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호

크루아상, 치아바타, 고르곤졸라… 아는 만큼 더 맛있다!

[김민경 ‘맛’ 이야기]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2-11-1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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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변에 숱하게 많은 사람으로부터 ‘코로나19 감염담’을 들었지만 직접 겪어보니 듣던 그대로 무척 괴로웠다. 몸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홀로 갇혀 있는 적적함이 고통스러웠다. 2주나 격리를 하던 시절에는 다들 어떻게 이겨냈을지 아찔하다. 아프고 지루하던 중에 친구가 위로차 보내준 빵 한 바구니가 집에 도착했다. 없던 입맛이 돌아올까 싶어 반갑기도 했지만 빵 대신 친구가 오면 좋겠다, 아니 빵이랑 친구랑 같이 도착해 와구와구 먹으면서 떠들면 좋겠다. 지금처럼 날씨 좋은 계절에는 맛있는 걸 천천히 먹으면서 신선한 바람, 산뜻한 계절의 향, 맛좋은 음식과 그 이야기를 두런두런 얼마든지 나눌 수 있는 때이니.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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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내가 집어 들어 한입 베어 먹을 참인, 눈앞에 놓인 크루아상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볼까.

    크루아상은 전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빵으로 바게트와 함께 프랑스를 상징한다. 그런데 이 유명한 프랑스빵의 시작은 사실 오스트리아의 킵펠(kipferl)이라는 빵이다. 1683년 오스만튀르크(현재 튀르키예)의 공격으로 수도 빈이 포위됐을 때 어느 제빵사가 오스만튀르크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었다. 이는 적군을 조롱하고, 적을 야금야금 베어 먹겠다는 결기를 담은 것이다. 다른 설도 있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빵 반죽을 준비하는 어느 제빵사가 오스만튀르크군의 기습을 알아차린 덕에 공격을 막을 수 있었고,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어 승리를 기념했다는 것이다.

    오스만튀르크 상징을 닮은 크루아상

    크루아상은 큼직하지만 솜처럼 가볍다. [Gettyimage]

    크루아상은 큼직하지만 솜처럼 가볍다. [Gettyimage]

    어쨌든 전쟁 중에 오스트리아 빈 시민들이 오스만튀르크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어 씹어 먹은 데서 출발한 것은 매한가지다. 그런데 이와 비슷하게 생긴 달 모양 혹은 뿔 모양의 빵은 독일에도 있었으며 다른 유럽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구워 먹어왔다고 한다. 다만 현재의 크루아상은 오스트리아의 빵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다.

    이후 킵펠은 루이16세와 결혼한 마리 앙투아네트와 함께 프랑스로 건너왔다. 본래 버터와 달걀을 넣어 만드는 부드러운 브리오슈 반죽으로 굽던 것을 19세기 들어 프랑스 사람들이 반죽을 바꿔 굽기 시작했다. 현재의 크루아상은 버터가 듬뿍 들어간 발효 생지를 겹치고 접고 돌돌 말아서 적게는 12층, 많게는 30층에 가까운 결을 만들어 굽는다. 프랑스에서는 버터만 100% 사용한 크루아상은 마름모 모양으로 만들고, 이외의 유지가 들어가는 크루아상은 그 끝을 살짝 꺾어 등이 둥그스름한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어 차이를 두기도 한다. 큼직하고 통통한 이 빵은 크기에 비해 가볍기 그지없는데 한입 베어 물면 파사삭 부서지며, 윤기와 버터향이 동시에 느껴지고 사르르 녹다가 쫄깃하게 씹힌다. 도무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빵이다.

    바게트 역시 뜯어 먹으며 할 이야기가 좀 있는 빵이다. 도대체 이 길고 가는 빵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바게트의 유래에 관한 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역시 오스트리아 빈에서 들어온 빵이 프랑스 스타일로 바뀐 것이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나폴레옹이 유럽 원정 시 가지고 다니기 쉽게 구운 빵이 바게트의 시초’라는 설도 있다. 다른 이야기는 이렇다. ‘제빵사는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일할 수 없다’는 법이 1920년에 제정됐다. 그러나 아침 일찍 맛있게 구운 빵을 손님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제빵사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크고 두툼한 빵 모양을 가늘고 길게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내가 프랑스의 제빵 장인에게 직접 들은 것이다.



    ‘겉바속촉’ 바게트의 발랄한 특권

    바게트는 프랑스에서 가장 보편적인 식품이다. 겉은 단단하지만 손으로 쉽게 찢어 먹을 수 있다. [Gettyimage]

    바게트는 프랑스에서 가장 보편적인 식품이다. 겉은 단단하지만 손으로 쉽게 찢어 먹을 수 있다. [Gettyimage]

    프랑스에 지하철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 다양한 인종의 노동자가 돈을 벌기 위해 이 위험한 일에 뛰어들었다. 고된 노동과 열악한 환경 탓에 노동자와 관리자 간은 물론이고 노동자들끼리의 거친 싸움도 잦았다. 이때 사람들이 먹던 빵은 칼 없이는 잘라 먹을 수 없는 단단한 빵이었으니 누구나 칼을 지녔고, 그 칼은 사람을 공격하는 데도 쓰였다. 결국 칼을 쓰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빵이 절실했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게트라고 한다. 겉은 단단하지만 손으로 쉽게 찢어 먹을 수 있는 빵 말이다.

    평균 65cm 길이의 ‘겉바속촉’ 빵인 바게트는 프랑스에서 가장 보편적인 식품이다. 그런데 바게트에도 식품 피라미드처럼 등급이 있다. 대형 마트에 줄 서 있는 대량생산 바게트가 피라미드의 맨 아래를 차지한다. 그 위에는 생지 반죽부터 성형, 굽기까지를 모두 빵집에서 직접 하는 ‘블랑제리에(Boulangerie)’의 바게트가 놓인다. 마지막 뾰족 지붕 자리에는 전통적인 발효제(르방 levain)를 넣고 만드는 ‘전통 바게트(Baguette de tradition française)’가 차지한다. 전통 바게트의 제조법은 1993년 9월 13일 제정된 법령에 따라야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식사 예절을 중히 여긴다. 당연히 길에 서서 뭘 먹는다거나, 움직이면서 먹을거리를 입에 넣고 우물대는 걸 싫어한다. 그러나 바게트의 동글 뾰족한 끝부분을 길에서 뜯어 먹는 일은 서로 그러려니 해준단다. 오직 바게트만이 갖는 발랄한 특권이다.

    혜성처럼 나타난 20세기 스타 치아바타

    파니니는 치아바타에 여러 재료를 넣어 만든 이탈리아 샌드위치다. [Gettyimage]

    파니니는 치아바타에 여러 재료를 넣어 만든 이탈리아 샌드위치다. [Gettyimage]

    이름은 낯설지도 모르겠지만 브런치 카페, 유럽식 빵집, 이탤리언 식당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먹어봤을 것이 바로 치아바타(ciabatta)다. 보통 ‘차바타’로 줄여서 더 많이 부르는 이탈리아 빵이다. 은은한 연한 갈색이 감돌며 길쭉 넙데데한 혹은 납작 도톰한 모양을 하고 있다. 치아바타라는 이름을 납작한 신발(슬리퍼)에서 따온 게 딱 맞다. 보통은 반으로 갈라 속 재료를 끼워 넣어 샌드위치로 먹는다.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즐겨 먹는 간식인 ‘파니니(panini)’의 주요한 재료다. 파니니는 채소, 햄, 치즈, 오일에 절인 토마토 등을 치아바타 사이에 끼운 후 차게 혹은 뜨거운 철판 사이(이른바 파니니 그릴)에 넣고 꾹 눌러 뜨끈하게 먹는 이탤리언 샌드위치다.

    치아바타의 표면은 단단해 보이나, 구멍이 송송 뚫린 촉촉한 속살과 함께 베어 물어보면 바삭하게 부서지는 대신 쫄깃쫄깃 구겨지며 기분 좋은 발효 향과 구수한 맛을 선사한다. 무심하지만 고유하고 깊은 풍미를 가진 치아바타에서 맛의 나라 이탈리아의 전통이 절로 느껴진다. 아니다. 한 가지는 바로잡아야 한다. 치아바타는 세계인이 즐겨 먹는 이탈리아 빵은 맞으나 거기에 ‘전통’을 붙이기에는 다소 이른 감이 있다. 2080년 정도는 돼야 할까 싶다가도 유럽의 웬만한 전통 아이템을 떠올려보면 2980년 정도는 돼야 ‘전통’이라는 근사한 꾸밈말을 붙일 수 있지 싶다.

    프렌치 바게트에 밀리지 않는 1982년생 식사빵

    치아바타라는 이름은 빵 모양을 닮은 납작한 신발(슬리퍼)에서 따온 것이다.[ Gettyimage]

    치아바타라는 이름은 빵 모양을 닮은 납작한 신발(슬리퍼)에서 따온 것이다.[ Gettyimage]

    치아바타는 나보다도 한참 어린 1982년생이다. 겨우 불혹의 나이에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아니지, 정확하게 말하면 태어나서 3년 만에 영국을 장악하고, 5년 만에 미국 시장을 거머쥐었으며 이후 전 세계로 쭉쭉 뻗어나가 여전히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탈리아의 전통 빵이 아니라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 스타에 가깝다.

    치아바타의 레시피를 처음 확립한 사람은 이탈리아 베네토주, 쉽게 말하면 베니스 근처의 아드리아(Adria)라는 도시에서 제분소와 빵집을 운영하던 아르날도 카발라리(Arnaldo Cavallari)다. 그는 프렌치 바게트에 잠식당한 이탈리아 빵 업계를 구하겠다는 큰 목표를 세우고 밤낮없이 레시피 실험을 거듭했다. 집에서 구운 것 같은, 오래오래 먹어도 질리지 않고, 화학적 공정과 맛을 배제한 진정한 식사빵을 만들고자 했다. 꽤나 오랜 노력 끝에 신선하고 깨끗한 강력분, 물, 소금, 천연 발효제를 섞고 발효해 아주 질척한 반죽의 치아바타를 완성했다. 그는 이 빵에 지명을 붙여 치아바타 폴레시네(Polesine)라고 불렀다.

    그는 빵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알리고 판매했다. 영국 슈퍼마켓 체인을 통해 이 빵의 레시피를 수출하고, 미국에는 제빵사들을 보내 빵을 알렸다. 1989년에는 ‘치아바타 이탈리아나’라는 이름과 레시피를 특허로 등록했고, 1999년에 치아바타 레시피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11개국에 부여했다.

    현재는 그가 부여한 라이선스가 없어도 누구나 이 빵을 구울 수 있다. 저마다의 비결을 더해 통밀로 만드는 이도 있고, 우유나 감자를 넣어 더 쫄깃하고 부드럽게 만들기도 하며, 오일과 허브를 넣어 향과 촉촉함을 더하기도 한다. 그는 결국 프렌치 바게트의 아성에 버금가는 빵을 만들어내고 만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 빵을 아주 오래전부터 먹어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엄마나 할머니가 구웠겠지만 전해지는 레시피가 없고, 이름조차 없었다. 결국 제빵사 카발라리가 레시피를 기록했고, 치아바타라는 이름을 주었으며, 현재 전 세계에서 먹고 있는 것만이 유일한 사실이다. 게다가 이탈리아 폴레시네의 아드리아 마을에 가면 여전히 ‘이곳에서 치아바타가 태어났다’라든지 ‘치아바타 마을’이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치아바타 보호 협회도 그곳에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치아바타의 고향다운 ‘빵의 마을’ 분위기는 딱히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작고 오래된 소박한 마을일 뿐이다.

    마치 고유한 전통을 지녔을 것 같은 치아바타는 그 자체로 완벽하게 맛좋은 빵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떻게 먹어도 본연의 맛이 살아 있고, 어느 나라의 토착 재료와 곁들여도 잘 어울리며 좋은 맛을 낸다. 모든 걸 수용하는 불완전함이 만들어내는 완벽함 덕에 나처럼 빵을 좋아하지 않는 부류도 이 빵만은 입에 넣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무엇보다 먹어보면 역시 맛있고, 자꾸만 ‘전통’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어질 만큼 힘이 느껴지는 빵이다.

    윈슬렛은 먹고, 디캐프리오는 못 먹은 고르곤졸라

    역사상 가장 크고 호화로운 여객선이 1912년 4월 10일 영국 사우스햄프턴에서 출항했다.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이 배는 채 5일도 항해하지 못하고 그 여정이 끝났다. 4월 14일 밤 11시 40분 빙산과 충돌 후 3시간 뒤 침몰해 북대서양에 가라앉았다. 1997년 12월 미국에서 개봉한 후 1998년 전 세계로 뻗어나가 엄청난 인기몰이를 한 영화의 제목이자 실재한 타이태닉호의 이야기다. 나도 친구들과 함께 극장에 조르르 앉아 영화 ‘타이타닉’을 보았다.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나라, 시대 상황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 눈 뗄 수 없이 아름다운 장면, 가슴 벅찬 사운드트랙까지 모든 것이 새롭고 감격스러웠다.

    영화를 본 후 딱 3년 뒤인 2001년 나는 타이태닉에 탑승한 사람들이 먹은 치즈에 대해 공부했다. 푸른곰팡이가 군데군데 피어 있는 블루치즈로 그때까지 한 번도 본 적도, 맛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그 이름은 ‘고르곤졸라(Gorgonzola)’. 한국어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고르곤촐라’(잘못된 발음이다), 태생은 이탈리아 북부라고 할 수 있다. 고릿한 냄새와 진득한 질감의 이 낯선 치즈 한 조각을 맛보는 순간 나는 1912년 타이태닉의 한 부분을 함께한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당시는 이탈리아라는 곳에 머물다 보면 수백 년, 수천 년 전과 수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르던 때였다.

    스트라키노 치즈와 곰팡이의 운명적 만남

    고르곤졸라 치즈의 누르스름한 표면에는 부정맥처럼 푸릇푸릇한 곰팡이가 끼어 있다. [Gettyimage]

    고르곤졸라 치즈의 누르스름한 표면에는 부정맥처럼 푸릇푸릇한 곰팡이가 끼어 있다. [Gettyimage]

    고르곤졸라는 이탈리아가 20세기 초 연간 1만t 넘게 수출하던 치즈다. 그러니 1912년 타이태닉호에 탑승했고, 오로지 1등석 승객의 점심 메뉴에만 올랐다. 호화스러운 1등석 메뉴에 고르곤졸라만 있던 것은 아니다. 영국의 체셔, 스틸턴, 세인트 아이벨, 체더, 네덜란드의 에담, 프랑스의 카망베르, 로크포르 치즈도 함께였다.

    고르곤졸라 치즈 역시 탄생과 관련해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는, 이탈리아 북부 레코(Lecoo)라는 지역에 있던 산속 자연 동굴에서 9세기부터 만들고 먹어온 치즈에서 유래했다는 것. 이 동굴은 평균 온도가 1년 내내 6~12℃로 유지돼 아주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과 유목민의 천연 저장소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실제 지역인 파스투로(Pasturo)산의 발사시나(Valsassina) 계곡은 지금도 ‘치즈의 계곡’으로 불리며 현재까지도 여러 치즈 생산자가 이용하고 있다.

    또 다른 유래는, 밀라노 근처 고르곤졸라 마을에 있던 어느 집에서 무심코 내버려 둔 소젖 치즈에 푸른곰팡이가 피어났다는 것이다. 집을 관리하는 여인이 사랑에 빠지면서 살림에 소홀해졌고, 결국 치즈 근처에 두었던 오물통을 비우지 않은 데서 고르곤졸라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마지막 이야기도 내용이 비슷하다. 어느 여관 주인이 저장고의 치즈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푸른곰팡이가 생겼고, 버리기가 아까워 신선한 치즈와 섞어 두었더니 맛좋은 치즈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고르곤졸라가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이탈리아 사람들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니 이 모든 이야기가 다 맞을 수도 있다. 그중에도 확실한 사실은 고르곤졸라는 스트라키노(Stracchino)라는 치즈에 곰팡이가 피어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스트라키노는 여름 내내 목초지를 돌아다니다가 목장으로 돌아온 소의 젖을 짜서 만들었던 이탈리아 북부 지방의 치즈다. ‘스트라케(Stracche)’라는 단어는 지역 방언으로 ‘매우 지쳤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스트라키노는 지친 소로부터 얻은 젖으로 만든 것이다. 지금까지도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희고 크림처럼 부드러우며 짧게 숙성해 신선한 맛이 나는 치즈다. 이 치즈가 바로 고르곤졸라를 낳았다.

    샐러드·피자와 잘 어울리는 진득한 구수함

    고르곤졸라가 알려지기 시작할 때의 풀네임은 ‘스트라키노 디 고르곤졸라’ 또는 ‘스트라키노 베르데(초록 스트라키노)’였다. 이후 원산지를 보호받고, 생산에 박차를 가하며 고르곤졸라라는 단독 이름으로 유명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고르곤졸라는 두 종류로 나뉘는데 숙성 기간이 50~150일 정도로 짧은 것에는 돌체(dolce·달콤한), 숙성 기간이 80~270일 정도로 긴 것은 피칸테(piccante·매콤한)가 붙는다. 그렇다고 치즈 맛이 달고 맵지는 않다. 부드러움과 강렬함의 차이라고 보면 낫겠다. 더불어 피칸테라는 말 대신 나투랄레(Naturale·자연의), 몬타냐(Montagna·산), 델 논노(del nonno·할아버지의), 안티코(Antico·오래된) 등의 단어를 붙여 부르기도 한다.

    누르스름하고 진득한 표면에 부정맥처럼 푸릇푸릇 곰팡이가 낀 고르곤졸라는 맛있다. 고릿한 향은 잠깐이고 입에 넣으면 부드럽고 진득하며 구수하고 짭짤하다. 감칠맛 가운데에 달착지근함이 배어나고 새콤새콤 짜릿한 순간이 잠깐씩 찾아온다. 샐러드에 후두둑 떨궈 먹고, 피자에 올려 짭조름하게 즐기고, 꿀을 뿌려 조각조각 먹는다. 그때마다 타이태닉호를 한 번씩 떠올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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