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 유출·독과점… “무슨 실익 있나”
‘낙동강 오리알’ 위기 아시아나, 내부 비판 만만찮아
조원태·산은 이해관계 산물… “시작부터 잘못됐다”
합병 가시밭길 전망, 산은 內 비관론 소문도
“전면 재검토 골든타임 놓쳤지만…”
대한항공 “EU만 넘으면 美·日은 어려움 없어”
11월 2일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항공기가 서 있다. 이날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에선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부를 매각하는 방안이 포함된 대한항공의 합병시정서에 동의하는 안건이 가결됐다. [뉴스1]
익명을 희망한 한 사립대 항공학과 교수 A씨의 말이다. 2020년 11월부터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추진해 왔다. 두 항공사는 근 30여 년 항공업계를 양분했다. 대한항공이 합병에 성공한다면 국내 유일 경쟁사를 삼키며 압도적 1인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세계 10위권 메가 캐리어로 거듭나기도 한다.
경쟁자들에겐 달갑지 않은 일이다. 견제가 거세다. 합병 과정이 순탄치 않다. 합병 성공을 위해선 국내외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거쳐 최종 승인을 얻어내야 한다. 3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미국, 일본, EU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독과점 폐해를 우려하는 비판 여론, 슬롯·운수권 반환 등 극복할 과제가 여전히 산적하다.
합병이 난항을 겪자 출혈이 지나치다는 여론에 점차 불이 붙었다.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이 기름을 끼얹은 모양새다. 올해 9월 27일 대한항공은 EU의 승인을 받기 위해 EU집행위원회(EC)에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부를 매각하고 자사 14개 유럽 노선 가운데 4개 노선을 반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합병시정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는 11월 2일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에서 화물사업부 매각이 승인되며 현실화됐다. ‘반쪽짜리 합병’이라는 비판이 더 거세지는 이유다. 업계·학계 등 각계에선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국가에 이익 되는지 의문”
대한항공의 합병 승인엔 수많은 조건이 붙는다. 지난해 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합병을 승인하며 슬롯 및 운수권 반납, 운임 인상 및 좌석 수 축소 금지 등을 10년간 이행할 것을 요구했다. 올해 3월 1일 영국 경쟁시장청은 대한항공이 영국 히스로 공항에 보유하고 있는 슬롯 17개 가운데 7개를 영국 버진애틀랜틱항공에 이전하는 조건으로 합병을 승인했다. 41%가량 슬롯을 내놓으라고 한 셈이다. 중국 당국도 46개의 슬롯을 요구했고, 대한항공은 이를 모두 받아들였다.슬롯이 줄어들면 항공사는 자연스레 수익이 감소한다. 비용 부담이 커지고, 이를 소비자가 떠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한항공의 경우 합병 후 국내에서 독점 지위를 획득하므로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할 우려가 더 크다. 올해 2월 대한항공이 마일리지 제도 개편안을 4월 시행하겠다고 밝혔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철회한 것도 그러한 경계심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일리지 개편안은 원래 2019년 말 계획돼 2021년 4월 시행 예정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2년 미뤄진 것이지만 대외적으론 대한항공이 벌써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횡포를 부리는 것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당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나라의 장거리 항공노선을 사실상 독점한 대한항공의 탐욕이 국민의 분노를 폭발시켰다”고 비판한 바 있다.
다음엔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지적도 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독과점 후 부담이 전가되지 않으리라 보는 건 비상식적 발상”이라며 “대한항공은 일자리 감소, 요금 증가 등 어떤 방법으로든 비용을 줄이려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병일 한국외대 경영학부 교수도 “경쟁이 사라지면 소비자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말했다. ‘국부 유출’ 문제도 생긴다. 슬롯이 해외 항공사로 넘어가면 대한항공의 매출을 외국에 고스란히 넘겨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3월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회의에서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한항공이 기업결합 심사 과정에서 너무 많은 슬롯을 반환해 국부 유출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있다”고 말하자 원희룡 장관은 “바람직하진 않지만 어쩔 수 없다”고 답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합병 과정에서 발생하는 출혈이 너무 크다. 과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합병을 지속하는 게 국민·국가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화물사업 매각, 아시아나 자생력 꺾은 셈”
11월 6일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후문 앞에서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 관계자들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실제 9월 25일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튿날인 26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은 성명서를 통해 “운수권을 넘기는 것에 모자라 아시아나항공의 큰 축인 화물 분야를 매각하는 만행을 저지르려 하고 있다”며 “채권단이 진정 국익을 위한다면 슬롯과 화물 부분 등 아시아나항공의 경쟁력을 온전히 보존하고, 대한항공이 아닌 제3자 매각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내부 진통은 화물사업부 매각을 결정하는 이사회에서 격화된 양상으로 나타났다. 10월 30일 열린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화물 분리 매각 등의 내용이 담긴 대한항공의 시정 조치안’을 의결하기로 했지만 8시간에 이르는 마라톤 회의를 거쳤음에도 이를 매듭짓지 못했다. 결국 정회가 선언됐고, 11월 2일 속행된 끝에 해당 안건은 찬성 3명과 반대 1명으로 가결됐다.
이토록 반대 목소리가 거셌던 이유는 화물사업부 매각이 아시아나항공의 사업성을 추락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화물사업부는 아시아나항공의 ‘알짜 산업’으로 꼽힌다. 2020년 2조1440억 원, 2021년 3조1493억 원, 지난해 2조9929억 원 매출을 올렸다. 전체 매출 대비 비중은 각각 56%, 73%, 48%에 달한다. 항공업계 전반이 어렵던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 매출 7795억 원으로 비중이 22%로 쪼그라들었지만 국제적 화물운임 감소 여파일 뿐 저력은 남아 있다고 보는 시선이 여전하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이 어려운 사정상 화물사업부를 내놓긴 하지만 그간 구축해 놓은 인프라를 무시할 수 없다”며 “업황은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올해 잠시 안 좋다고 해도 수조 원대 매출을 올리던 사업인 터라 눈독을 들이는 항공사가 제법 있다”고 말했다. 반대 의견을 표명한 이사진도 이러한 점을 근거로 들어 화물사업부 매각이 회사에 손해를 입히고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합병 최종 승인이 불발될 경우도 문제로 지적된다. 화물사업부를 매각해 내년 1월 조건부 승인을 받는다 해도 12월 최종 승인이 이뤄지지 않으면 아시아나항공으로선 애꿎은 화물사업부만 잃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 관계자 C씨는 “최종 통합이 안 되면 아시아나항공은 화물사업부를 잃은 채 ‘낙동강 오리알’이 되고 만다. 화물사업부를 잃어 예전으로 돌아갈 자생력 자체가 사라진다. 웬만한 LCC보다도 더 못한 처지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미래는 알 수 없는데 회사의 알짜 사업을 이렇게 내주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아직 회생 가능성 있는데…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본점 전경. [KDB산업은행]
KDB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이 둔 악수(惡手)가 이러한 혼란을 초래했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의 주 채권단이다. 박주근 대표는 “산업은행에 아시아나항공은 돈 먹는 하마, 골칫덩이나 마찬가지였다. 산업은행으로선 어떻게든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었을 것”이라며 “이러한 상황에 경영권 상실 위기를 겪고 있던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동아DB]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을 선택했고, 대한항공도 이를 받아들였다. 조원태 회장으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세계 10위권 메가 캐리어로 도약할 기회이자 위태롭던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 회장은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산업은행의 제안을 듣자마자 바로 승낙했다”고 말했다.
이 무렵 조 회장은 KCGI(강성부 펀드)·반도건설·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이른바 ‘3자 연합’에 의해 경영권 상실 위기에 놓인 상황이었다. 산업은행과 협력하기 전 조 회장의 지분율은 41%, 3자 연합의 지분율은 45.24%였다.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에 8000억 원 규모를 투자했다. 한진칼은 이 가운데 7300억 원으로 대한항공의 2조5000억 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이후 대한항공은 1조5000억 원 규모 아시아나항공 신주와 3000억 원 상당 영구채를 인수해 아시아나항공 지분 60%가량을 가진 최대주주가 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산업은행이 한진칼 지분 10.7%를 가진 대주주가 됐고, 3자 연합과 조원태 회장의 지분율은 희석됐다. 3자 연합의 지분율은 41.9%, 조 회장의 지분율은 약 37%로 낮아졌다. 여전히 3자 연합이 높았지만 산업은행이 조 회장의 우호지분이 돼 판세가 역전됐다. 조 회장은 주총에서 승리해 경영권을 지켰고, 3자 연합은 이내 와해돼 조 회장의 경영권은 굳건해졌다. 이에 조 회장이 산은으로부터 특혜를 받았다고 보는 시선도 있었다. 박주근 대표는 “산업은행이 진퇴양난 처지에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론 세금으로 조 회장의 경영권 방어에 도움을 준 셈”이라고 설명했다. 박병일 교수는 “산업은행이 다른 인수자를 찾거나 아시아나항공 경영 정상화에도 노력할 수 있었다고 본다. 세금으로 나쁜 전례를 만들었다”며 “처음부터 어그러진 채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합병 최종 승인 쉽지 않을 것”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에서 화물사업부 매각이 통과되며 합병에 가속이 붙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아직 EU의 벽을 온전히 넘은 것이 아니다. 최종 승인까지 까다로운 심사가 예상된다. 10월 16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9월 대한항공이 제출한 합병시정서에 대해 50여 가지에 이르는 보완 사항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EU를 넘는다 해도 미국·일본 당국의 승인이 남아 있다. 특히 미국이 EU 못잖게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5월 미국 매체 ‘폴리티코’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승인을 검토하고 있는 미국 법무부(DOJ)가 합병을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박상인 교수는 “미국의 반독점 기조가 강화되는 추세다. 까다롭게 심사할 가능성이 크다. 합병 최종 승인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시밭길 전망에 산업은행 내부에서조차 비관론이 인다는 풍문도 나돌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 법무부가 산업은행 측에 사실상 합병이 불가능한 수준의 출혈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산업은행 내에서도 최종적으론 합병이 결렬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꽤 있다”고 말했다. 10월 23일 ‘신동아’ 확인 결과 윤주경 의원실이 산업은행에 요청해 받은 답변에 따르면 산업은행이 미국 법무부로부터 받은 공문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A 교수는 “업계에서 미국 공문 관련된 소문이 돈 건 맞지만 사실이라고 믿기엔 근거가 약했다”면서도 “그런 소문이 도는 것 자체가 합병이 잘 되지 않으리라는 비관적 전망이 투영된 셈”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합병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박주근 대표는 “한국의 경제규모 수준을 감안하면 국적기가 2개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며 “항공 독과점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대우조선해양을 한화그룹이 인수했듯 업종이 겹치지 않는 제3자가 인수해 경쟁 구도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박병일 교수도 “왜 꼭 대한항공이 아시아나를 인수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항공산업 전반을 위한 결단인지 다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상인 교수는 “국부 유출, 항공업계 경쟁력 약화, 소비자 부담 증가 등 잃을 게 많은 현재 상황상 합병을 전면 재검토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A 교수는 “사실 합병을 진작 재검토했어야 옳았다. ‘골든타임’을 놓쳤다”면서도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있듯 모든 수단을 생각하며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엔 워낙 거대한 항공사가 많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한다 해도 그 규모에 비하면 작은 수준이다. 따라서 미국은 우리를 경쟁자로 쳐주지 않기에 합병을 EU만큼 까다롭게 심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경우 노선이 겹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라 이해관계가 다르다. 역시 합병에 그리 까다롭게 나올 것 같지 않다. EU의 벽만 넘는다면 그 뒤론 큰 어려움이 없으리라 본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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