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샌프란시스코베이 지역을 다니다 보면 범죄 예방을 위해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 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온라인 쇼핑이 증가하면서 현관 앞에 배달 온 택배 물품을 훔쳐가는 좀도둑이 기승을 부리는 상황. 주택 앞 감시 카메라는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그런데 인기 높은 감시 카메라가 최근 개인정보 침해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의 배경을 들여다봤다.
스마트 초인종 ‘ring’.
“뭘 도와드릴까요?”
“요즘 동네에 좀도둑이 설쳐서 좀 불안하네요. 집에 감시 카메라를 하나 설치할까 하는데, 이게 초인종도 되는 제품인가요? 설치는 쉬운가요?”
온라인 쇼핑 시대 ‘현관 도적’들
스마트폰으로 방문객 확인이 가능한 ring의 라이브뷰. [유튜브 캡처]
홈디포 매장에서 남성 고객이 관심을 보인 제품은 링(Ring)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스마트 초인종. 감시 카메라와 움직임이 감지되면 켜지는 조명, 클라우드 저장 서비스, 스마트폰 앱 등을 결합한 제품으로, 신기술 도입에 적극적인 샌프란시스코와 주변 지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2017년 현재 미국 주요 도시 가운데 재산피해범죄(강도, 절도 등) 발생률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스마트 초인종이 절찬리에 팔리는 또 다른 이유다.
이 제품을 개발한 링은 2018년 초 1조 원이 넘는 회사 가치를 인정받으며 아마존에 인수됐다. 2013년 창업 후 5년 만에 거액에 팔린 건데 이후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통계분석회사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세계 스마트 초인종 시장 규모는 2018년 5억 달러에서 2023년엔 14억 달러(약 1조6000억 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큰 시장은 미국이다.
필자도 2017년 여름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 뒤 현관에 링에서 만든 스마트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 이 제품은 ‘딩동’ 하고 울리는 기능은 없지만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현관 앞에 있는 방문자와 스피커폰으로 대화할 수 있다. 이전 집에 살 때 새벽에 낯선 사람이 집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 놀란 기억이 있어 주변 사람들 추천을 받아 해당 제품을 설치한 것이다.
촬영 영상 경찰 제공 논란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홈디포 매장에서 한 남성이 링(Ring)사의 스마트 초인종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최근 문제가 불거진 건 각 가정에서 촬영한 영상을 스마트 초인종 제조사가 경찰에 제공한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링 측은 사법기관이 회사 사이트에 접속해 영상을 모니터링한 뒤 필요하다고 요청한 경우 촬영자 이름과 정확한 주소 등의 정보를 삭제한 뒤 제공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경찰로서는 예산 한 푼 안 들이고 공짜 감시 카메라를 집집마다 설치한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환영할 일이다. 지역 언론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보도에 따르면, 2월 현재 미국 내 지역 경찰서 약 900곳이 링과 협약을 맺고 영상을 제공받고 있다.
링은 이웃에서 발생하는 범죄 해결에 도움을 주고자 지역 경찰에 영상을 제공한다며, 이 사실을 제품 홍보에 적극 활용해 왔다. 경찰 역시 경찰력이 곳곳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정보가 범죄 예방 및 수사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시민 가운데서도 좀도둑이 현관 앞에 있는 택배 상자나 차량 또는 집 안의 금품을 훔쳐갔을 때 스마트 초인종 녹화 영상 덕분에 경찰과 보험회사 등에 증거를 제공할 수 있었다며 찬사를 보내는 이가 적잖다. 그러나 사생활 침해 논란 또한 가시지 않는 상황이다.
스마트 초인종 제조사가 경찰에 촬영 영상을 제공하지 못하게 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소비자가 제품 구매 후 영상녹화서비스에 가입하지 않으면 된다. 다만 이 경우 소비자 또한 실시간 영상만 확인할 수 있다. 집을 비운 동안 누가 우리 집 앞에 왔었는지 저장된 영상을 통해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 현재 얼마나 많은 소비자가 이처럼 실시간 영상만 확인하고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스마트 초인종 영상을 녹화 저장해 주는 서비스 기본 이용료는 연간 30달러 수준이다. 회사 측은 이 서비스 가입자 수를 정확히 공개하지 않고,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이 이용한다고만 밝힌 상태다.
연방 의회, 정보제공 현황 제출 요구
논란이 커지자 미국 연방의회는 2월 링의 모기업 아마존에 공문을 보냈다. △링과 정보제공 협약을 맺은 도시와 경찰 목록 △해당 기관이 아마존의 안면인식 기술을 사용하는지 여부 △경찰에 영상을 제공한 모든 사례와 그 내용 △경찰 외에 영상과 개인정보를 공유한 제3자(기관, 개인) △영상 촬영 동의 조항을 포함한 개인정보 정책 등을 제출하라는 내용이다. △제조사가 사용자 동의 없이 경찰에 영상을 제공한 경우가 없는지, △제공한 영상 중에 원치 않게 촬영돼 시민에게 피해를 준 것은 없는지, △경찰이 아마존의 안면인식 기술을 사용해 영상에 촬영된 사람 신원을 불법적으로 확인하는 건 아닌지, △회사 측이 경찰 외 다른 기관이나 개인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지, △제공하고 있다면 그 대상이 누구인지 등을 확인하려는 취지다. △그 배경엔 범죄 예방과 수사를 목적으로 법이 보장하는 사생활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며칠 전 저녁 약속이 있어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밤 10시가 다 된 시간인데, 밖에서 누군가 뭐라고 소리치며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방문자에 겁이 나고 뭐라는지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 “노”라고 말하고 대꾸하지 않았더니 다른 곳으로 간 것 같다고 했다. 바로 스마트폰 앱을 켜서 녹화 영상을 확인했다. 제복을 입은 것으로 보이는 덩치 큰 남성이 “헬로, 새너제이 경찰입니다. 헬로. 헬로” 외치다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사라졌다. 안도감이 들면서 “스마트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뜩함도 느껴졌다. 이 모습을 경찰도 볼 수 있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