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호

하와이 마우나케아

쪽빛 태평양 굽어보며 칠면조, 멧돼지떼와 즐기는 ‘야생 라운드’

  • 김맹녕 한진관광 상무·골프 칼럼니스트 kimmr@kaltour.com

    입력2005-10-25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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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와이 마우나케아
    북태평양한가운데 위치한 하와이. 흔히 망망대해에 섬 하나가 덩그러니 떠 있을 것으로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100여 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섬이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완만한 호(弧)를 그리면서 장장 600km에 걸쳐 이어져 있는 제도(諸島)다.

    하와이는 이 섬들 중 가장 큰 화산섬이면서 니하우, 카우아이, 오하후, 몰로카이, 라나이, 마우이, 카홀라웨와 함께 8대 섬으로 꼽힌다. 하지만 하와이 제도 주민 대부분이 거주하는 섬은 하와이가 아닌 오하후다.

    대신 하와이에는 하와이 제도에서 가장 높은 화산인 마우나케아(Mauna Kea·4026m)와 그 화산의 이름을 딴, 환상적인 풍광의 마우나케아 골프장이 있다. 그곳에 가려면 호놀룰루 공항에서 빅아일랜드 코나 공항까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코나 공항에 내려서는 순간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무역풍에 실린 푸르메리아와 레이꽃의 진한 향기에 잠시 아찔했다. 먼발치로는 바람에 하늘거리는 야자수와 진분홍색 부켄베리아 그리고 그 뒤로 코발트색 바다와 짙푸른 하늘이 장대하게 펼쳐졌다. 닫힌 가슴이 툭 터져 열리는 듯한 시원함이 도시를 탈출한 몸과 마음을 더욱 자유롭게 했다.

    공항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리조트 단지가 모여 있는 코할라 코스트 지역으로 가는 길은 외지인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도로 양편의 산야가 온통 시커먼 용암으로 덮여 있고, 그 위 곳곳에 산호로 그려놓은 갖가지 기원문이나 사랑의 표현물이 이채롭다.



    공항을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웅대하고 광활한 검은 용암 위에 세계적인 골프 코스 설계자들이 만든 불후의 명작들이 펼쳐졌다. 골프장마다 주위 자연환경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녀 골퍼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터져나오게 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 마우나케아 골프장이다.

    적홍색 푸르메리아 꽃잎이 심볼인 이 골프장은 미국 100대 코스의 하나로 꼽힌다. 1964년 재벌 록펠러의 주문을 받아 당대의 최고 설계자인 트랜스 존스가 만들었다. 검은 용암 바탕 위에 그려진 녹색 그린을 밟으면 그야말로 환상에 빠져든 느낌이다. 코스 뒤로는 하와이 제도의 최고봉 마우나케아 산이 버티고 있고, 나머지 삼면으로는 코발트색 바다가 펼쳐진다. 존스는 어느 홀에서도 바다를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화산과 나무, 바다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도록 자연미를 최대한 살린 골프장은 잘 가꾼 정원처럼 보인다.

    황홀한 코스, 곳곳에 함정

    하와이 마우나케아

    하와이 6개 섬 100여 개의 골프코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까다로운 시그너처 홀로 꼽히는 파3 210야드의 3번홀.

    하지만 그 환상적인 코스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세계 유명 코스의 공통적인 특징은 언뜻 쉽고 평이해 보이지만, 깊은 러프와 해저드, 벙커가 숨어 있어 쉽게 정복당하지 않는다는 것. 특히 이곳처럼 해안가에 만들어진 코스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런 곳에서 플레이할 때 골퍼들이 꼭 숙지해야 할 세 가지 사항과 코스 공략 요령이 있다.

    첫 번째는 거리 착시 현상이다. 바다와 산과 하늘, 태양 그리고 핀의 위치에 따라 거리측정에 혼선이 온다. 그래서 어떤 지점에서는 샷이 길어지거나 짧아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거리목(거리를 알 수 있도록 심어놓은 나무)에만 의존하지 말고 야디지(홀인 코스의 거리를 야드로 표시한 숫자) 북을 참고해 매번 거리를 계산해야 한다. 아니면 스코어 카드를 보고 거리를 역산해 측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와이 마우나케아

    오르막에 좌우로 긴 벙커가 그린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홀. 환상적인 코스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두 번째는 오션 브레이크(Ocean break) 현상이다. 그린이 높은 산봉우리를 기준으로 바다 쪽을 향해 아주 빠르게 흐르는 현상을 말하는데, 해안가 골프 코스 대부분이 그러하다. 반대로 산쪽으로 향한 퍼트는 잘 굴러가지 않아 애를 먹는다. 코스 설계자들은 여기에 덧붙여 홀을 서로 교차시켜 방향감각마저 잃게 만들기도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프로치나 퍼트를 하기 전에 어느 쪽에 높은 봉우리나 산맥이 있는지 확인하고 그린의 결을 읽고 난 다음 샷과 퍼트의 강약을 조절해야 한다.

    세 번째는 바람 세기의 차이다. 오전, 오후의 바람 세기가 다르며 북풍과 마파람, 옆바람의 세기도 차이가 크다. 마파람이 강하게 불 때는 세 클럽 크게 잡고, 북풍일 때는 그린을 오버하지 않도록 한두 클럽 짧게 잡는 것이 요령이다. 옆바람이 불 때 바람의 세기에 지나치게 신경 써 샷하면 자칫 해저드에 빠질 우려가 크기 때문에 항상 깃발의 나부낌과 나무 꼭대기의 흔들림을 보고 바람의 세기를 계산해 다음 샷을 해야 한다.

    야생 칠면조 습격사건

    마우나케아 코스에는 하와이 전체 6개 섬에 있는 골프장 130여 곳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공략하기 까다로운 시그너처 홀(Signature hole)이 있다. 바로 파3 210야드의 3번 홀이다. 이 홀의 티잉 그라운드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글자 그대로 절경이다. 그린 앞으로 용암이 빚어놓은 해안 절벽이 바다와 맞닿아 있고, 그곳으로 끊임없이 밀려드는 높은 파도가 철썩거리며 흰 포말을 뿜어낸다. 골프보다 자칫 경치에 정신을 빼앗기기 십상이다.

    또 바다 위에는 이곳의 보호동물인 녹색거북 수십마리가 떼지어 떠다니며 헤엄치고, 티잉 그라운드 옆쪽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맑은 물속에서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이 유영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운 좋은 날엔 집채만한 고래가 쿵쿵 소리를 내며 묵직하게 점프하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다.

    하와이 마우나케아

    북태평양을 배경으로 퍼트하는 골퍼.

    이 골프 코스에는 또 하나의 독특한 경험이 골퍼들을 기다린다. 경기 도중 야생 칠면조의 갑작스러운 습격이다. 필자도 첫 번째 도그레그 우측 파4홀 페어웨이와 그린에서 이들의 습격을 당했다. 야생 칠면조 10여 마리가 무리지어 페어웨이와 그린을 장악한 것. 결국 플레이를 잠시 멈추고 이들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온 그린을 시켜놓은 골퍼들은 칠면조가 공을 건드리거나 물고 달아나지 않을까 조바심 치기도 했지만, 골프를 치면서 느긋하게 거닐며 먹이를 찾는 칠면조 무리를 만난 것은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사건’이었다.

    이곳에선 야생 칠면조가 빨리 지나가라고 윽박지르는 행동이나 불만 섞인 괴성 또는 자극적인 휘파람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다른 야생동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만약 골프장에 난입한 야생 동물에게 위해를 가할 경우에는 동물보호와 관련된 엄중한 처벌이 뒤따른다.

    칠면조 외에도 인기척에 귀를 쫑긋 세우고 앞발을 들고 서 있는 흰 다람쥐와 사람이 다가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가롭게 풀을 뜯는 토끼들을 볼 수 있다. 또 당나귀와 멧돼지도 집단 서식하고 있다.

    ‘태고의 성’ 간직한 야생의 필드

    외국에는 이처럼 동물 친화적인 골프장이 많다. 동물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 또한 동물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으면서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그런 ‘태고의 성(性)’을 간직한 이 곳이 진정한 골프 파라다이스가 아닐까. 필자는 야생동물이 마음껏 유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이곳 사람들의 마음에 존경과 한없는 부러움을 느꼈다.

    한편 갯바위 위에 자란 흰줄기 유칼리 나무와 군데군데 소금을 담아놓은 듯한 벙커들, 카디널(홍관조)의 가냘픈 울음소리, 코끝을 찌르는 시원한 바다 향, 바다를 향해 드넓게 펼쳐진 녹색 페어웨이 등은 이 골프 코스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그리고 해 질 무렵 서쪽 바다에 펼쳐지는 석양은 자연이 선사한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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