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작업의 정석’에서 ‘작업’ 중인 송일국.
리마리오식(式)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느끼한 방법은 주로 남자들의 필살기(必殺技)로 쓰입니다. 지난해 말 개봉해 200만 넘는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손예진·송일국 주연의 코믹 멜로 영화 ‘작업의 정석’에는 이렇게 리마리오 못지 않은 ‘느끼한 전략’이 등장합니다. ‘작업의 고수’인 두 남녀의 불꽃 튀는 대결을 담은 이 영화 속의 건축설계사 민준(송일국)을 볼까요?
그는 ‘작업녀’인 펀드매니저 지원(손예진)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프랭크 시내트라의 음악을 은은하게 틀어놓은 가운데 홍차를 내온 민준은 창밖의 밤풍경을 바라보며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지죠.
“유럽에는 오늘처럼 보름달이 뜨는 밤에 은 스푼으로 홍차를 저으면 귀여운 요정이 나온다는 전설이 있죠. 하지만 오늘은 마법이 통하질 않겠네요. (지원을 은근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벌써 제 눈앞에 요정이 있으니까….”
물론 이 대사는 소녀들이 즐겨 읽는 순정만화 ‘홍차 왕자’의 한 구절을 교묘하게 빌려온 것입니다만, 리마리오식 공략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효과적인 ‘작업법’으로 보입니다. 여자란 지금 당장 대야만한 양푼에 밥을 비벼 입 안 가득 퍼먹는 현실을 살지라도 늘 마음속에 한 덩어리의 낭만과 꿈과 판타지를 품고 사는 존재이니까 말이죠.
‘작업의 정석’에는 이밖에도 남자들이 구사할 만한 고전적인 ‘작업법’이 여럿 소개됩니다. 우선 여자의 동정심과 모성애를 자극하는 방법이죠. ‘너무나 힘겹고 가난한 연애시절’이나 ‘사랑했던 여자가 죽었다’고 하면서 어두운 과거를 팔아먹는 겁니다. 물론 다 거짓말이지만. 민준은 정신과 여의사 지영과 상담하면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지영의 마음을 도둑질합니다.
“담배 한 갑에 20개비. 그러니까 한 개비에 100원인 셈이죠. 그걸 사기 위해 차비를 아껴왔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어요. 그녀는 먼 거리를 걸어서 왔던 거예요. 그것도 모르고 담배를 피워온 저 자신에게 화가 나서, 미친놈처럼 소리 지르고 있을 때 그녀가 조용히 말했어요. ‘화내지마…, 네 손가락 끝에서 벌써 30원이 타 들어가고 있어.’ 그녀는 꼼짝할 수 없게 나를 잠재우는 그런 여자였죠.”
눈물을 글썽이면서 민준은 다음과 같은 결정타를 날립니다.
“그녀가 죽은 후 지금까지 1년이 넘도록 깊이 잠들어본 적이 없어요. 며칠 밤을 꼬박 새우고 쓰러져도 깨어나면 겨우 30분…. 단 한 번만, 정말 단 한 번만이라도 그녀를 안을 수 있다면 전 잠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여의사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죠. 성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