결정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본토 타격에 집착하는 평양으로서는 소형화가 용이한 플루토늄탄이 훨씬 매력적인 경로였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북한이 말하는 핵 억제가 자신들의 소멸을 각오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형태라는 사실이다. 보편적 개념과 가장 큰 차이다. 미국과 소련 사이의 억제전략은 물론 프랑스와 영국의 최소억제 개념, 심지어 인도나 파키스탄의 실존적 억제 개념조차 정교한 계산을 통해 상대와 자신의 피해를 정밀하게 계측하는 것을 논리적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내가 당한 피해와 유사하거나 혹은 능가하는 피해를 상대에게 줄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고 과시함으로써 상대의 행동을 제어하고 제약하는 것이 억제의 기본 작동원리인 셈이다.
핵 능력 동결 수준 타협?
북한의 경우 이런 메커니즘이 원초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미국에 줄 수 있는 피해는 어떠한 경우에도 그에 대한 미국의 보복공격이 초래할 수 있는 결과(정권 혹은 국가의 소멸)를 능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의 생존과 안보라는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핵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어떤 식으로든’ 상대에게도 해를 입히겠다, 내가 당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반드시 갚아주겠다는 의지의 과시 자체가 목적이다. 쉽게 말해 상대가 자신에 대해 죽음을 개의치 않을 정도로 ‘미친 국가’라고 믿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억제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 틀 위에서라면 내가 본 피해의 크기와 상대에게 줄 피해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미국과 북한의 억제 개념이 갈라서는 극명한 분기점이다.
지난해 4월 15일 북한 태양절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장거리미사일(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으로 추정되지만 모형이란 설도 있다. 과연 북한은 핵폭탄(아래)을 탄두에 실을 만큼 소형화시켰을까.
물론 북한의 이러한 판단은 여전히 미국의 인식과는 거리가 멀다. 3차 핵실험을 통해 본토 핵 피격의 가능성이 가시화함에 따라 미 언론의 보도 수위는 이전에 비해 한층 높아졌고 그에 따라 행정부와 의회의 위기감도 고조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로 인해 수십 년 세월 동안 미국이 견지해온 억제 개념의 뼈대가 흔들릴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단적으로 말해, 북한 또한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는 ‘합리적인 존재’라는 기본 인식을 워싱턴이 바꿀 공산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기에 평양이 말하는 경량화·소형화의 실체가 과연 대륙간탄도탄(ICBM)에 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수준인지도 의심스럽고,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부수적인 기술 장벽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도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의 핵 위협을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present and clear danger)’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만한 이유로 남아 있다.
그러나 핵 억제에 대해 양측이 품고 있는 이러한 개념 차이가 타협의 공간을 열어줄 수 있다는 역설적인 개연성이야말로 3차 핵실험으로 인해 달라진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정교한 계산과 핵사용 원칙에 충실한 워싱턴이 북한의 핵 억제력이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고 믿는 반면 북한은 이미 달성했다고 확신한다면, 북한의 핵 능력을 현재 상태에서 동결하는 수준에서 양측이 어정쩡하게 타협에 이를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평양은 핵탄두 탑재 ICBM의 실전배치나 핵탄두 대량제조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실행하지 않고 미국은 그에 대해 외교적·경제적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워싱턴으로서는 북한의 핵 능력을 자국 본토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못한 상태로 묶어두는 셈이고, 반대로 평양은 “핵 억제력으로 미제를 굴복시켰다”고 대내적으로 과시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6자회담이 공전하게 된 2008년 이후 미국의 주요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부분 인정론’에 관한 논의가 수차 제기돼왔다. 대표적인 것이 2009년 8월 미 핵과학자협회지(Bulletin of Atomic Scientists)에 실린 휴 거스터슨 조지메이슨대 교수의 칼럼으로, 이 글에서 그는 북한이 소량의 핵무기 시제품을 계속 보유토록 하되 추가생산에 필요한 플루토늄과 우라늄 생산능력을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의 규제하에 제거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를테면 북한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있는 것과 다름없는 ‘가상의(virtual) 폭탄’을 갖도록 용인하자는 취지였다.
핵 능력 부분 인정, 韓日은 볼모
한걸음 더 나가면 바로 이 정도가 북한의 핵 개발이 지향하는 최종적인 목표지점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론도 가능하다. 그간 북한이 진행해온 핵 개발 과정은 미국의 ‘레드 라인(red line)’이 어디인지를 확인해가며 조금씩 경계선을 확장해온 작업의 연속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사안을 중대하게 인식해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게 만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장 군사공격을 단행할 정도는 아닌 중간선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평양의 목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전배치만을 남겨둔 핵무기를 손에 쥔 채 평화협정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달성하는 것이 북한 수뇌부의 노림수일 것이라는 몇몇 전문가의 분석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워싱턴이 이러한 ‘사실상 부분 인정’의 필요성을 한층 크게 느끼게 됐다는 점이야말로 이번 3차 핵실험이 던진 가장 큰 함의가 아닐 수 없다. 당장 ‘비핵화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때’라는 목소리가 미국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이러한 분위기를 강력히 시사한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전 “군사적 보복조치는 북핵 억제에 유용하지 않다”고 천명한 바 있다.
탄두 소형화 기술의 요체는 통상 4.5t 내외에 달하는 초보적 핵폭탄의 중량을 0.5~1t 정도로 줄일 수 있느냐의 문제지만, 노동이나 무수단 미사일 같은 통단 미사일의 경우 사거리와 탑재중량 사이에는 일종의 반비례 관계가 성립한다. 따라서 이들 미사일의 사거리를 일정 부분 희생한다면 한반도 내의 군사시설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장착 핵탄두를 구성하는 일은 한결 수월하다.
또한 핵탄두 중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반사체(reflector)와 탬퍼(Tamper), 고폭장약 등은 1945년 이후 이뤄진 기술적인 진보와 경량 재료의 사용을 통해 무게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쉽게 말해 ‘우겨 넣자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안보문제 NGO인 국제위기감시그룹(ICG)은 2009년 미 정보당국 내부 자료를 인용해 북한이 이미 노동미사일에 소형화된 핵탄두를 장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한국 독자적 핵무장, ‘의미 없다’
그렇다면 한국에 주어진 선택지는 과연 무엇인가.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한국군은 그간 미국식 억제 개념에 기반을 두고 군사력을 구축해온 것이 사실이다. 북한이 공격할 경우 이러한 공격 자체가 효과를 거두기 어렵게 만드는 ‘거부에 의한 억제’에 총력을 기울이는 방식이다. 장사정포가 서울을 향해 포탄을 퍼부을 경우 이를 우선적으로 제압함으로써 민간 피해를 최소화하는 이른바 대화력전(對火力戰)이 대표적이다. 달리 말하자면 북한의 민간시설이나 정권 수뇌부에 보복하기보다는 인민군 전방부대들의 전쟁수행능력 자체를 파괴하는 데 주안점을 둔 작전 개념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이러한 미국식 억제개념을 그대로 차용할 경우 북한의 핵은 3차 핵실험 이후에도 남한에 위협이 되기 어렵다. 어떻든 북한이 남측에 핵을 사용할 경우 미국은 핵우산을 가동해 평양을 초토화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북한의 핵은 존재한다 해도 무용지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핵을 사용하겠다”고 평양이 아무리 엄포를 놓는다 해도 최종적인 우위가 미국에 있는 한 실제로 사용할 수는 없고, 따라서 엄포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믿어야 한다’는 게 서구식 억제 개념의 골자다.
그러나 북한의 극단적인 군사전략 운용에 무수히 시달려온 한국의 처지에서 과연 이를 고스란히 믿고 안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반대로 ‘눈곱만큼이라도 피해를 보면 존재가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보복한다’는 북한식 억제 개념을 차용하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예를 들어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장을 감행한다면 과연 미국과 소련 사이에 형성됐던 핵 억제 구도가 남북 간에도 형성될 수 있을까.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가 천명했던 이른바 ‘적극적 억제(proactive deterrence)’ 전략은 이를 가늠할 수 있는 일종의 단서에 해당한다. 북한이 군사도발을 할 경우 즉각적인 응징과 보복을 가함으로써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만든다는 것이 그 기본적인 논리구조였고, 이는 유사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은거할 양강도와 자강도의 특각을 타격할 수 있는 스텔스기와 탄도미사일 등을 확보하겠다는 무기도입사업으로 연결된 바 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 단순히 자위권을 행사하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최고수뇌부나 평양의 정권 핵심을 위협함으로써 애초에 도발을 감행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이 효과를 가지려면 남측 역시 전면전과 핵 사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 북한식 억제 개념을 차용하는 일은 남한도 북한 이상으로 ‘미친 국가’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한 선택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북한에 비해 ‘잃을 것이 너무나도 많은’ 한국이 과연 이런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더욱 중요한 것은 평양이 남측의 이러한 한계를 매우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임 바꿀 카드가 없다
억제는 기본적으로 상대가 나의 협박을 얼마나 심각하게 믿느냐의 문제다. 내가 실제로 미친 짓을 할 것이라고 상대가 믿는 순간 억제는 성립한다. 그러나 ‘너 죽고 나 죽자’는 남측의 협박을 평양이 두려워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북한이 이를 믿지 않는다면 억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가 적극적 억제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한 이후로도 북한의 도발적 태도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끝이 그리 희망적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한다.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미로의 끝. 북한의 3차 핵실험이 한국의 운명에 던지는 질문은 이렇듯 갑갑하기 짝이 없다. 평양의 집요함과 미국의 자신만만함이 20년 세월 동안 형성해놓은 핵 억제 게임의 판도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어느 것이든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제는 공허하기 짝이 없게 들리는 ‘비핵화’와 ‘평화적 해결’만을 여전히 되뇔 수밖에 없는 것 또한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평양이 진지하게 우려하게 만들 한국의 억제전략은 과연 어디서 도출해야 하는가. 소련의 해체와 함께 도서관 서고 속으로 사라진 어제의 고민을 우리가 이제라도 끌어안아야 하는 이유다. 냉전이 남아 있는 유일한 분단국가의 아이러니, 게임을 바꿀 단 한 장의 카드를 갖지 못한 나라의 서글픈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