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산 사천부자의 자근인 부자.
인문학에 관심이 좀 있는 이라면 플라톤의 파르마콘을 말하면 금방 부자를 떠올린다. 부자는 약이면서 동시에 독으로 유명한 약물이다. 그 성미가 열(熱)하지만 유독(有毒)하다. 물론 잘못 쓰면 유독하다. 아무 때나 유독한 것은 아니다. 부자의 열은 신체 장기의 기운이 막다른 상황까지 가 사지가 싸늘하고 맥이 곧 끊어질 것 같은 이들을 살려낸다. 이른바 회양복맥(回陽復脈)한다. 그러나 그 독은 잘못 쓰면 사람을 죽인다. 물론 법제를 해 독을 완화시킨 부자를 쓰니까 죽음에 이르지는 않지만.
오래전 안방의 인기를 모았던 대하드라마 ‘허준’에서도 이 부자 이야기가 나온다. 부자의 독에 무지한 이가 양기가 다 떨어져서 죽게 된 어미를 부자를 써서 살려내긴 했다. 그런데 너무 욕심을 부려서 부자를 계속 쓰다 그 독으로 눈을 멀게 만들고 말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법제 부자도 지나치게 쓰면 포도막염 같은 안질환이 생기기도 하고 심하면 실명(失明)도 한다. 증상에 맞게 잘만 쓰면 그럴 리는 없다. 칼날이 날카로우면 다루는 사람도 신중을 기해야 하는 법.
법제도 잘해야 되지만 또 적절히 쓰는 것이 중요하고 치고 빠질 때도 잘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부자를 쓸 증상인지 아닌지 변증(辨證·질병의 증후를 변별하고 분석하는 행위)을 잘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한의사들도 웬만큼 경험 있는 이가 아니면 탈이 날까봐 이 부자 쓰기를 겁낸다. 하지만 이런 독품을 잘 써야 큰 병을 잘 고친다. 홍삼 같은 것은 아무나 써도 탈이 잘 안 난다. 변증이 크게 필요 없다. 기껏해야 건강식품이지 약이라 할 수 없다. 그러니 무슨 병을 고칠 수 있겠는가.
보화장양(補火長陽)의 약 부자
그렇지만 이 홍삼도 체질과 증에 안 맞으면 탈을 내는 경우가 왕왕 있다. 별 탈이 안 나 보이는 것도 사실은 의사의 변증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홍삼도 그러한데 부자 같은 독품을 쓸 때 변증을 못하면 큰 일이 난다. 변증을 잘하냐 못하냐가 의사의 실력을 판가름한다. 그래서 변증을 잘하는 이가 명의가 된다.
구한말의 한의사 중에 부자를 잘 써서 명의로 이름을 날린 분이 한 분 있다. 석곡 이규준 선생이다. 장비가 조조의 진중(陣中)에 뛰어들어 장팔사모 쓰듯 거침없이 부자를 써 험한 병을 고쳤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이부자다. 이분이 부자 쓴 처방을 보면 그 과감함에 가히 기가 질릴 정도다. 물론 부자만 잘 쓰신 게 아니고 뭇 병에 대한 작방(作方)이 신통해서 필자에게도 크게 공부가 된다. 변증을 잘하셨다는 얘기다. 석곡의 제자인 무위당 이원세란 분도 부자를 잘 썼다. 역시 명의로 이름을 날렸다. 이분의 제자들이 부산과 경상도 지역에서 주로 활동을 하다 지금은 소문학회라는 이름으로 석곡 선생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 조선의학을 계승하고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이 크다.
보화장양(補火長陽)하는 부자는 잘만 쓰면 참으로 좋은 약이다. 그래서 몸이 냉해 신진대사가 떨어진 이들에게 투여하는 보약 중에도 많이 쓴다. 그러나 부자와 달리 오두는 거풍지통(去風止痛)하는 힘이 더 강해 보약에는 잘 안 쓴다. 모자간이지만 힘이 다르다. 주로 풍한습으로 인한 비증과 역절풍(류머티스성 관절염), 손발이 굳어지며 오그라들어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지구련(四肢拘攣), 반신불수 등에 쓴다. 한(寒)보다는 풍(風)에 더 치중한다. 흔히 오두를 천오(川烏)라고도 하는데, 야생식물인 초오와 달리 중국의 사천부자는 오래전부터 천변에 인접한 밭에서 키우는 재배작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오두의 구근은 야생 초오의 그것보다 훨씬 크고 굵다. 야생의 초오는 엄지손톱만한 씨감자 크기인데, 오두와 그 자근인 부자는 북감자처럼 굵직굵직하다. 원래의 종자가 차이가 있어 한계가 있겠지만, 우리나라 야생 초오도 거름 주고 해서 밭에서 키운다면 혹시 오두나 부자처럼 굵직하게 자랄지도 모르겠다. 자근이 생기지 않은 오두를 따로 천웅(天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