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칸을 방문한 이른바 인기인들의 삶은 1980년대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스타들에 비해 훨씬 소박하고 인간적이었다. 이는 당시 칸 영화제가 오늘날처럼 본격적인 영화시장의 기능을 갖고 있었다기보다 순수한 페스티벌의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당시 칸에 참석한 배우들은 한층 인간적이고 친숙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갔고, 칸 또한 배우와 대중의 직접적인 교감을 중시하면서 축제의 기능에 더 무게를 뒀다. 그런 까닭에 1960년대는 ‘매혹의 향기’를 담은 칵테일 한잔을 주고받으며 은밀한 약속을 보장받아 하루아침에 뜻하지 않은 스타의 길이 열리는 낭만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런 낭만은 당시의 인기인들이 마치 올림픽에 참여한다는 기분으로 칸에 왔기에 한결 더했다. 1954년 실바나 만가노, 로사나 포테스타, 지나 롤로브리지다, 소피아 로렌을 포함해 총 12명의 단출한 규모로 칸을 방문한 이탈리아 ‘대표단’의 경우 단복을 입고 손에 국기만 흔들면 영락없이 올림픽에 참가하는 꼴이었다. 어쩌면 이들 자신도 자국을 대표한다는 긍지를 가슴에 품고 칸에 당도했을지도 모른다.
자연스레 1960년대 칸을 방문한 인기인들은 오늘날처럼 군중의 물결에 떠밀려 숨막혀할 염려가 없었으며, 보디가드 없이도 행사 퍼레이드에 별걱정 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이들은 영화제 기간 내내 마음놓고 칸의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는데, 이런 모습을 지켜본 칸의 주민들 또한 고작해야 매혹적인 여배우의 이브닝드레스나 수영복을 힐끗거렸을 뿐 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20세를 갓 넘긴 잔 모로가 마그리트 뒤라스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모데라토 칸타빌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자(1960년, 13회)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기자와 영화 관계자들이 함께한 만찬 테이블 위로 올라가 하얀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자유분방하게 춤을 췄다는 에피소드는 당시 칸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이후 잔 모로는 다시 칸을 방문하면서 차츰 프랑스를 대표하는 국민배우로 성장했다.
잔 모로뿐 아니라 몇몇 스타는 나이에 비해 조숙한 모습을 칸에 드러냄으로써 칸 영화제를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는 발판으로 삼기도 했다. 이들은 하루아침에 일약 스타로 떠오른 경우인데, 대표적으로 브리지트 바르도와 킴 노박을 꼽을 수 있다. 바르도는 당시 19세의 어린 나이에 칸에 입성, 프랑스 영화 역사상 가장 선정적인 포즈를 선보이며 선풍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또 킴 노박이 1956년 칸에 참석했을 때 프랑스에서는 그가 출연한 두 편의 영화 ‘피크닉’(1955년)과 ‘황금 팔을 가진 사나이’(1955년)를 본 사람이 거의 없었음에도 대다수 기자들은 그의 고혹적인 자태에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프랑스와 트뤼포는 당시 칸에서 킴 노박을 처음 대면했을 때의 충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 있다.
“킴 노박은 마릴린 먼로의 관능미에 로렌스 바칼의 위엄이 동시에 떠오르게 하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지적이며 문화적으로도 매우 성숙한 소양을 갖고 있습니다. 칸의 모든 카메라는 그녀를 따라 긴밀하고 바쁘게 움직입니다. 만약 그녀가 플래시를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기자들은 10초 동안에 10개의 다양한 포즈도 찍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약 반세기 동안 칸을 왕래한 스타들의 모습을 기록한 것은 플래시와 함께 남겨진 사진들, 그리고 때때로 과장으로 점철된 기사들이다. 물론 기자들 앞에선 스타들 또한 의기양양한 모습을 드러내거나 반대로 쉽게 부서질 듯한 가련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등 자신의 고유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동원했다. 칸 역시 스타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창출하게끔 배려했으며, 스타들의 변덕을 잘 참아냈고, 스타들의 전략을 적절히 이용해 영화제가 성장하는 발판으로 삼았다. 이렇게 탄생한 스타들과 그들의 환상적인 이미지는 언론을 통해 세계 대중에게 당도하게 됐다.
어떤 의도에서건 칸은 일찍이 스타들을 배려해왔다. 그레이스 켈리가 모나코 왕자와 결혼식을 올리느라 불가피하게 영화제 참석이 늦어지자 칸은 그레이스 켈리의 스케줄에 맞춰 개막 시간을 조절하는 ‘인내’를 보였다. 리타 헤이워스 같은 스타는 칸에서 미래의 남편감을 만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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