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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시론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승자의 독식 포기하고, 실천과 자기희생으로 희망을!

  • 전진우 언론인 youngji@donga.com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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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경제 안 살아나도 좋으니…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선적을 기다리는 수출용 자동차들.

진보좌파의 실패가 보수우파의 득세를 불렀다. 그 흐름이 2007년 대선 정국을 지배하고 있다. 이명박-이회창의 보수 다툼이 대선 판도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시대정신이라고까지 말하기는 뭣하다고 할지라도 거역하기 힘든 흐름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보수우파가 집권한다고 당장 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나고, 양극화가 해소되고, 분열된 사회가 통합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에게 신뢰와 희망을 주는 리더십이요, 그것을 구현해낼 수 있는 ‘새 대통령’이다.

독일의 정치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는 정치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덕목으로 열정과 책임감, 균형감각을 꼽았다. 열정은 나라와 국민을 위한 헌신이요, 책임감은 나라와 국민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책무이며, 균형감각은 역사와 시대를 읽는 통찰이자 통합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의 기초다. 역대 대통령치고 나름의 열정과 책임감이 없었던 대통령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균형감각 없는 열정과 책임감은 오히려 시대정신에 역행함으로써 나라와 국민은 물론 권력자 자신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의 현대사가 그런 대통령들로 얼룩져 있지 않은가.

이승만은 건국의 위업에도 불구하고 독재와 부패로 몰락했다. 박정희는 근대화의 초석을 쌓았으나 유신독재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고, 전두환은 정통성 없는 권력이 끼치는 폐해를 남겼다. YS와 DJ는 민주화 투쟁의 중심이었으나 가부장적 리더십으로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우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특히 지역주의를 권력기반으로 함으로써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역기능을 초래했다. 노무현은 비주류의 피해의식 및 주류에 대한 적의(敵意), 독선적인 도덕적 우월감 등으로 지역주의의 틀을 벗어나 국민통합을 이끌어낼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 리더십의 실패는 정권 실패를 넘어 국가 실패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새 대통령은 열정과 책임감에 더해 균형감각을 갖추어야 한다. 여기에는 보수 진보가 따로 없다. 균형감각이 없으면 시대정신도 제대로 읽을 수 없으며, 다양한 이해관계의 집합체인 국민을 통합할 수도 없다. 균형은 어정쩡한 중도(中道)의 방편이 아니다. 무(無)이념의 기회주의도 아니다. 시대의 핵심을 꿰뚫는 정도(正道)다.



오늘의 시대정신이라는 ‘경제 살리기’의 경우를 보자. 노무현 정부 4년간의 평균경제성장률은 4.25%로 같은 기간 세계 평균경제성장률 4.9%에도 못 미쳤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력도 일궈내지 못했다. 그러므로 성장이 필요하고 우선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성장만으로 일자리가 늘어나고 양극화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기술혁신과 정보화로 ‘고용 없는 성장’은 이제 낯선 말이 아니다. 최근 통계청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제조업체의 유형자산이 10억원 늘어났을 때 고용증가 인원은 2003년 36.7명에서 2004년 18.2명, 2005년 3.0명, 2006년 2.3명으로 급속히 줄어들었다. 근로자 300명 이상 대기업의 경우 유형자산을 10억원 늘려도 고용인원 증가는 1.6명에 그쳤다. 이는 대규모 제조업체의 투자가 자동화 설비를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투자확대에 따른 고용창출 효과가 갈수록 떨어지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비정규직은 지난 4년 새 110만명이나 늘어난 570만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36%에 달한다. 이들의 임금수준은 정규직의 63.5%다. 그렇다고 당장 해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비정규직을 무리하게 정규직으로 전환하려 들 경우 오히려 비정규직 일자리마저 없어지는 악순환을 피하기 어렵다. 이렇듯 신자유주의의 세계경제 질서 아래서 양극화는 일정부분 상수(常數)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분배가 성장의 대립적 가치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성장은 우파, 분배는 좌파의 슬로건이 아니다. 성장을 통한 분배는 좌파든 우파든 피할 수 없는 공통의 과제다.

‘국민성공시대’ ‘가족행복시대’ ‘따뜻한 시장경제’란 구호보다는 어떻게 성장하고 분배할 것인지 구체적 청사진을 내놓고 국민을 설득하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당장 일자리를 늘리고 양극화 문제를 풀겠다고 흰소리를 치기보다는 그 과정의 어려움을 인내하고 함께 노력하자고 해야 한다. 그렇게 비전을 제시하고 실행에 대한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열정과 책임감, 균형감각 있는 바른 리더십이 아닌가. 새 대통령은 이런 리더십을 국민에게 보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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