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피해자는 왜 가해자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을까
●“심야에 조직 수장이 보낸 성적 언급에 대한 대응”
●“사랑은 무조건 남녀 간 애정 표현? 맥락에서 해석해야”
“조직의 수장, 유력 대권 후보, 3선 시장이 부하 직원에게 심야에 연락을 해서 성적인 언급을 하고 그런 제안을 하고 했을 때 피해자가 대응할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포렌식된 자료는 피해자가 자신의 핸드폰에 있는 자료를, 문자를, 포렌식 업체를 통해 복구해 제출한 것이고 그 대화를 주고받게 된 맥락을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가해자의 핸드폰을 최대한 신속하게 압수해 포렌식을 해달라고 요청한 거거든요.
‘사랑해요’라는 단어는 앞뒤 문맥 없는 상태에서 남녀 간에 이성적인 애정을 뜻하는 절대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뒤 맥락을 통해서 이 ‘사랑해요’라는 말이 남녀 간 애정의 표현인지, 아니면 상투적인 표현인지,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요구에 대해 응대하면서 할 수밖에 없는 표현인지, 맥락 속에서 확인이 가능한 것이거든요.
저희는 그 맥락을 가해자의 핸드폰을 통해서 확인을 해달라고 수사기관에 요청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명으로 조사를 받으면서 고소 사실을 드러내지도 않고 신속하게 압수수색을 요청했던 것인데, 가해자는 피소 사실을 누군가를 통해서 알게 된 이후에 자살을 했고, 결국 가해자의 핸드폰은 포렌식되지 못한 상태로 유족들에 반환돼 버렸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보낸 그 포렌식 내용을 보고 피해자가 ‘먼저 보냈다’, ‘피해자가 선을 넘었다’라는 식으로 피해자를 비난하고 사실 관계를 호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맥락을 소거한 상태에서 하는 그들의 주장은, 현실에서 우리가 쓰는 용법과 맞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다는 의심, ‘선을 넘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마트에도 없는 ‘피해자라면’은 편견이자 허상”
●“사건 발생 후 피해자마다 문제 해결 방식 달라”
“피해자라면 이러이러할 텐데, 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편견입니다. 마트에 가면 정말 다양한 라면을 볼 수 있어요. 그러나 ‘피해자라면’은 없어요. 마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피해자라면을 우리가 요구하고 있는 거거든요.
피해자라고 하더라도 사건 발생한 후에 회사에 출근할 수 있고, 수업을 들을 수 있고, 필요하다면 가해자와 만나거나 대화를 할 수도 있습니다. 피해자라고 하더라도 이 피해 사실을 법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 이외에 자기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거거든요.
어떤 피해자는 피해를 입은 후에 가해자를 처벌하기 전까지는 일상생활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또 어떤 피해자는 원래의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건을 진행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피해자가 사건 발생 후에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은 다양하거든요. 그런 다양한 방식을 무시하고, ‘피해자라면 이럴 텐데’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고 허상이라는 거죠. 피해자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안희정, 박원순, 오거돈 등 권력형 성범죄가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권력형 성범죄도 성범죄일 뿐”
●“가해자에게 물어야 할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는 아이러니”
“권력형 성범죄도 성범죄입니다. 아무리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런 행위를 한 사람은 가해자이며, 법의 심판대에 서고, 처벌받고,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하는 주체이거든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권력형 성범죄라는 이유로 가해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가해자에게 물어야 할 책임을 묻지 않고 끊임없이 피해자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생각하고요. 근래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권력형 성범죄 사건에서 우리 사회가 피해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우리 사회가 가해자에게 어떤 관대한 시선을 보이고 있는지 이 상황을 보면 우리 사회의 성인지감수성의 수준이 고스란히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혼의 살인’이라고 하는 성폭력, 우리사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피해자가 숨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움 요청할 수 있어야”
●“2차 가해를 멈추라고 요구하는 공감과 연대”
“흔히들 성폭력을 ‘영혼의 살인이다’라고 표현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살인이라고 하는 것은 더 이상 그 사람이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게끔 만들어버리는 거잖아요.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일상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다만 피해자들은 보통의 사람들의 그저 그런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아무 일 없었던 사람들보다 수만 배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것뿐이거든요. 피해자들도 그들의 일상을 유지합니다. 다만 그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들은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쓰는 피해자들에게 우리는 피해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견고한 편견, 이 편견까지 피해자들의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편견을 깨야지만 조금 더 일찍 용기내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 우리가 피해자에게 어떻게 공감해주고 지지해주는지에 따라서 피해자는 앞으로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 숨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무수하게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2차 가해가 있는 상황에서 어떤 위력 성폭력 피해자가 감히 형사고소를 하고 변호사의 조력을 요청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그러려면 우리가 용기를 내서 피해자를 응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피해자 대신 싸워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차 가해를 하는 사람들에게 멈추라고 얘기를 해줘야 합니다. 우리의 그런 공감과 연대가 결국은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 것입니다.”
-여성가족부 폐지는 왜 반대하나
●“스토킹 살인, 가정폭력 살인 피해자는 누가 보호하나”
●“당장 불이 났는데 소방서 어디로 옮길지 논의하는 꼴”
“대한민국 부처 중에서 기존의 여가부가 해왔던 정책들만큼 현안이 많은 부처도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권력형 성범죄의 피해자들에게 가해지는 이러한 무모한 2차 가해, 그리고 스토킹 살인, 가정폭력 살인, 이 모든 것들이 여가부의 주된 정책들이었거든요. 이런 현안이 있는 상황에서 당장 그 현장에 가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엄벌해야 하는데 여성가족부의 정책을 어느 부서로 옮기고 하는 이런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현장에 불이 나서 소방대원이 불을 끄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소방서를 어디로 옮길지 논의하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연간 100건 가까운 폭력 피해자 구조 사건을 맡으면서 느낀 점은?
●“피해자들에겐 일상으로 돌아갈 용기 필요”
●“수사관, 검사, 판사의 한 마디로 인해 마음의 문 닫을 수도”
“피해자들을 대리하면서 느낀 것은 피해자들은 오래 전에 있었던 일, 단둘이 있었던 상황에서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뒤늦게 문제 제기를 하더라도 증거가 부족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소송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어렵사리 용기를 내서 이런 법적 소송에 들어가는 이유는 가해자의 행위로 인해서 피해자가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가해자에게 알려주고 그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인 책임을 지기 원하기 때문이거든요. 이런 피해자들이기 때문에 사건의 결과보다는 그 사건을 진행하는 과정 중에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훨씬 더 많이 일상으로 돌아갈 용기를 얻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 말씀 드리는 거지만 이런 내용들을 통해서 수사관이 이런 얘기를 했을 때 더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구나, 판사인 내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싶지만 이렇게 질문을 하면 피해자가 더 크게 위축되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릴 수도 있구나, 아 직접 우리 가족의 일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서 이런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올렸을 때 피해자가 이것을 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었구나, 이런 것들을 여러분들이 책을 통해 보시고 적극적으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해나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