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호

충남 공주∼부여

1300년 전으로의 시간여행

  • 입력2003-02-26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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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타는 왕궁, 창칼의 맞부딪침이 지금이라도 눈에 보일 듯하다. 쫓고 쫓기는 군사의 함성과 꽃잎처럼 절벽 아래로 몸을 날리는 여인들의 비명 또한 금세라도 들릴 것 같다.
    충남 공주∼부여

    공산성 머리 위로 두둥실 달이 떴다.

    금강에 달은 느닷없이 떠오른다. 짧게 졌던 노을이 어스름에 묻히기 무섭게 쟁반만한 달덩이가 불쑥 강을 타고 솟아올라 눈 가득 달려든다.

    불그스름하다. 아직 사위지 않은 노을 기가 달에 비낀 걸 왜 모르겠는가. 그런데도 그걸 먼 옛날 백제의 멸망을 지켜보았던 달이 아직 그 통한을 못 이겨 붉은색을 띠었다고 생각하는 건 기자만의 센티멘털리즘일까.

    금강에 떠오르는 붉은 달

    금강을 낀 두 고도(古都), 충남 공주와 부여 기행은 일부러 찡한 아픔을 찾아 느끼는 감상여행이다. 475년, 백제 개로왕이 한강 아차산성에서 고구려군에 참살당하자 그의 아들 문주왕이 남쪽으로 내려와 새롭게 도읍을 정한 곳이 금강 곰나루, 지금의 공주다.

    거기서 5대 64년을 보내고 백제는 다시 서남으로 이동했다. 부여 부소산 자락 사비성에 새 궁터를 잡고 왕국의 부흥을 꿈꾸었다. 그래 한때는 3국 최고의 문화를 꽃피우며 강국의 기틀을 다졌으나 끝내 신라·당나라 연합군의 협공에 멸망하고 만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 사비 천도 123년 만의 일이다.



    스러진 재기의 꿈과 망국의 서러움, 그리고 유린당한 백성의 한숨이 두 도시엔 서려 있다. 벌써 십수세기가 지난 일인데 그런 아픔과 슬픔이 여태 남았겠느냐는 질문은 의미 없다. 금강 남쪽 둑을 따라 공주 부여를 잇는 ‘백제 큰길’을 달리다 보면 덧없이 흐르는 강물과 외로운 소나무, 나그네 가슴을 치는 주인 없는 정자와 바보처럼 덩그러니 떠오르는 달까지, 그 모든 게 형언키 어려운 서글픔을 안았다.

    백제 큰길은 지난해 11월 개통했다. 공주 웅진동에서 부여 탄천까지 22.5km 구간은 굽이굽이 강 흐름을 따라 서남으로 뻗는다. 앞으로 부여 읍내 7km 길을 추가개통하면 6세기 백제인들이 공주에서 부여까지 남부여대, 걷거나 우마차를 밀며 천도해 갔던 그 길이 자동차로 미끈하게 달리는 현대식 도로로 재탄생된다. 충남도는 백제 큰길의 개통을 기념해 가을엔 여기서 전국 마라톤대회도 열 계획이란다.

    널찍하고 시원하게 뚫린 길 옆의 풍광은 참으로 삽상하다. 그런가 하면 잊고 지낸 과거도 역사의 페이지에서 조금씩 들추어준다. 그러기에 공주 공산성에서 부여 부소산성에 이르는, 백제의 옛 자취를 더듬어 가는 길은 불과 반나절 행보지만 시간여행에 나선 듯한 감회를 안긴다. 불타는 왕궁, 창칼의 맞부딪침이 지금이라도 눈에 보일 듯하다. 쫓고 쫓기는 군사의 함성과 꽃잎처럼 절벽 아래로 몸을 날리는 여인들의 비명 또한 금세라도 들릴 것 같다.



    백제 큰길의 공주쪽 시발점은 곰나루(웅진·熊津)다.

    아득한 옛날, 여자로 변한 곰이 사냥꾼을 잡아 남편을 삼고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던가. 이젠 남편이 인간세계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믿었던 곰은 남편의 동굴 밖 출입을 허용했고 그게 재앙이었다. 곰이 잠든 사이 남편은 강을 건너고 목이 터지게 돌아오라 외치던 곰은 끝내 외면당하자 아이들과 함께 깊은 강물에 몸을 던진다.

    공주에 다다라 큰 강줄기를 이루는 금강은 과거 이곳 곰나루에서 급한 물살을 만들었던 모양이다. 배가 뒤집히고 피해가 거듭되자 사람들은 곰의 원혼 탓으로 보고 그를 달래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 공주의 옛 지명 웅진, 즉 곰나루의 너른 백사장과 푸른 송림 안에는 지금도 그 사당이 있다. 1972년에는 백제시대 유물로 추정되는 곰의 석상이 발굴돼 사당에 그 복제품을 모셔 놓았다.

    곰나루 전설은 백제 역사와 흡사하다. 서울에서 쫓겨와 웅진에 두 번째 도읍을 차렸던 백제는 60년 만에 다시 부여로 도읍을 옮겨 떠나간다. 정든 이들을 보내며 애틋한 그리움에 공주는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곰나루 상류에 자리잡은 공산성에 올라가보면 당시 공주가 느꼈을 애틋함이 한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공산성은 해발 110m에 불과한 야트막한 동산이다. 낮지만 천연의 요새다운 요건을 두루 갖췄다. 금강을 옥띠처럼 두른 데다 그 북으로는 차령산맥, 남으로는 계룡산이 철벽 방어선을 만들어준다. 성의 북쪽 공북루에 오르면 금강이 발 밑 절벽 아래로 출렁인다. 강 건너 백사장은 사람들의 손짓까지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시야가 탁 트였다. 그 둑 너머 공주 신시가지의 건물과 조형물도 손바닥에 놓인 듯 가깝다.

    사방 경계에 이처럼 좋은 입지를 갖춘 만큼 공산성은 역사에 그 이름을 숱하게 남겼다. 통일신라 말기 왕위 쟁탈전이 여기서 비롯됐다. 후삼국 왕건과 견훤의 쟁패과정에선 공산성이 첫 번째 점거목표로 등장했다. 거란의 침입을 당해 고려 현종이 이곳에 머물렀고 조선 이괄의 난 때 인조가 피신한 곳도 공산성이었다.

    창칼로 전쟁을 하던 시절은 그렇다 치고 요즘 공산성은 공주에서 으뜸가는 산책로로 각광 받는다. 소나무와 갈참나무 전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사이 오솔길을 거닐며 성의 동서남북 누각은 물론 왕궁지와 정자, 연못 터를 돌다보면 이런 호젓한 성이 왜 그런 험한 전란의 중심에 섰는지 문득 의아해진다.

    고개를 들면 벌거벗은 나무들 사이로 성안 마을의 납작한 자태가 정겹게 다가온다. 오솔길엔 머리 희끗한 노부부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팔짱을 끼고 한가롭게 거닐고 있다. 우리를 안내한 문화유산해설사는 “여긴 주로 중·노년의 데이트 코습니다. 영화를 뒤로하고 사라진 백제 역사와 맞아떨어지는 것 같지 않습니까” 하고 뼈 있는 해설을 건넨다.

    우리의 해설사는 사실 공산성에 들르기 전 무령왕릉에서도 백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토로했다. 능에서 발굴된 매지권에 “백제왕은 돈 1만 매로 토왕(土王), 토백(土伯), 토부모(土父母), 지하의 여러 관리에게 보고하고 이 토지를 매입하여 무덤을 쓴다”고 써놓은 걸 설명하며 “땅은 토지신에 속한 것으로 무소불위의 왕도 멋대로 쓰지 못한다는 백제인의 정신이 여기 깃들여 있다. 요즘 그런 겸손이 있기나 한가”고 일침을 놓은 것이다.



    금강은 부여로 흘러들며 그 이름이 백마강으로 바뀐다. 더 이상 비단 강이 아니라는 뜻인가, 그 강엔 슬픔과 한이 여울져 흐른다. 백제를 침공하던 당나라 소정방이 폭풍우가 일며 넘실대는 강을 건너지 못하게 되자 백마 머리를 미끼로 용을 낚아 강을 잠재우고 사비성을 함락시켰다는 전설처럼 백마강은 아침저녁 노을을 받으면 붉은 핏빛을 띤다.

    그 백마강이 부여 부소산 절벽에 부딪쳐 빙글 반원을 그리며 남쪽으로 머리를 트는 곳이 낙화암이다. 백제 멸망의 그날 오랑캐에게 몸을 빼앗기느니 백길 강물로 뛰어내린 백제 여인들의 한과 정절이 맺혀 있는 곳이다. 낙화암 위에서 강을 내려다보면 시퍼런 물 위에 진 절벽 그림자가 섬뜩하리만치 어둡다. ‘낙화암 그늘 아래 울어나 본들’ 하늘하늘 꽃잎처럼 날려간 여인들이 되돌아오겠냐만 울컥 치미는 감회는 차마 눈물을 억제하지 못한다.

    부소산성이 나당연합군에 함락돼 백제 여인들이 절벽에서 몸을 날린 그날 밤, 백제의 마지막 의자왕은 성을 빠져나와 공주 공산성으로 피신했다. 부소산성의 왕궁과 누각, 병영과 군창지 등이 불타며 뿜는 빛이 사방을 대낮처럼 비춰 왕이 공주까지 도망갈 수 있었다니 얼마나 철저하게 도성이 유린당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공주로 피신했던 의자왕은 닷새 만에 성을 버리고 나와 항복했다. 소정방과 나당연합군 장수들은 왕을 단하에 꿇리고 술잔을 치게 했다. 그 처절함에 백제의 신하들은 목이 메어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역사는 전한다. 비운의 의자왕은 그 뒤 당나라로 압송됐고 장안에서 병사했다. 후세의 시인은 그런 백제의 멸망을 낙화암 아래 물결에 빗대며 애통해했다.

    임금은 두손들고 묶임을 당했다.용도 넋이 빠져 제 자리 못 지킨 듯돌 위에 남은 발자취 아직도 완연하다.낙화봉 아래 물결만 출렁출렁,흰 구름 천년 동안 속절없이 유연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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