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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와 아더왕의 전설 ‘아발론 연대기’

성배와 아더왕의 전설 ‘아발론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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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와 아더왕의 전설 ‘아발론 연대기’

‘아발론 연대기’(전8권) 장 마르칼 지음/김정란 옮김/북하우스각 420쪽 내외/각 1만1000원

현대에 들어 서양의 상상력은 오래되어 식상해버린 그리스 신화를 떠나 싱싱한 켈트 신화로부터 힘을 얻고 있는 듯 보인다. 이 말은, 켈트 신화 또한 오래된 것이지만 그리스 신화가 오랫동안 햇빛(대중)에 노출되어 신화성이 퇴색되고 휘발되는 동안 켈트 신화는 달빛을 받으며 생명의 기운을 축적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또한 근래에 큰 인기를 끌고 있거나 끌었던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나니아 연대기’ 등의 뿌리가 켈트 신화에 있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켈트 신화의 주인공인 켈트족은 청동기 시대에 지금의 독일 남부 지방에 거주하다가 기원전 10세기부터 기원전 8세기 사이에 이동을 시작해 지금의 프랑스와 영국에 이르렀고 기원전 375년에는 로마를 침략하기도 했다. 켈트족은 거칠고 활동적인 민족으로 유럽에 철기 문명을 퍼뜨렸고 축제, 모험, 전쟁을 좋아했다.

켈트족은 기록 남기는 것을 싫어하고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는 방대한 지역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현재 이들의 흔적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영국의 남서부인 콘월, 프랑스의 브르타뉴 지역에 남아 있을 뿐이다. 따라서 켈트신화는 이들 지역에서 전승되는 것이 중심이고 ‘아발론 연대기’의 주요 무대 또한 이곳이다.

‘아발론 연대기’는 다누 여신의 일족인 투아하 데 다난이 북쪽에서 아일랜드에 도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북쪽에 있는 네 도시에서 얻은 네 가지 보물을 가지고 나타난다. ‘운명의 돌’로 부르는 돌, 승리의 창, 빛의 검,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풍요의 솥이 그것이다. 여기서 특히 풍요의 솥은 ‘아발론 연대기’의 핵심인 성배의 원형적 이미지다.

투아하 데 다난 부족은 여러 부족과 싸움을 벌이고 결국 게일족에 패해 지하세계로 쫓겨나 신이 되고 요정이 된다. 유난히 아일랜드에 요정 이야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중세 유럽의 풍경

‘아발론 연대기’는 고대 켈트신화와 현대의 신화, 그러니까 신화가 과거로부터 전해지는 옛이야기가 아니라 당대의 삶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때, 현대의 신화라고 할 수 있는 ‘반지의 제왕’ 등의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우선 시기적으로 그렇다. ‘아발론 연대기’는 켈트 신화에서 제기된 여러 주제를 체로 치듯 걸러서 얻은 핵심 주제에 중세 그리스도교의 옷을 입혀놓았다.

그래서 ‘아발론 연대기’에서 다루고 있는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보여주는 모험, 성배의 탐색, 란슬롯과 귀네비어의 안타까운 사랑,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비련 등은 시기적으로 중세 유럽의 풍경을 옮겨놓은 것이다.

12세기를 전후한 중세 유럽의 풍경을 몇 가지로 압축해보면 신성하면서 잔인한 십자군, 제후들의 궁정을 돌아다니며 시와 이야기를 낭송하던 음유시인, 궁정의 로맨스를 떠올릴 수 있다. 이 모두를 종합해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더왕 이야기, 그러니까 이 책 ‘아발론 연대기’다.

저자인 장 마르칼은 후기에서 술이부작(述而不作), 그러니까 각지에서 전하는, 또한 여러 시대의 아더왕 이야기를 모았을 뿐 스스로 덧붙이지는 않았다고 했다. 따라서 8권에 이르는 ‘아발론 연대기’의 엄청난 분량은 고스란히 아더왕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아발론 연대기’는 마법사 멀린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더왕, 호수의 기사 란슬롯, 오월의 매 가웨인 등 원탁의 기사들이 펼치는 모험과 사랑, 퍼시발과 갈라하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성배의 탐색, 이들을 지켜보는 마법사 멀린과 모르간,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사라져 가는지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아발론 연대기’의 기원은 앞에서 살펴본 켈트인들이다. 따라서 ‘아발론 연대기’ 아래에는 신석기와 청동기의 신화와 유산이 켜켜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중세 유럽에서 유행했던 기사들의 모험 이야기와 ‘아발론 연대기’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용어로 구별한다면 일반적인 기사들의 모험 이야기는 민담의 성격이 강한 반면 ‘아발론 연대기’는 신화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예를 하나 들면, 신화학자 하인리히 침머는 원탁의 기사를 대표하는 가웨인이 정오가 될 때까지 힘이 강해지다가 해가 지면 힘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중세의 갑옷으로 몸을 가린 태양신”이라고 해석했다. 이 같은 ‘아발론 연대기’의 신화성에 대해서는 저자와 역자가 상세하게 주를 달고 각 권의 뒤에 해설이 달려 있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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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덕‘신화 읽어주는 남자’ 저자 papu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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