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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섹스를 거부해요

아내가 섹스를 거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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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섹스를 거부해요

20~40대 부부 가운데 10%가 섹스리스라는 조사 결과가 있을 만큼 섹스리스 커플이 늘고 있다.

Q 42세 직장인입니다. 결혼한 지 22년 됐고, 두 아들이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외형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가정은 화목하고 아이들도 잘 큽니다. 문제는 마지막 섹스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는 겁니다. 아이 둘을 낳을 때까지는 별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내가 피곤하다며 관계를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성을 밝히는 편은 아닌지라, 처음에는 혼자 자위도 하고 했지만 이젠 그것마저 시들해졌습니다. 아내를 봐도 예전처럼 흥분되지 않고 덤덤합니다. 언제부턴가 발기도 시원치 않습니다. 이러다가 영영 성불능이 되는 게 아닌가 더럭 겁이 납니다. 우리 부부에게 문제가 있는 건가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주변 사람이나 환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의외로 부부관계를 하지 않고 지내는 커플이 많다. 심한 경우 신혼 초가 지난 뒤부터 결혼생활 내내 성관계가 없다는 커플도 있다. 시작은 어느 한쪽에서 피로 등의 이유로 관계를 거부하는 데서 출발한다. 상대방은 한동안 화를 내거나 조르면서 관계를 시도하다가 이윽고 포기 상태에 이른다. 자연스레 두 사람은 서로의 성에 대해 무관심해진다. 성관계 없이 무덤덤하게 생활만을 공유하는 부부다. ‘생활만을 공유하는 부부’라는 말에서는 어쩐지 건조한 외로움이 느껴진다.

부부는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이다. 여기서 ‘함께’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부터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그리고 두 사람의 내면생활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부부는 그동안 아무에게도 드러낼 수 없었던 내면의 비밀스러운 욕동(欲動)을 풀어놓고 상대를 통해 충족시킬 수 있는 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가까울 수 있고, 서로에게 합치감과 완성감을 줄 수 있는 소중한 반려자인 것이다. 그런데 부부로 살면서 내적 생활은 각자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외적 현실만을 공유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 하겠다.

섹스를 통한 유대감 강화는 인류 진화의 산물

“에로티시즘은 죽음에 이르도록 황홀한 생의 찬미다.” 프랑스 출신의 작가 조르주 바타유가 한 말이다. 많은 예술가는 성관계에서 극치감에 이르는 순간을 인간이 살아가며 체험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으로 묘사하곤 한다. 굳이 예술가들을 거론하지 않아도 우리는 누구나 성욕이 식욕, 수면욕과 함께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욕구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일찍이 프로이트는 성적욕동(sexual drive)이 인간의 욕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섹스를 통해 우리는 활력과 기쁨을 얻고 동시에 자신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완성됐다는 느낌, 상대에게 받아들여졌다는 안도감 등 복합적인 감정을 선물받는다.



물론 섹스의 본질적인 목적은 종족 번식이다. 남성이나 여성의 오르가슴은 모두 수태가 더 잘 되도록 하기 위한 진화의 산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섹스의 다른 기능까지 발달시켰다. 파트너와의 유대를 돈독히 하고 유지하는 기능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생식능력이 없는 긴 유년기를 보낸다. 이 기간 아이에게는 어머니의 양육과 아버지의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은 섹스를 통해 부부간의 상호 유대감을 강화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다. 인간에게 섹스를 통한 종족 번식과 유대감 강화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똑같이 중요하다. 성행위를 하면서 두 사람이 느끼는 친밀감도 성적 쾌락 못지않게 가치 있다는 뜻이다.

에로틱한 욕동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즐거움을 추구한다. 즐거움의 대상은 다른 사람으로, 관통하거나 침범하고 싶은, 또는 관통당하거나 침범당하고 싶은 존재다. 에로틱한 욕동 속에서 사람은 상대방과 친밀함과 합침 그리고 섞임을 열망한다. 서로의 경계를 강하게 넘어 들어가 그 사람과 하나가 되고 싶은 열망이다.

둘째, 사랑하는 사람이 성적으로 흥분해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것을 보며 희열을 강화한다. 자신의 성적 욕망에 상대가 사랑으로 반응하면 인간은 황홀의 극치를 경험하게 된다. 이 순간에는 성을 구분하던 일반적인 경계가 사라지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치감을 통해 자신이 남성이면서 동시에 여성인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남녀의 성기가 합쳐지고 감싸지면서 즐거움과 완성감을 느끼게 된다.

에로틱한 욕동의 세 번째 특징은 성의 오이디푸스적 구조에서 유래된 금기를 극복하는, 일종의 반란의 느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스탕달이 지적한 대로 옷을 벗는 행위는 수치심이라는 사회적 관념을 무효화한다. 성행위 후 다시 옷을 입으며 우리는 관례적인 수치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또한 성행위는 상대의 경계를 깨뜨리고 파고듦으로써 상대방을 관통하고 먹어버리는 공격성의 의미도 갖고 있다. 이러한 공격성은 사랑과 결합해 안전하고 즐거운 것이 된다. 그래서 사랑은 피할 수 없는 행복감과 미움의 양가감정을 거뜬히 담아내는 틀이 된다.

멕시코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옥타비오 파스는 사랑을 구성하는 삼위일체적 요소로 배타성, 운명의 끌림, 영혼이면서 동시에 육체인 인간을 꼽았다. 그는 “사랑은 존재의 위험과 불행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고,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지도 않지만, 시간을 확장시켜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며 사랑을 ‘인간 존재와 실존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정의했다.

사랑은 두 사람이 자유롭게 선택한 운명이다. 영혼과 육체가 펼치는 이중주 안에서 인간은 시간의 속박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틈을 발견한다. 그래서 사랑은 ‘지구상에서 축복받은 자가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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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남│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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