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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 그 진실과 왜곡 사이

성배(聖杯)는 없다? 성배(聖杯)는 못 찾았다!

사실(事實) 증명의 오류

  • 오항녕│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성배(聖杯)는 없다? 성배(聖杯)는 못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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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증거

셋째, 상대주의는 역사와 과학의 차이를 잘못 설정하고 있다. 역사학은 과학과 달리 실증을 통해 일반성, 법칙성을 도출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말해 역사에 대한 지식은 선입견, 편견, 신념, 신앙 등에 따라 역사가마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불편부당한 역사 서술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안된 말이지만 과학자도 이는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컴퓨터 과학자는 자신의 교회에서 주장하는 창조론을 옹호하기 위해 시사지 ‘타임’ 기사를 조작했다.

넷째, 상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이나 친구들은 상대주의로부터 어느 정도 예외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를테면 상대주의자 카를 만하임은 인텔리겐차를 진위 판정의 담당자로 상정했다. 하지만 이는 일관성이 결여된 견해다. 왜 인텔리겐차 외의 사람은 상대적인 진실(거짓)의 보유자로 남아 있고, 인텔리겐차만 사회 진단과 종합화의 전범(典範)이 되는가. 이런 점에서 ‘일관된 상대주의’는 자기논리를 부정하는 ‘지적인 자살’이다.

성배(聖杯)는 없다? 성배(聖杯)는 못 찾았다!
다섯째, 상대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주관성이란 관념은 그 자체가 난센스다 ‘주관적’이란 낱말은, 그 반대어가 의미가 없으면 그 말조차 의미가 없는 연관 용어다. ‘모든 지식은 상대적이다’라는 말은 ‘모든 것은 짧다’는 말과 같다. 뭔가가 길지 않으면 짧은 것은 있을 수 없듯, 어떤 지식이 객관적이지 않다면 주관적인 지식이란 있을 수 없다. 어떤 역사학자도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 전체’를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객관적인 역사 지식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틀렸다.

사이비(似而非). ‘맹자(孟子)’에 나오는 말로, ‘비슷하지만 아니다’는 뜻이다. 증명에도 사이비 증명이 있다. 사건에 맞는 증거를 찾아 서술하다보면, 첫눈에는 정확하고 실제에 딱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던 증거가 의미 없는 것으로 판정날 수도 있다. 또 질문에 대해 엉뚱한 답변을 내놓는 동문서답형 증거도 있다. 그중 잘 빠지는 오류가 ‘부정 증거(negative proof)의 오류’다.



부정 증거란 사실 명제를 부정 증거로 떠받치려는 시도다. 이런 경우이다. 역사학자가 “X가 일어났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난 뒤, 이를 근거로 “그러므로 비(非)-X가 사실이다”라고 결론을 내리는 일이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주인공 해리슨 포드가 친구들과 성배(聖杯)를 찾아 나섰으나 끝내 못 찾았다고 치자.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찾아볼 만한 곳은 박물관부터 수도원의 보존소까지 다 찾아보았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이때 해리슨 포드가 “성배는 없다”고 결론 내릴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물론 지구상에 성배가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단지 “성배가 있다는 증거를 우리는 못 찾았다”는 것일 뿐이다. ‘성배가 없다’고 결론 내리려면, 경험적으로(역사적으로) 올바른 과정을 통해 ‘성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줄 ‘긍정 증거(affirmative proof)’를 찾아야 한다. 이것은 어렵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종종 역사학자들이 “X는 깊게(넓게) 연구되지 않았다”고 말하면, 실제 ‘X에 대해 깊게 연구된 게 없는 게’ 아니라 대개 “나는 X에 대해 거의 공부하지 않았다”는 고백을 뜻한다.

‘가능한 증거(possible proof)의 오류’도 이런 부류에 속한다. 이는 참 또는 거짓의 가능성만을 제기함으로써 사실 진술이 실제 참인지 거짓인지 보여주려는 데서 생기는 오류다. 명백한 증거가 없을 때 생겨나게 마련인 문제 제기를 실제 참과 거짓을 가리는 증거로 들이대는 일은 심각한 오류 중 하나다. 경험적 증거는 가능성의 제기를 요구할 뿐 아니라 개연성도 요구한다. 벼락은 누군가가 평생에 서너 번 맞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럴 개연성은 거의 없다. 가능성 중에 실제 현실화할 수 있는 것이 곧 개연성이다. 더구나 그냥 개연성이 아니라, 해당 사실을 지지하거나 부정하는 개연성의 균형도 따져야 한다. 역사사가 법률가처럼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교리를 존중한다면, 마찬가지로 비합리적인 의심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순환 논증의 오류’는 많은 독자가 알고 있는 오류일 것이다. 전제를 ‘증명했다고 치고’ 결론을 내리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하면서 생기는 오류다. 이 오류와 형제쯤 되는 것이 ‘가정 증명(presumptive proof)의 오류’로, 명제의 증명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들 오류와 사촌쯤 되는 오류가 다 알다시피 ‘증명(prevalent proof)의 오류’다. 이 오류는 증명 방법으로 다수의 의견을 끌어온다. 아마, 아, 그런 거, 하시는 분이 꽤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증명을 많이 듣는 환경에서 살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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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항녕│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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