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호

프랑스 아를

황소와 함께 춤을

  • 사진/글 최상운 (여행작가, goodluckchoi@naver.com)

    입력2009-01-29 16: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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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아를

    달리는 소를 잡으려고 사람들이 그야말로 벌떼같이 몰려들기도 한다.

    아침부터 밖이 소란해서 내다보니 발코니 아래 광장에서 사람들이 차단막을 설치하고 있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만드는데 소가 이곳으로 달리게 하려는 것이다. 차단막은 구경꾼들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리라. 이제 조금 있으면 저 아래로 소들이 미친 듯 질주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맨손으로 그 소를 잡으려 할 것이고.

    달리는 소를 맨손으로 잡다니. 어찌 생각하면 정신 나간 짓 같아 보이지만 이는 아를의 부활절 축제에서 중요한 행사다. 시내를 관통하며 만들어놓은 길로 소들이 맹렬하게 달리면 어떤 이는 소를 피하는 묘기를 보이고 어떤 이는 소에게 달려든다. 이걸 용감하다고 하든지, 무모하다고 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리라. 부활절을 맞은 프랑스 아를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 약간은 흥분된 마음으로 호텔을 나선다.

    부활절 축제

    호텔을 나와 조금 가다 보니 원형 경기장((Arenes)이 나온다. 로마제국의 속주였던 프랑스 지방의 여러 원형경기장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은 1세기경에 지어졌다. 2만여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으며 외벽의 높이도 21m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다. 그런데 바로 오늘 부활절 축제를 맞아 이 앞에서 흥겨운 야외 음악회가 열렸다. 스페인에서 온 악단이 익살맞은 악장의 지휘에 따라 정말 신나게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계단을 빽빽이 메운 것도 모자라 근처 카페의 2층에까지 올라가서 즐거운 음악에 열광하고 있다. 그들과 함께 힘껏 박수를 보내다가 시내 남쪽의 대로인 불바르 데 리스(Boulevard des Lices)로 발길을 옮긴다.

    프랑스 아를
    1로마시대에 세워진 원형경기장 앞에서 흥겨운 연주회가 열렸다.



    2음악과 춤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아를의 밤.

    프랑스 아를
    3밤 공연 무대에는 일반인도 무희와 하나가 된다.

    4축제에는 우스꽝스러운 차림의 사람들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5육중한 검은 소를 잡으려고 소뿔을 잡는 위험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기에 오니 그야말로 구름같이 많은 사람이 모였다. 조금이라도 잘 보려고 나무 위나 도로구조물에 올라간 사람도 꽤 있다. 이곳 역시 호텔 앞 광장과 같이 차단막이 길게 쳐져 있다. 잠시 후 행사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가 울려 퍼지고 근처 카마르그(Camargue)에서 온 사람들이 말을 타고 행진을 한다. 이들은 거대한 야생습지며 자연공원인 카마르그의 카우보이들인데 이들이 바로 소몰이를 한다. 이윽고 카우보이들이 육중한 몸체의 검은 소들을 몰고 나온다.

    처음에는 사람들도 감히 소를 잡을 엄두를 못 내는데 차츰 시간이 갈수록 대담해져서 소에게 달라붙기 시작한다. 한 사람이 소의 뿔을 잡으면 다른 사람들이 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식이다. 하지만 역부족일 때가 많다. 소의 뿔을 무디게 만들었지만 다치는 사람까지 있는데, 이 정도는 사소한 훈장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라 즐겁기만 하다. 이렇게 소와 결투 아닌 결투를 벌이는 것이 스페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라틴 문화의 특성임을 생각하면 꼭 이상하게 볼 필요는 없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제 다시 원형경기장 쪽으로 가본다. 마침 배도 출출해서 근처 식당을 찾다가 파에야(Paella)를 맛있게 만드는 곳에 들렀다. 파에야는 보통 쌀에다 해물이나 육류를 넣고 끓여서 먹는 요리인데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편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주위를 걷다 보니 투우와 관련된 가게가 많다. 그중에서 투우 장면을 그린 그림들이 특히 눈에 띄는데 어떤 곳에서는 직접 그림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아를의 투우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본고장인 스페인의 유명한 투우사들도 경기에 참여해 수준이 상당히 높다. 부활절 기간에 아를에서는 쟁쟁한 투우사들이 참여하는 큰 투우 경기가 원형경기장에서 열리는지라 이 기회에 투우를 관람하기로 한다.

    투우는 시작부터 화려한데, 먼저 경기에 나오는 투우사들이 한껏 차려입고 음악에 맞춰 경기장을 멋지게 행진한다. 그 다음에 대체로 일곱 번의 경기가 펼쳐지는데 경기마다 일종의 라운드가 있다. 실력이 좋은 투우사일수록 짧은 시간에 소를 해치운다. 마지막 라운드에 투우사가 소의 등에 긴 칼을 손잡이가 닿을 정도로 깊숙이 찔러 넣으면 관중은 일제히 하얀 손수건을 흔들거나 꽃을 던지며 환호한다.

    원형경기장의 투우경기

    이런 투우경기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꽤 있다. 작가 헤밍웨이는 투우를 무척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고, 화가 피카소도 스페인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매주 투우경기장에 갔다고 한다. 그들의 작품에서 그 영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소들이 목에서 주먹만한 핏덩이를 쏟아내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 인간의 잔인함에 마음이 다소 꺼림칙해진다. 투우를 금지하는 운동을 벌이는 단체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도 난다.

    이윽고 아를에 밤이 찾아왔다. 하지만 부활절의 아를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 밤늦도록 온갖 공연이 펼쳐지고 사람들은 음악과 춤, 술에 취해 있다. 어느 거리에서 아름다운 기타 선율이 들려와 홀린 듯 따라가보았다. 할아버지와 식구들이 멋진 악단을 만들었는데, 연주와 노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특히 바로 앞에서 듣는 스페니시 기타 연주는 정말 황홀할 지경이다.

    아를에서의 편지를 마지막으로 지중해에서 보내는 편지를 끝마치려 한다. 멀리 있는 당신, 부디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를.

    프랑스 아를
    1투우 경기는 흥겨운 음악과 화려한 행진으로 시작된다 .

    2축제를 맞아 할아버지들도 악단을 만들어 신나는 연주를 들려준다.

    프랑스 아를
    3달려드는 소에게 짧은 쇠꼬챙이를 꽂는 투우사의 모습이 아찔해 보인다.

    4해물이나 육류를 끓여 만드는 파에야가 군침을 돌게 한다.

    ▼Tips

    흥겨운 부활절 축제가 열리는 아를은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문화 중심지다. 봄에는 화려한 민속축제가 있고 여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를국제사진전이 열리는 등 볼거리가 많다. 인기가 높은 부활절 투우를 보려면 전날이나 아침에 표를 예매하는 것이 좋다. 또한 프로방스 지역에는 맛좋은 로제(Rose)와인이 유명하니 마셔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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