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호

도로 위의 성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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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의 성만찬
바퀴는 무심코 밟았다,

앞서 간 바퀴가 깔아뭉갠 고양이 한 마리를.

물컹하게 흩어진 살과 피가

도로 위에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하고

성만찬을 나누듯



피와 살을 나누어 갖는 바퀴들.

쓰레기봉투 앞을 어슬렁거리던

밤의 제왕이 건네는 마지막 포도주를

바퀴들은 눈을 꾹 감고 마셔버린다.

그리고 뭉쳐진 그의 살점을

이리저리 떼어 삼키며 지나간다.

이제 바퀴들에게는 어떤 두려움도 없다.

고양이의 삶이 그러했던 것처럼

핏자국을 전파하는 과속의 전사들,

바퀴들은 달리고 또 달린다

마침내 도로 위에 그가

납작한 가죽 한 장으로 남을 때까지.

도로 위의 성만찬
나희덕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등 수상

저서 :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사라진 손바닥’ 등

現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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