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통계학자 프랭크 덕워스 박사는 1점에서 8점까지 특정 행위의 위험 정도를 측정했다. 자살이 가장 위험한 8점. 이 기준에 따르면 35세 남성이 하루 20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위험도가 6.9점이다. 암벽등반의 위험도는 4.2점. 탄창에 탄환 한 발만 넣고 돌려가며 자살을 감행하는 러시안룰렛의 위험도가 7.2점. 요컨대 흡연은 사실상 자살행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보로맨의 경고
이 책엔 담배 하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떠올릴 코미디언 고 이주일씨와 관련 있는 내용도 있다. 금연을 권하던 그의 기침 섞인 목소리가 아직 귀에 쟁쟁한데, 그처럼 유명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사실상의 마지막 메시지로 금연을 권한 경우는 드물지 않다. 배우 율 브린너도 이씨와 마찬가지로 투병생활중 TV 공익광고에 출연해 금연을 권했다. 그리고 말보로 담배 광고의 모델 웨인 맥라렌은 스턴트맨 출신으로 광고 촬영을 위해 25년간 하루 30개비씩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1992년 51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가 사망하기 전 남긴 한마디는 다음과 같다. ‘담배가 당신을 죽일 것입니다. 내가 바로 그 산 증인입니다.’
담배산업이 전세계적으로 밀수나 불공정 가격거래 등 불법행위와 깊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암 연구소 또는 학술지에 소속된 유명한 과학자들을 매수해 흡연에 대한 사실을 왜곡시키는 거대 담배회사들의 행태,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학설이 나오기만 하면 전술적으로 반박하는 기사들을 언론에 발표해 찬물을 끼얹는 파렴치함 등이 이 책에서 지적된다. 그 때문일까. 미국에선 담배회사들의 행태가 못마땅해 담배를 끊겠다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담배산업에 초점을 맞춘 책으로 ‘담배, 돈을 피워라’(들녘)가 있다. ‘씨앗에서 연기까지 담배산업을 해부한다’는 부제가 결코 허풍이 아니다. 특히 첫 흡연이 개인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담배산업계가 조장하는 이미지 세뇌에 따른 타율적 행동이라는 지적이 인상적이다. 담배업자들의 유일한, 최대의 관심은 예비 소비자들의 잠재의식을 자극해 행동을 유발하는 결정적인 순간, 즉 시용결정(trial decision)에 있다는 것. 예를 들어보자.
미국의 거대 담배회사들은 담배를 교양·자신감·자유 등 긍정적 이미지와 연관짓는 마케팅 및 브랜드전략을 구사한다. 여성에 대해서는 날씬함의 이미지를 담배와 연관짓는 전략을 펼친다. 실제로 1927년 럭키스트라이크 담배는 비만여성과 담배 피우는 늘씬한 여성을 대비시켜 매출을 1년 사이 3배로 늘렸다.
물론 1990년대 들어와 미국에선 담배 광고가 어렵게 됐고, 담배업계는 2460억달러라는 엄청난 배상합의금을 내놓아야 했다. 그렇다면 담배산업은 이제 사양산업이 될 것인가? 저자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새로운 경쟁자의 담배시장 진입이 어려워짐으로써 기존 회사들의 위상이 강화됐다는 것. 더구나 3.5달러짜리 담배 한 갑엔 배상합의금(41센트), 변호사수임료(5센트), 주 정부측 변호사경비(4센트)까지 포함돼 있으니, 담배회사들이 배상합의금에 개의치 않는 게 당연하다.
담배회사들의 교묘한 상징조작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에서 여성 흡연율을 높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사람이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조카 버네이스라는 점이다. 그는 담배회사로부터 여성 고객 공략법을 조언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 ‘담배를 자유의 상징으로, 그래서 흡연을 일종의 승화된 구애로 여기게 하라.’ 버네이스는 19명의 늘씬한 신인 여배우들이 뉴욕 맨해튼에서 담배를 집은 손을 흔들며 ‘자유의 횃불’이라고 소리치는 광고를 제작하기도 했다.
혹시 프로이트가 버네이스에게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 사진 속에서 늘 담배를 든 프로이트고 보니 그런 의구심이 이유 없어 보이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24세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 말년에 구강암으로 서른 번의 수술을 하면서도 담배를 놓지 않았던 골초 중 골초다. 그런 프로이트를 주제로 한 책이 ‘프로이트와 담배’(뿌리와이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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