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호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 민선식 │YBM 사장

    입력2013-12-18 15:0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지난 10월 미국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대에서 한국의 교육제도, 특히 영어 조기교육을 일본과 비교하며 한 시간 반 정도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우리 교육제도를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선도 그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버드대 교수나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교환교수나 연구원 자격으로 온 사람들까지, 한국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기에 수많은 한국 학생이 미국에 유학을 오고, 또 하버드대나 매사추세츠공대(MIT) 같은 세계 최고 명문대학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공부하는지 무척 궁금해했다.

    나는 교육학자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영어 실력을 평가하는 일에 몸담은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20여 년 전 모 조간신문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토익 시험 성적이 100점 가까이 뒤진다는 것(일본 541점, 한국 457점)을 1면 톱기사로 대서특필한 적이 있다. 지금은 그 신문의 편집국장이 된 기자가, 무역으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이 이래서야 어떻게 세계화를 해서 앞으로 국제시장에서 일본을 이겨보겠느냐고 걱정스러워하는 글을 썼다.

    그런데 사반세기가 흐른 2011년에는 결과가 역전됐다. 한국이 633점, 일본은 547점으로 한국의 토익 점수가 일본의 그것보다 훨씬 높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한국의 토익 성적이 급격히 높아진 시기가 2000년대 후반이라는 것이다. 이때는 바로 초등학교부터 정식으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우리나라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에 나올 무렵이었다. 하버드대 강연에서 이러한 통계를 근거로 역시 언어란 어려서부터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다지도 영어공부에 전심전력하는 것일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경제적인 이유에서다. 한 나라의 수출과 수입을 합친 무역액을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무역의존도를 살펴보자. 한국은 2000년대 들어 100%가 넘는 무역의존도를 기록했다. 반면에 소위 무역대국이라는 일본의 무역의존도는 25% 내외에 머물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나라 사람은 외국과의 교역으로 먹고사는 의존율이 일본 사람보다 4배 높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미 사회에 나와 영어를 잘 활용하는 사람들은 물론, 영어를 제대로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해 고생하는 수많은 부모가 자식에게는 좋은 영어교육을 시켜 더 나은 미래를 열어주고자 큰 희생을 무릅쓰고 영어교육에 나서는 것이다. 이런 사정이 한일 양국의 토익 점수가 크게 역전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영어교육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한국의 영어교육을 부러워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주요 신문과 잡지는 일본 기업들이 국제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에 밀리기 시작한 이유를 분석 기사로 내놓으면서 주요 요인 중 하나로 모두 뒤처진 영어 실력을 지적했다. 우리가 20여 년 전 김영삼 대통령 시절 마땅한 체계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초등 영어교육을 시작한 반면, 일본은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하고 연구하고 토론하는 데 세월을 보내다 최근에서야 일부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직도 상당수 일본 대학의 입학시험에는 영어 과목이 아예 없다. 일본 산업계를 중심으로 다양한 비판과 건의가 자국 영어교육에 쏟아지는 이유다.

    현재 일본의 여러 공공기관과 기업이 우리 회사와 손잡고 사업을 하거나 다방면에서 제휴를 모색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우리 회사가 일본에서 선진 기법과 콘텐츠를 들여오던 ‘을’의 처지였으나 이제는 소위 ‘갑’의 위치에서 일본과 비즈니스를 하게 돼 감개무량하다.

    이런 일본 정서와는 정반대로, 영어교육에서 앞선 우리나라에서는 유아기부터 영어교육을 시키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언제부터 시키는 것이 바람직한지 등을 두고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그중에는 어려서부터 영어공부를 시키면 아이의 정신 및 정서 발달에 큰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고, 영어교육이 필요하지만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이 다 배울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필요한 사람들만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처럼 영어 조기교육에 비판적 견해를 가진 분들이 “왜 영어 조기교육이 필요한가?”라고 물어오면 필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비록 필자가 아동심리학이나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다양한 사례와 경험을 통해 분명하게 밝혀둘 것이 있다. 어려서부터 영어교육을 받은 아이가 원형탈모증으로 고생한다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이에게 영어를 일찍 가르쳐서가 아니라 영어를 잘하게 하려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흔히 가르치는 음악이나 운동도 본인의 적성과 취미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시키면 심리·정서 발달 장애 같은 역효과가 나고 부작용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아이가 공부 스트레스로 힘들어한다 싶을 때는 좀 쉬게 하거나 익힐 양을 조절해 부담을 덜어주고 스스로 흥미를 가질 수 있게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한 조기 영어교육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1995년 토익 점수가 입사시험의 주요 평가요소로 등장하면서 전국 토익 고사장에 사상 최대의 응시자가 몰렸다.

    다음으로, 모든 아이가 영어를 배울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 이에겐 이렇게 되묻고 싶다. “당신의 아들, 딸이나 손자, 손녀에게 영어를 가르치시렵니까, 아니면 안 가르치시렵니까?”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은 좀 심하게 말하면 개인의 영어 실력이 그 사람의 진로를 좌우할 수 있는 나라다. 만약 부모가 아닌 누군가가 혹은 정부가 나서서 특정 학생에게만 영어교육을 시킨다고 가정해보자. 그 때문에 영어를 안 배운 학생은 영어 실력이 크게 뒤처져 취업이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 낭패를 본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또 모든 국민에게 영어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든 국민이 고등학교나 대학까지 진학해 고등교육을 받아야 할 필요가 없으니 국민 일부만 공부시키자고 하는 것과 진배없는 논리다. 그러면 누구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주고, 누구를 배제할 것인지 어떻게 정할 것인가.

    최근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가 사립초등학교에 한 주에 3시간 이상은 영어를 가르치지 말라고 지도하고 있다고 한다. 현행법상 초등학교 1~2학년은 교육과정에 영어를 편성할 수 없고, 3~4학년은 주당 2시간, 5~6학년은 주당 3시간 내에서 영어를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학부모들은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더 많이 가르치지는 못할망정 왜 하고 있는 것조차 줄이라고 하느냐’고 항변하고 있다. ‘주당 3시간’까지만 영어교육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은 이제 현실에 맞게 손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민선식

    1959년 서울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MIT 경영대학원 석사,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박사

    서울시교육감상, 대한민국산업포장, 대영제국 명예훈장(OBE)

    성균관대 겸임교수, 주한 미 상공회의소 교육분과위원회장, 서울대 평의회 의원,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총동창회 이사

    現 YBM 사장, 이화여대 겸임교수, 한국국제학교 이사장


    영어교육 수준이 우리에 뒤져 있다고 여기는 이웃 나라 일본은 우리를 국제무대에서 이겨보겠다고 영어교육에 온 나라가 몰두할 태세다. 이러다가 우리 회사를 포함해 영어교육에 종사하는 우리나라 기업이나 인력이 다시 ‘을’로 돌아가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엊그제 신문 보도를 보니 미국에서 중국어 열풍이 분다고 한다. 미국의 지도층이 무엇이 아쉬워 갓난아기 유모로 중국인을 구하고 중국어를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배우게 할까.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이니, 민간기관에서 공부를 더 하는 것은 개개인의 자율에 맡기고, 배우고 싶은데도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못 배우는 학생들에게 배울 기회를 주는 것이 나라가 국민에게 해야 할 마땅한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에세이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