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입으로’ 잘 먹고 잘 사는 법 연구
부사 사과와 수미 감자에 닥친 승자의 저주
라면만 먹던 복학생의 덕업일치
푸드 트렌드 세터? 극한 직업
먹는 얘기 하는 게 즐거워
지리적 표시제와 영광모싯닢송편의 승리
한국인 밥상에서 반찬이 사라지면…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지호영 기자]
“까다롭게 먹읍시다.”
문정훈(50)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가 기회 있을 때마다 외치는 말이다.
“까다로운 건 까탈스러운 것과 달라요. 세련된 것에 가깝죠. 세련된 소비자는 자신의 취향과 용도에 맞게 구매합니다. 내 입맛엔 이 제품이 더 맞다, 이 요리에는 저 품종이 좋다는 것을 학습한 소비자는 가격에 덜 민감해집니다. 세련된 소비자가 늘면 생산자는 다양한 제품을 내놓을 수 있어요. 지금까지는 다수확 품종으로 생산비를 낮춰야만 승리할 수 있는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었다면 소비자 중심 시장은 더욱 세분화되고 생물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곧 지속 가능한 미래죠.”
까다로운 소비, 세련된 소비는 미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진정한 미식가는 딸기 하나를 먹어도 품종이 뭔지 알려고 하고 어떻게 재배했는지 궁금해합니다. 돼지국밥 한 그릇을 먹어도 뼈와 내장을 함께 끓여 국물을 냈는지, 아니면 살로만 국물을 냈는지 알고 싶어 하며 탐구하죠.”
사과의 멸종을 막는 품종 다양성
부사 사과(위). 감홍 사과. [뉴스1, 롯데마트]
그러나 최근 부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기후변화로 생산량이 감소하고 착색이 잘 안되며 질병에 취약해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단일 품종이 오랫동안 독점적 지위를 누린 대가가 멸종이라는 재앙으로 돌아올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문 교수는 사과와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는 농산물로 감자를 꼽았다.
“모든 감자를 뭉뚱그려 그냥 감자라고 파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밖에 없을 겁니다. 한국에서 감자는 상처 없이 알이 굵고, 흙이 묻어 있기만 하면(선도 판별) 가격이 구매를 결정합니다. 그러나 분질감자와 점질감자는 근본적으로 그 맛과 쓰임새가 달라요. 삶아 먹거나 샐러드를 만들기에 좋은 감자가 있고 찌개나 국거리로 좋은 감자가 따로 있는데, 그냥 감자라고 팔면 소비자는 알 수가 없죠.”
수미감자. [전북농협]
“질병에 더 강한 품종이 개발되고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다양한 품종, 즉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소비자가 익숙한 것만 고집하면 새로운 품종은 살아남을 수 없어요. 세련된 소비자는 취향에 맞게 다양한 품종을 선택합니다. 그것을 고관여 소비라고 하죠. 그런 소비자를 만드는 건 셰프와 마케터입니다. 새로운 품종이 기존 품종과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지 소개하고 소비자가 다양한 품종에 노출되도록 돕는 역할이죠.”
토종닭 홍보대사 된 교수님
농부도 아니고 셰프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케터도 아닌 농대 교수는 무슨 일을 할까.“1차 생산을 담당하는 농부들과 함께 연구하고, 외식업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셰프와 협업하며, 식품기업의 마케터들과 함께 시장을 고민합니다.”
학문적으로는 연구 영역을 농식품 산업전략, 농식품 마케팅 및 정보경영이라고 설명하지만, 문 교수는 간단히 ‘From Earth to Mouth’라고 한다. 이 땅에서 생산돼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문정훈 교수와 그가 이끄는 푸드비즈니스랩의 연구 영역인 셈이다.
문정훈은 식품산업계 스타 교수다. 그의 이름은 몰라도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먹방’ 유튜버, 국내 1호 ‘치믈리에(치킨 감별사)’와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9가지 치킨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던 몸짱 교수님(그는 대학 시절 합창과 미식축구를 했다)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한 손엔 토종닭, 다른 한 손엔 일반 육계를 들고 크기와 형태의 차이를 보여주고 가장 맛있게 먹는 법(백숙보다는 구워 먹는 게 더 맛있다)을 알려주는 토종닭 홍보대사이기도 하다.
세계 주요 4개국 10개 도시를 20종의 닭 품종을 찾아 떠나는 히스토리채널 ‘위대(胃大)한 계발자(鷄發者)’를 기획하고 직접 출연했다. 또 tvN ‘어쩌다 어른’과 EBS ‘마스터’에 출연해 예의 “까다롭게 먹읍시다”를 외치거나, ‘닭가슴살에 대한 지나치게 상세한 이야기’ ‘토종꿀로 고급 미식(美食) 상품을 만들 수 있을까’ ‘김밥 우영우 효과… K푸드는 한류를 먹고 자란다’와 같은 칼럼을 통해 농산물과 식품의 가치를 발견하고 널리 전달하는 일도 한다.
지난해에는 장준우 셰프와 함께 두 권의 여행기 ‘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와 ‘진짜 스페인은 시골에 있다’를 냈다. 제목은 ‘맛의 멋을 찾아 떠나는 유럽 유랑기’인데 그 흔한 관광 명소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 이상한 여행기다. 오히려 평생 가볼 일 없을 것 같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시골 구석구석을 누비며 신나게 먹고 마시고 논다. 그리고 현지인들과 친구가 된다. 1년의 4분의 1을 외국 어느 시골을 떠돈 덕분에 그는 전 세계에 농부와 요리사 친구가 있다.
“보통 남자들은 술을 마시며 군대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술 마시면서 시골에서 밥 먹던 이야기를 한다. 먹으면서 먹는 이야기를 하는 게 제일 즐겁다”고 말하는 자칭 “문란한 식욕과 음주욕의 소유자.” 그런 그도 시작은 블랙올리브 한 알이었다.
블랙올리브와 맛의 신세계
블랙올리브. [Gettyimage]
“블랙올리브 맛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죠. 세상에 이런 음식이 있구나. 그것이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반찬은 으레 고등어구이 아니면 갈치찌개였고 외식은 회가 아니면 ‘끼니를 때운다’ 수준이었다. 대학 진학 후 서울살이를 하면서 늘 허기가 졌다. 집 떠난 대학생이 든든하게 배를 채울 가장 저렴한 방법은 라면 국물에 밥 말아 먹기. 기숙사에서는 공깃밥이 거의 공짜에 가까운 가격이었다! 라면에 질릴 무렵 군대에 갔고 제대 후 돌아오니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서울대 농과대학은 농업생명과학대학으로, 중국집은 ‘외식의 성지’ 타이틀을 패밀리 레스토랑에 내주었다. 이어 식품산업, 외식산업, 외식문화라는 용어가 자연스러워졌다. 91학번 농대생 문정훈에겐 목표가 생겼다.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연구하자. 블랙올리브가 눈뜨게 한 맛의 신세계는 ‘덕업일치’의 삶을 선물했다.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고민하고 있을 때 최영찬 교수님이 경영학 공부를 권했어요. 기본적으로 농업경제학은 정책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쌀과 고기 같은 일상재의 원활한 공급과 가격 안정이 최우선 정책이죠. 최 교수님은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농업 문제를 정책으로만 해결하려 했다면 앞으로는 농산물의 브랜드, 마케팅, 고객과의 관계가 더 중요해질 테니 경영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뉴욕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카이스트(KAIST) 기술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 그는 뒤통수를 한 대 맞는 경험을 했다.
“어느 날 학과장이 불러 당신의 연구 실적이 좋은 건 알겠는데 어떻게 죄다 먹는 것에 관한 논문이냐, 카이스트라면 하이테크 분야를 연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을 때 저는 두 번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농업과 식품은 하이테크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리고 내가 정말 먹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5년여 만에 카이스트 생활을 접고 2010년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로 옮겼다.
이렇게 먹다가 죽을지도 몰라
2020년 설 연휴, 일본 도쿄 니혼바시에 있는 한 숙소에서 문정훈 교수와 두 명의 연구원은 과식으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연구 주제는 ‘무엇이 혁신적인 바다 단백질 기반 식품일까?’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대한민국 소비자들이 선호할 만한 바다 단백질 기반 간편식에는 어떤 특성이 있어야 할까?’였다.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세 사람은 생선, 조개, 새우 등을 가공해 만든 무려 65종의 냉장·냉동식품을 먹었다.사람이 직접 식품을 먹어보고 오감으로 느낀 맛을 수치화하는 것을 ‘관능실험(sensory test)’이라고 한다. “어차피 시식인데 맛만 보고 뱉으면 되지”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랩에선 어림없는 일이다. 씹다가 뱉어버리면 목 넘김을 놓친다.
“식품과 음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식감(texture)이고, 식감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목 넘김이거든요. 우리 랩에서는 시식할 때 웬만해선 다 삼켜요.”
서울시 도깨비 야시장의 푸드트럭을 심사할 때는 반나절 동안 88개의 음식을 먹었고, 삼겹살집 취재를 위해 여섯 끼를 내리 삼겹살을 먹고, 순창 향토음식을 연구하면서 하루 평균 다섯 끼를 한정식으로 먹었다. 이쯤 되면 덕업일치가 아니라 극한 직업이다.
“이 일을 하려면 일단 많이 먹는 게 유리해요. 참을성도 중요하고요. 아무리 배가 불러도 꾹 참고 먹을 수 있어야 해요.”
토할 것 같아도 목 넘김을 고집하는 인내심이 문 교수를 푸드 트렌드 세터로 만들었다. 푸드비즈니스랩이 매년 연말에 발표하는 ‘푸드 트렌드’ 보고서는 이제 업계 필독서다. 2021년 푸드 트렌드의 키워드는 ‘집밥 2.0’. 요리연구가 백종원의 등장으로 누구나 손쉽게 조리해 먹는 문화가 정착된 것이 ‘집밥 1.0’ 시대라면, 코로나19의 장기화와 함께 간편식이 널리 보급된 것이 ‘집밥 2.0’ 시대다. 2022년엔 탄수화물 소비는 줄고 단백질 선호는 증가하는 3색 단백(축산·수산·식물성) 전성시대’를 예측했다. 아울러 외식 시장에 RMR(Restaurant Meal Replacement·유명 레스토랑의 메뉴를 집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한 대체식품) 비즈니스의 성장에 대해 분석하고 그 미래를 예측했다.
집밥 시대와 프리미엄 쌀의 등장
골든퀸 3호 조선진상미. [조선마켓주식회사]
이 쌀이 조유현 시드피아 대표가 개발한 골든퀸 3호라는 품종의 쌀이다. 문 교수는 “2017년을 기점으로 ㎏당 2500원 이하 저가 쌀 구매는 감소하고 3000원 이상의 쌀 구매가 늘고 있다”면서 “그중에서도 누룽지 향을 내는 골든퀸 3호의 성장이 눈에 띈다”고 했다. 골든퀸 3호는 6년여 만에 재배면적 기준으로 10위 안에 드는 품종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생산지와 판매처에 따라 월향미, 수향미, 조선향미, 백세미 등 다양한 브랜드로 팔리고 있다.
“정부가 다수확품종을 개발해 농민들에게 보급하는 종자 정책은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배고팠던 시절의 관성으로 어떻게 하면 더 생산성을 높일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품종 다양성은 뒷전이었죠. 특히 새로운 품종 개발에 수십 년씩 걸리는 쌀 육종 분야는 민간 기업이 설 자리가 없었어요. 그런데 골든퀸 3호를 통해 민간 종자기업도 성공할 수 있고, 소비자는 품종에 따라 밥맛이 확연히 달라지는 경험을 한 것이죠.”
식재료의 본질을 품종, 생육환경, 생육 방식, 후처리 4요소로 설명하는 문정훈 교수. [지호영 기자]
“흔히 이천 쌀이 맛있다고 하는데 그 지역에서 주로 재배하는 추청 품종과 사토질(모래 성분의 땅)이라는 생육환경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같은 품종이라도 염분이 많은 간척지에서 기르면 또 다른 특성이 나타나죠. 생육 방식은 유기농이냐 질소비료를 썼느냐 같은 재배에 있어 인간의 개입 방식에 관한 것이고, 후처리는 수확 후 바로 도정을 했느냐 한 번 말린 뒤 도정을 하느냐 더 숙성시켰느냐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햅쌀을 선호하기 때문에 쌀의 숙성이라는 개념이 낯설지만 이탈리아 서북부 지역에서 생산하는 아퀘렐로라는 쌀은 수확 후 7년, 10년, 15년씩 오래 묵힐수록 상품성이 높아지고 가격이 올라갑니다. 쌀을 적절한 환경에서 숙성시키면 특유의 풍미가 나면서 표면에 ‘크랙’이 생기는데 리조토를 만들 때 크랙이 많을수록 사이사이로 소스가 배어들어 더 맛있는 요리가 됩니다. 그래서 아퀘렐로 쌀은 향이 날아가지 않도록 캔에 담아 진공 상태로 판매합니다.”
6만 원짜리 생닭, 지리적 표시제의 힘
브레스 토종닭. [Gettyimage]
스페인에는 ‘이베리코 돼지’ 뒷다리를 통째로 염장해 만든 햄 ‘하몬’이 있다. 그중에서도 하부고산(産)을 최고로 치는데, 저마다 ‘하부고 하몬’이라고 우겨 싸움이 붙었다. 결국 2008년 31개 마을에서 생산된 것만 ‘하부고 하몬’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게 하고 엄격한 품질 관리를 하고 있다.
“지리적 표시제는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최근 지리적 표시제를 통해 성공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상품이 영광모싯잎송편입니다. 영광에서 오래전부터 모싯잎송편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영광의 해풍을 맞고 자란 모싯잎과 동부콩으로 만들어야 오리지널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모싯잎송편은 영광 것과 기타 지역 것으로 양분됐죠.”
지리적 표시제는 K푸드의 정체성에도 중요한 개념이다. 중국발 ‘김치 공정’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문 교수는 “김치의 기원이 한국이냐, 중국이냐, 역사가 몇 년 앞서느냐 따지는 것은 소모적”이라고 일축한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김치를 만들지만 한국에서 재배한 배추와 식재료로 한국 전통 방식에 따라 만들었을 때 오리지널 한국 김치로 보는 것이 지리적 표시제입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김밥’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데 김밥과 일본식 ‘후토마키’는 큰 차이가 없어요. 원조여서가 아니라 K콘텐츠의 힘으로 김밥이 뜨는 거죠. 한식을 먹는 것도 하나의 문화 현상이에요. 너무 새로우면 두려워해요. 그런데 ‘방탄 떡볶이’처럼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즐겨 먹었다거나, ‘우영우 김밥’처럼 인기 드라마에서 계속 먹는 장면을 보여주면 간접경험을 통해 낯선 음식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듭니다. 저는 그것을 ‘익숙한 새로움’이라고 말해요. 한식이라는 낯선 문화에 대해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게 된 거죠.”
반찬과 밥의 조합으로 식사하는 한국인 밥상. [Gettyimage]
방탄 떡볶이와 우영우 김밥, 익숙한 새로움
문 교수는 애초 정부 주도로 한식 세계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발상이 아니었다면서 K푸드가 효과적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3단계 방법을 제시했다.“먼저 식품 제조사가 앞장서야죠. 한식 간편식과 소스들이 각 국가의 주요 마트의 매대 위에 올라가서 그 지역 사람들이 가정에서 쉽게 이 제품들을 접하는 것이 중요해요. 마트에 장 보러 갈 때마다 눈에 띄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간편하게 조리해 즐길 수 있어야 하죠. 그렇게 가공식품으로 한식을 접하다 보면 사람들은 제대로 된 한식을 경험해 보고 싶어지고, 이 때 해당 지역에 제대로 된 한식당의 진출이 가능해집니다. 이 한식당의 진출이 두 번째지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 지역의 현지 식당들이 자신의 메뉴에 한식 요소를 가미하고자 할 때 쉽게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만드는 겁니다. 예컨대 핫도그에 김치 소스를 올린다거나, 타코에 불고기를 올린다거나 하는 등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퓨전 음식을 현지 식당에서 내놓고자 할 때, 그들이 현지 식재료 공급업체에서 이 재료들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이 삼박자가 같이가야 합니다.”
대화는 한식이란 무엇인가로 이어졌다. 문 교수는 뜻밖에도 한식의 정체성을 ‘반찬’에서 찾았다.
“한식의 특성은 레시피가 아니라 반찬이라고 생각해요. 반찬을 상 위에 쫙 펼쳐놓고 밥과 반찬을 번갈아 먹습니다. 반찬에 정해진 순서는 없고 조합만 존재합니다. 밥 한 술 뜨고 김치 한 조각 먹고, 이어서 바로 젓갈을 먹지는 않습니다. 너무 짜니까요. 우리는 엄마 품에서부터 반찬을 어떤 조합으로 먹어야 맛있는지 학습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조합을 하면서 즐길 수 있지만 외국인들은 한식의 한 상 차림을 대하면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어떻게 조합해야 할지 당황하죠. 그런데 최근 한국인의 밥상에서 반찬이 사라지고 있어요. 간편식 위주로 먹으면서 예전처럼 이것저것 반찬을 차려놓지 않습니다. 한식이 원디시푸드, 원볼푸드로 변해 가고 있죠. 어제의 한식과 오늘의 한식이 달라요. 내일의 한식은 또 달라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