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장 기업도시를 반대하는 할머니들이 지팡이를 짚고 시위하다가 다리쉼을 하고 있다. 누가 이들을 잠 못 들게 하는가.
여기다가 기업도시의 내용을 살펴보니 골프장의 비중이 가장 높다. 아주 큰 골프장이란다. 보통 18홀 정도면 웬만한 대회를 치를 수 있다는데 이 곳은 45홀이라니 숫자로 어림잡아도 꽤 큰 것 같다. 이러한 골프장이 전주를 비롯한 수백만 시민의 젖줄인 용담댐 상류지역에 들어설 예정이다.
이번에는 바다가 그립다
그런데도 개발이 강행된다면? 내 머릿속 그림이 복잡해진다. 도시를 떠나 산골로 왔는데, 바로 가까이에 도시가 생긴다.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낯선 사람들로 복잡해진다. 가난하지만 정을 나누며 살던 삶의 흔적은 차츰 사라질 것이다. 이웃간의 단절과 소외. 나아가 도시형 범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림들이다. 예정대로 기업도시가 들어선다면 우리 식구는 이 곳에 오래 살 것 같지 않다. 이래저래 우리네 일상이 흔들린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새 삶을 꾸린다면 살고 싶은 곳은? 얼른 떠오르는 답은 두 가지다. 더 깊은 산골이거나 아니면 바다 가까운 곳. 이 둘의 공통점은 자연이 주는 혜택을 좀 더 많이 누리고 싶은 데 있다.
어디를 먼저 가볼까. 이곳저곳을 눈으로 보는 여행은 흥미가 없다. 좋다고 해서 막상 둘러보면 방송이나 사진 또는 책으로 느끼는 감동보다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일을 좋아한다. 어디서든 몸으로 하는 일이 없다면 하루가 허전할 것이다. 그러니 여행을 하더라도 ‘일상이 있는 여행’을 꿈꾼다. 우리의 일상이란 사실 대단한 게 아니다. 따지고 보면 몸 움직여 먹을거리를 구하는 일이다.
여행지에서 일상처럼 보내자면 그 지역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을 잘 알아야 한다. 그 점에서 우리 식구는 운이 좋다. 바닷가에서 봉화 산골까지 이러저런 인연으로 아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이번에는 바다가 그립다. 그 가운데 저 멀리 남쪽 끝, 진도로 가보기로 했다. 우리 이웃에 살던 이가 진도로 이사를 가서, 우리한테 오라고 한 것도 이유였다.
그래, 우리가 바닷가에 산다고 생각하고 한번 지내보는 거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지금 여기 삶’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여유를 얻을 수도 있으리라.
지도를 가져다놓고 진도를 찾는다. 멀다. 긴 시간 차 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몸이 다시 움츠러든다. 그런데 변수는 뜻밖에도 아이들이었다.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자 아이들은 처음부터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은 부모가 없는 동안 자기들끼리 어찌 지낼지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 미적거리자 ‘계획대로’ 여행을 가라고 반강요(?)를 한다. 그 이유를 물었다.
“글쎄요? 우리 둘만 있어 보고 싶어요.”
‘마약’ 같은 곶감
아이들에게 떠밀려 ‘가지 않으면 안 될 여행’으로 바뀌었다. 우리 부부가 여행을 떠나는 설렘보다 부모 없이 지내보는 아이들의 설렘이 더 큰가 보다. 아이들이 어느새 부쩍 큰 것이다.
계기가 어떻든 막상 여행을 떠나려고 하니 크게 걸리는 게 밥상이다. 집을 떠나 한두 끼는 그런 대로 잘 먹는다. 하지만 하루만 지나도 집 음식이 생각나 참기가 어렵다. 말하자면 ‘밥상 중독’이다. 하루 세 끼를 모두 집에서 먹다 보니 혀가 굳은 것이다.
밥상 중독을 달래보려 이것저것 농산물을 챙긴다. 쌀, 수수, 검은콩, 검은쌀, 무. 이 정도면 집을 떠나도 어느 정도 혀를 달랠 수 있겠다. 아참, 하나 더 챙길 게 있다. 나는 여행을 떠났다가 집이 그리우면 정서가 불안해진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허둥대며 아내에게 “가자, 가자, 그만 가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