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쟁점 SK그룹 재산 형성 기여도
노소영 ‘노태우 비자금’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
‘SK증권 인수 자금으로 쓰였을 것’이라고 주장
어음 시효보다 중요한 건 재산 공동 형성 여부
사돈끼리 채무로 볼 경우 재산분할 인정받기 어려워
법조계 “재판부 재량이지만 2심서 뒤집기 힘들 듯”
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4월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소송 항소심 2차 변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4월 16일 오후 2시 두 번째 변론기일에는 두 사람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변론을 마지막으로 심리를 종결하고 선고기일을 지정했다. 통상 마지막 심리일로부터 한 달가량 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항소심 선고는 이르면 5월 중순에는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3월 12일 열린 항소심 첫 변론기일에 두 사람 모두 참석해 이목이 집중됐다. 이혼소송의 경우 당사자 출석 의무가 없다. 그러나 2018년 1월 16일 조정기일에 얼굴을 맞댄 지 6년여 만, 정식 변론기일 기준 1·2심 통틀어 처음으로 두 사람이 함께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간차를 두고 재판정에 입·퇴정한 두 사람은 취재진의 질문에 특별한 답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다.
최태원 소유 SK주식, ‘특유재산’이라는 데 반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최대 관심사는 노 관장의 재산분할 청구액이 어느 정도 인정될지다. 앞서 1심을 맡았던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2부(부장판사 김현정)는 2022년 12월 6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이 서로를 상대로 낸 이혼소송에서 “두 사람은 이혼하고,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 원과 재산분할분 665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노 관장이 요구한 최 회장 소유 ㈜SK 주식(이하 SK 주식)의 절반에 대해서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이혼소송을 벌이게 된 시점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 회장은 2015년 12월 29일 세계일보에 편지를 보내 여섯 살짜리 혼외자가 있음을 밝히고, 노 관장과 이혼을 발표했다. 반면 노 관장은 이혼할 뜻이 없음을 공식적으로 분명하게 알렸다. 그러자 최 회장은 2017년 7월 노 관장을 상대로 법원에 이혼조정을 신청했다. 하지만 양측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조정이 성립되지 않자 최 회장은 2018년 2월 정식으로 이혼소송을 냈다. 4년 가까이 이혼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던 노 관장도 마음을 바꿔 2019년 12월 최 회장을 상대로 맞소송을 냈다. 그러면서 노 관장은 위자료 3억 원과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의 50%에 해당하는 648만 주(당시 기준 약 1조3500억 원), 계열사 주식, 부동산, 퇴직금 등에 대한 재산분할을 요구했다.
재판 결과에 따라 최 회장의 최대주주 지위가 위태로워질 것이 우려돼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노 관장의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 회장이 보유한 재산 가운데 SK 주식을 뺀 나머지 계열사 주식과 부동산, 예금 등만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판단한 것. 특히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1297만5472주(당시 지분 17.5%)가 ‘특유재산(부부 중 한쪽이 결혼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노 관장이 SK 주식 형성과 유지, 가치 상승 등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려워 이를 특유재산으로 판단하고 분할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설명했다. 특유재산은 혼인과 관계없이 형성된 재산이므로 원칙적으로 이혼할 때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즉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이 부친인 최종현 선대회장으로부터 증여 및 상속받은 SK 주식은 부부가 혼인한 이후 공동의 노력을 통해 축적한 재산이 아니라고 본 셈이다.
양측은 1심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다. 최 회장은 재산분할액 665억 원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위자료 1억 원은 수긍할 수 없다고 했다. 노 관장도 “1심 법원이 최 회장 소유의 SK 주식을 특유재산이라고 판단해 재산분할에서 제외한 부분은 수용하기 어렵다”며 항소장을 제출했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은 특유재산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 이후 노 관장은 2023년 1월 법률신문과 인터뷰하면서 “1994년 최 회장이 최종현 선대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2억8000만 원으로 인수한 대한텔레콤 주식이 인수, 합병, 액면분할, 증여 등을 거쳐 현재 SK 주식이 된 것이라는 판결은 사실관계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발하며 “다른 여러 도움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노소영 기여 인정 않은 1심 재판부
20대 시절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 [동아DB]
3년 뒤 귀국한 최태원 회장은 1991년 선경그룹 경영기획실 부장으로 입사해 경영기획실 이사를 거쳐 1996년 SK 종합기획실장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1998년 최종현 선대회장이 별세한 8월 26일로부터 엿새 뒤인 9월 1일, 38세의 나이로 SK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 최태원 회장은 최종현 선대회장의 SK상사 지분 2.85%를 모두 상속받으며 최대주주가 됐다.
상속 전 최태원 회장의 SK 지분율은 0.07%에 불과했는데 상속 이후 0.13%로 늘어난다. 이 밖에 SK, SK증권, SKC 등 최종현 선대회장이 소유하고 있던 주요 상장사 지분 약 1000만 주가 대부분 최태원 회장에게 상속됐다. 이후 최 회장은 수년간 계열사 인수합병 등을 통해 꾸준히 SK 지분을 늘려나갔고, 2023년 말 기준 SK 지분율 17.7%를 확보해 현재까지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재판부가 최 회장이 SK 지분을 취득했다고 보는 1994년은 최 회장이 선경그룹 경영기획실 이사로 근무하던 때다. 당시 최 회장의 SK 지분율은 0.1% 미만이었다. 노 관장이 항소심에서 최 회장 소유 SK 지분 가운데 상당 부분의 소유권을 인정받기 위해선 1988년 혼인 이후 최 회장의 SK 지분율이 17.7%까지 늘어나는 동안 노 관장이 실질적으로 어떤 기여를 했는지 증명하는 것이 관건이다.
노 관장은 최 회장과 혼인한 이후 SK에서 근무한 적은 없다. 2000년부터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맡아온 것이 이력의 전부다. 그러나 노 회장은 항소이유서에서 최 회장의 재산 형성에 기여한 부분을 인정해 달라는 취지로 “최 회장의 경영활동을 통해 SK 주식 가치가 3조 원 이상으로 증가했고, 가치 형성 과정에 노 관장이 내조를 통해 협력했다”고 주장했다.
노 관장은 앞서 1심 판결에서 재판부가 내조를 통한 재산 형성의 기여를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는 앞서 법률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재판부가) 가사와 양육을 전담하면서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맡고 있는 내가 SK 주식의 가치상승이나 처분 및 관리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고, SK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 관장은 1심 판결문 내용을 자세히 언급하며 재판부가 SK 주식을 분할할 경우 회사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에도 반발했다. 재판부가 “가사노동 등 간접적 기여를 이유로 사업용 재산(회사 주식)을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경영자 내지 소유자와 별개의 인격체로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회사 기타 사업체의 존립과 운영이 부부간의 내밀하고 사적인 분쟁에 좌우되게 하는 위험이 있다”고 판결한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 그는 “내가 요구한 것은 ‘재산분할’이지 ‘회사 분할’이 아니며 SK 주식을 분할받으면 회사가 발전하고 성장하도록 적극 협조할 생각”이라고 밝히며 재판부가 우려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300억 어음’ 증거로 반전 노린 노소영
1998년 1월 13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국회 귀빈식당에서 4대 재벌총수와 간담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 김 당선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최종현 SK그룹 회장. [동아DB]
1심 재판부가 주식을 분할 대상으로 삼은 것에 대해 경영자와 소유자 이외 다른 이해관계인, 즉 선량한 주주들이 오너의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로 뜻하지 않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기 때문에 노 관장 측이 분할 대상을 현금으로 바꾼 것으로 추정됐다.
노 관장이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뒤집기 위해서는 1심과 같은 주장을 되풀이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재산 형성 과정에 기여했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추가로 이를 입증해야 했다. 이에 따라 노 관장 측은 3월 14일 항소심 1차 변론기일에 새로운 내용을 내놓았다.
법조계에 따르면 노 관장 측은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1년경 비자금 300억 원을 사돈인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건넨 뒤 어음을 담보로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50억 원짜리 어음 6장의 사진을 항소심 재판부에 냈다. 그러면서 노 관장 측은 “현재 4장은 노 관장 모친인 김옥숙 여사가 보관하고 있으며, 나머지 2장은 김 여사가 2012년 노 전 대통령에게 부과된 추징금을 완납하기 위해 SK그룹 측에 100억 원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며 사용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돈을 빌려줬다고 주장하는 데서 나아가 돈의 용처까지 특정했다. 노 관장 측은 “노 전 대통령이 건넨 비자금 300억 원은 당시 선경그룹이 태평양증권(현 SK증권)을 인수하는 데 인수 자금으로 쓰였을 것”이라고 밝히고 SK그룹이 재산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논지를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SK증권은 1992년 태평양증권을 선경그룹이 인수한 뒤 선경증권으로 있다가 1998년 선경그룹이 SK그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SK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후 SK그룹이 2015년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가 금융업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지 못하게 되면서 2017년 SK증권 공개매각을 발표했고, 이듬해 사모펀드 J&W파트너스가 19.6% 지분을 인수하면서 SK증권은 SK그룹 계열사에서 제외됐다.
비자금을 건넨 것만으로는 최 회장의 재산 형성에 노 관장이 기여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기 어렵다. 그러나 노 관장 측의 주장대로 비자금이 SK로 건너갔고, 최종현 선대회장이 사세를 확장하기 위해 그 돈을 계열사 인수에 사용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과거 1991년, 선경그룹의 태평양증권 인수 자금 571억 원 가운데 280억 원의 출처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던 사실까지 다시 소환되며 노 관장의 주장이 힘을 얻기도 했다. 검찰은 1995년 노 전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비자금 일부가 선경그룹에 흘러 들어 간 것으로 보고 해당 의혹을 조사한 바 있다. 그러나 최종현 선대회장은 태평양증권 인수 당시 부족한 자금은 회삿돈 일부를 끌어 썼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3월 14일 첫 변론기일 종료 직후 SK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즉각 반발했다. 특히 김옥숙 여사가 보유하고 있다는 300억 원 어음에 대해 SK 측은 “들은 바 없고 확인할 방법도 없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1999년 8월 26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 1주기 추모식에서 장남 최태원 회장이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동아DB]
제시해선 안 될 증거, 인정되면 더 문제
노소영 관장이 제기한 ‘300억 원 어음’을 두고 몇 가지 의혹이 제기된다. 우선 어음의 효력 여부다. 33년 전 노 전 대통령이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아 현재까지 김옥순 여사가 보유하고 있는 어음 6장에 대해 노소영 관장이 지금에 와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익명을 요구한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분할 대상이 되는 재산인지 여부는 혼인 중에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어음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그보다는 노 관장은 SK에 건넨 비자금이 정확하게 어디에 사용됐는지를 증명해야 재산을 분할받을 수 있다. 설령 비자금이 계열사 인수에 사용됐다고 하더라도 SK 측이 증거를 갖고 있을 테니 노 관장 측에서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를 향해 정상참작을 해달라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해석도 있다. 정태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전 한국민사법학회장)는 “노 관장 처지에선 나머지 어음 200억 원을 현금으로 돌려받는 데 목적을 두고 증거로 제시한 게 아니다. 또 어음이 지금에 와서 효력이 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재판부에 ‘당시 어음으로 형성한 남편 측 재산이 사실상 일부는 내 것이니 참작해 달라’는 의미에서 제출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항소심 재판부가 노소영 관장 측 ‘300억 원 어음’ 증거 및 재산형성 기여도를 인정해 노 관장 측 요구대로 재산분할을 선고할 가능성이 있을까.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문제 되는 어음 300억 원은 노소영 관장 측이 주장하는 내용에 따르더라도 노태우 전 대통령과 최종현 선대회장 사이의 금전 거래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금전 거래를 두고 노소영 관장이 SK그룹 재산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돈에게 300억 원을 빌려줬다는 주장이 사실이라고 가정해도 부친 사망 이후 자녀에게 사돈 회사의 지분을 지급할 의무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만약 부친이 사돈 회사 운영에 필요한 자금 300억 원을 대여하면서 회사를 채무자로 한 경우, 부친이 그 회사를 상대로 대여금 채권을 갖는다. 이 경우 부친의 채권을 상속받은 자녀들은 사돈 회사를 상대로 대여금 채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다만 이 경우에도 대여금 채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지 사돈 회사인 SK의 지분에 대한 양도를 주장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별개로 재판부가 노소영 관장이 제시한 300억 원의 어음을 증거로 채택할 경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정 명예교수는 “노소영 관장 측에서 제시한 300억 원 어음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성격 때문에 참작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하며 “300억 원의 비자금이 노 전 대통령 본인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 않나. 그 비자금이 인정되면 최태원 회장의 재산 형성 자체가 문제가 돼버린다. 또 비자금이냐 아니냐를 놓고도 앞으로 두고두고 정치적 공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 명예교수는 노소영 관장이 부친의 비자금 의혹을 떠안고 300억 원 어음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시한 것은 자충수라고 우려했다. 그는 “노소영 관장 측에서 제시해서는 안 되는 증거인데 답답해서 제출했을 것 같다. 재산 형성에 기여했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한 수단으로 ‘너 죽고 나 죽자’ 심정으로 꺼내 든 것이다. 재판부가 어느 정도 참작하느냐가 문제인데 상당 부분 재량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구속됐던 최태원 회장이 2003년 9월 22일 보석으로 풀려나 부인 노소영 씨와 승용차 편으로 서울구치소를 떠나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6부는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등으로 구속 기소된 최태원 회장에 대해 공탁금 1억 원을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해 석방했다. [동아DB]
검찰 재조사·비자금 추징은 어려워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이혼소송 과정에서 다시 불거진 것은 세간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노 전 대통령 비자금에 관한 검찰 조사는 1995년 말 시작됐다. 당시 검찰은 그의 비자금 규모를 5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재판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은 포괄적 뇌물죄가 인정돼 유죄를 선고받았다. 1997년 대법원에서 최종 징역 7년 및 추징금 2628억 원이 부과됐고, 노 전 대통령 일가는 16년에 걸쳐 추징금을 완납했다.추징금을 완납한 상황에서 노 관장 측은 남아 있는 또 다른 비자금을 이혼소송의 증거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를 다시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범죄 혐의가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음이 명백하기 때문에 검찰에서 다시 조사를 하는 상황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옥순 여사가 보유한 어음이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의 일부였다고 가정한다면 노 관장이 재판을 통해 재산분할을 받더라도 국고에 귀속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앞서의 변호사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추징금이 완납된 상태에서 비자금 성격을 가진다는 이유만으로 검찰에서 추징할 수는 없다. 추징의 대상이 되는 범죄에 대해 ‘유죄판결’이 있어야만 추징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설령 추징 대상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혼소송에 따른 재산분할은 최태원 회장 명의의 주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노소영 관장에게 불이익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다수의 법조계 인사와 전문가들은 노 관장이 1심 판결을 뒤집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기업 경영인의 이혼소송의 경우 재판부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대기업 이혼소송의 경우 법원도 재벌 편을 드는 경향이 있는데, 대기업이 좋아서가 아니라 재벌이 과거로부터 재산을 형성·유지해 온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라며 “재벌가로 여자가 시집을 가든 남자가 사위로 가든 재산 증식에 기여한 부분을 인정받기란 매우 어렵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그런 판결이 많다. 일례로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의 이혼소송에서도 141억 원 정도 인정받았는데, 노 관장이 재산분할로 665억 원 인정받은 건 상당히 많이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노 관장이 증거로 제시한 300억 원짜리 어음은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비자금 증거가 이번에 증거로 제출한 어음뿐이겠냐는 것. 그는 “노 관장 측에서 이번 재판 결과를 보고 다른 더 큰 것을 들고나올 수 있다. 최 회장 소유 재산분할을 인정받을 수 있는 증거를 열심히 찾고 있을 것이다. 김옥숙 여사 장롱 속에 있는 거래 계약 문서뿐 아니라 과거에 차명으로 해놓은 주식계좌 등도 더 나올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4월 초, 양측의 의견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답변을 듣기 어려웠다. 최태원 회장 측 대리인과 SK 측은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어려우니 양해해 달라”는 뜻을 밝혔다. 노소영 회장 측 변호를 맡고 있는 이모 변호사에게도 전화와 문자로 입장 표명을 요청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복수의 법조계 종사자에 따르면 1심 판결 이후 노소영 관장이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판결문을 공개하며 재판부에 불만을 표출한 것을 두고 항소심 재판부에서 양측에 언론을 통한 입장 표명을 자제할 것을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