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파리’ 레바논 베이루트”](https://dimg.donga.com/egc/CDB/SHINDONGA/Article/20/06/07/27/200607270500016_2.jpg)
“팔레스타인 땅(이스라엘)에 주이쉬(유대인)가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하는 한 타협은 없다”는 구호를 외치는 헤즈볼라는 레바논의 베카 계곡에 자리잡은 초강경 이슬람 과격단체다. 또 헤즈볼라의 자금줄이 이란이라는 데 이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레바논은 수많은 종파와 정치세력과 외세가 만수산 드렁칡마냥 얽히고 설킨 나라다.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서 육로를 통해 레바논으로 들어가다가 국경도시 마스나가 가까워지면 첫눈에 들어오는 것이 길 아래 개천변. 쓰레기가 바람에 풀풀 날아다니고 만국기처럼 빨래가 펄럭이는, 갈 곳 없는 팔레스타인 난민 텐트촌이 그곳이다. 철없는 아이들은 텐트 사이 조그만 공터에서 흙먼지를 날리며 축구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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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수많은 총알자국으로 골프공처럼 되었고, 유리창은 산산조각이 났고, 기왓장이 군데군데 날아간 지붕엔 잡초가 을씨년스럽게 돋아났다.
길가 건물도 마찬가지다. 빈 집은 그렇다 치고 사람이 사는 집도 벽의 총알 구멍을 자랑이라도 하듯 방치해두고 있다.
베이루트(Beirut). ‘중동의 파리’라 불리던 아름답고 풍성하던 이 도시는 처절한 내전으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1975년부터 17년간이나 이어진 시민전쟁은 이 도시를 초토화했다. 지금 악명 높은 그린라인(Green Line)이 동베이루트는 크리스천, 서베이루트는 모슬렘(이슬람교도)으로 이 도시를 두 동강 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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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앞길엔 벤츠와 BMW가 줄을 잇고 색안경에 허연 허벅지를 유감없이 드러낸 아가씨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불탄 빌딩 옆 고층 호텔 2층 테라스엔 차양 아래서 정장을 한 비즈니스맨들이 맥주잔을 놓고 열띤 상담을 벌인다.
레바논은 지정학적으로 동·서양이 만나는 곳이고, 지중해와 중동 사막의 접점이며, 종교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이 만나고 인종적으로는 서구인과 동양인이 만나는 접점이어서 충돌을 피할 수 없는 곳이다.
차를 빌려 이 나라를 한 바퀴 돌다가 북쪽 해변의 고도 트리폴리(리비아 수도 이름과 같음)에서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우다 산(3090m)을 넘을 때, 길가에서 양고기를 구워놓고 술판을 벌이던 농업기술자 공무원 세 사람에게 잡혔다.
벌써 곤드레가 된 그들이 권하는 독주를 연거푸 대여섯잔 마시며 시끌벅적하게 떠들다 기다리고 있는 렌터카 운전사에게 술을 한잔 권하자 그는 하늘을 가리키며 손을 내젓는다. 알라신이 내려다보고 있다는 뜻이다.
“괜찮다. 더 높은 곳에 있는 하느님이 술은 마셔도 좋다고 한다.”
내 실수로 모슬렘인 렌터카 운전기사와 술 취한 크리스천 농업기술자 사이에 언쟁이 붙었다. 다른 농업기술자가 나에게 종교를 가졌느냐고 묻는다.
“나는 불교도다(사실 나는 무종교다). 부처는 내 가슴속에 있다. 그는 그런 하찮은 일로 싸우는 너희를 불쌍하게 여기고 있다.”
나는 서둘러 차를 타고 그 자리를 떠났다.
이 아름답고 한적한 산골짝에서도 그들은 갈등을 일으킨다. 시골 마을도 모슬렘 마을과 크리스천 마을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 사우다 산을 넘자 헤즈볼라의 거점 베카 계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헤즈볼라 대원을 만나볼 수 있는가?”
운전기사는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대자연은 평화롭기만 한데 부질없는 인간들은 피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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