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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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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자연의 중간쯤에서 양쪽을 다 기웃거려야 하는 나이에 이른 탓인지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해진다. 이름이나 단어도 그 중 하나다. 정지용 시인이 당시 아무개 시인의 글을 두고 쓴 글이었던 것 같은데, 콩의 빛깔을 두고 ‘누렁 콩 푸렁 콩을 줄게’라고 표현한 구절을 들먹이면서 ‘푸렁 콩’이라는 소리가 그렇게 신선하고 절묘하다고 했다. 아마도 햇완두콩의 연두색을 이르는 말이었을게다. 30년도 더 전에 읽었던 이 글이 요즘 새삼 염두에 달라붙는다. 사어(死語), 조어, 공리어(公利語), 유행어가 판을 치는 세태에 숨통이 막혀서일지 모른다.

어른이고 아이고 요즘처럼 입이 더럽혀진 시대가 또 있을까. ‘매우’ ‘아이 참’과 비슷한 뜻의 부사가 ‘졸라’로 요약되고, ‘사랑한다’는 소리가 ‘먹는다’로 바뀌고 있다. 급전직하, 본능어만 남는 세상이 된다면 주고받는 인사조차 바뀌어 ‘너 잡아먹을까, 살려줄까?’로 하루가 시작되지 말란 법도 없다. 온통 상욕으로 도배되지 않으면 먹혀들지 않는 대사에 질린 탓인지 그렇게 좋아하던 영화관에도 발길을 끊었다. ‘트랜스젠더’니 ‘설거지 거드는 남자’니 하는 일견 새롭고 그럴싸해 보이는 바깥세상의 유행어 따위가 어떻게 마음에 스며들 여지가 있겠는가.

‘영혼’이니 ‘정신’이니 하는 소리도 듣기 싫어진 말 중 하나다. 이건 분명 야잡한 그런 말의 상대쪽 언어고 문청(文靑) 때는 애지중지하던 단어였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혐오스러워진 것일까. 모르긴 하되 이건 주변 환경이 만든 심리적 요인 탓인 것도 같다. 사회 일각에 이른바 ‘중산층’이란 말이 생겨나면서 그 계층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즐겨 쓴다는 심증이 가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사람들이 허세를 메우려고 그런 단어를 자신의 배경으로 삼고 있는 듯한 심증만은 또 어쩔 수 없다.

중산층이 되려면 무엇보다 소양과 예의부터 갖춰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정신도 영혼도 깃들이지 않는다. 졸부가 비싼 그림 사다 걸어놓고 문화에 일가견이 있는 척하는 행태와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여 그렇다는 소리다.

어째 봐도 쉬이 잠들 수가 없어 강아지를 데리고 새벽 거리를 거닐 때 느닷없이 ‘장미가 대체 뭐길래?’ 하는 요령부득의 말이 떠올랐다. 무슨 노래를 속으로 흥얼대고 있었거나 아둔한 망상 같은 것에 젖어있었던 모양인데, 그야말로 뚱딴지 같은 상념이요 문장이다. 반생을 두고 장미라는 꽃을 마음에 깊이 담은 적이 도대체 몇 번이나 될까.



꽃이라면 무조건 환성을 올리는 여자들은 본성이 원래 그렇다고 쳐도, 남자들의 의식구조란 그렇게 되어먹질 않았다. 작업실에 간혹 꽃을 들고 들어서면서 실내뿐 아니라 주인의 마음까지 일거에 밝혀주는 이들도 있지만, 보통은 내놓고 칭찬도 별로 못 듣고 잊히기 쉬운 미덕일 것이다. 그러니 이런 기괴한 의혹도 꽃 자체가 아니라 이를테면 ‘네가 뭐길래?’ ‘사는 게 대체 뭐길래?’라거나 하다못해 ‘여자가 뭐길래?’ 하는 상념과 맥락을 같이할지 모른다.

삶에 지치고 허기져 작은 다락 같은 곳으로 숨어들어 어디선가 묻어올 듯한 흐린 선율에 종일 귀를 기울이던 추억이 내게도 있다. 옛 프랑스문화원 바로 옆댕이에 있던 ‘예방’이라는 이층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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