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동시에 시작된 동서 냉전의 시대, 소련은 미국과의 체제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군비확충에 열중했다. 덕분에 소련의 항공기 제작사들은 황금시대를 맞았으나 냉전 종식과 소련 붕괴로 군용 항공기 수요가 급감했다. 러시아 출범과 함께 시작된 경제난으로 기술 발전은 지체되었다.
- 그러나 천연자원 수출을 바탕으로 러시아 경제가 다시 살아나면서 러시아의 항공산업은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의 국방과학연구소는 여러 종류의 무기를 설계하는 종합 설계센터다. 반면 소련의 설계국은 특정 무기를 전문으로 설계했다. 주문은 정부로부터 받는다. 설계국은 정부의 요구에 맞게 신형 항공기를 개발하기만 하면 됐다.
항공기 생산은 별도의 시설에서 진행됐다. 이는 한국도 비슷하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설계만 하고, 제작은 한국항공우주산업이나 현대로템 같은 전문 기업이 한다. 소련도 설계국에서 새로운 무기를 설계하면 한국항공우주산업이나 현대로템 같은 공장을 가진 시설이 그 무기를 제작했다.
이러한 무기 생산체계가 소련 붕괴로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소련에서 독립한 러시아의 국내 항공기 수요는 가파르게 감소했다. 일부 설계국과 항공기 생산시설은 우크라이나 등 새로운 독립국가에 편입되었다. 수요는 없는데 설계국과 생산시설이 분산됐으니 모든 것이 어수선했다.
러시아 출범 후 설계국과 생산시설이 합쳐서 하나의 회사가 되었다. 그러나 거듭된 경제난으로 줄도산했다. 이 혼란은 푸틴 대통령 시절인 2005년 항공산업을 살리기 위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함으로써 정리되었다.
2006년 2월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으며 설계국과 항공기 제작시설들이 연합항공기업(UAC)으로 통합됐다. 연합항공기업은 유럽의 EADS를 모방한 것이다.
UAC는 일종의 지주회사이고 그 밑에 일루신, RSK 미그, AVPK 수호이 등이 있다. 연합항공기업이 2009년부터 매출을 확대해 러시아 항공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 되었다. 러시아는 군용기 수출을 전문으로 하는 로스보론 엑스퍼트(ROE)도 만들었다. 연합항공기업이 항공기를 생산하면 수출은 로스보론 엑스퍼트가 맡는다.
러시아의 현재 주력 전투기인 수호이-27(위). 러시아가 만든 5세대 스텔스 전투기 파크파.
러시아 항공산업을 대표하는 기종에는 러시아 최초의 스텔스 전투기인 ‘파크파(PAKFA)’가 있다. 파크파는 전술공군용 차세대 항공 복합체를 의미한다. 파크파는 미 공군의 F-22 랩터 대항 기종으로 개발되고 있다. 초음속 순항기능을 갖춘 전투기로 알려져 있다. 파크파 시제기는 2011년 1월 29일 첫 비행에 성공했다. 현재는 시제기를 이용해 각종 시험평가를 하고 있다. 양산과 실전 배치는 2015년부터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전투기 대표 (미그) (수호이)
러시아 전투기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미그(MiG) 사와 수호이(Sukhoi) 사는, 1930년 말 설계국으로 출발했다. 미그 설계국은 항공기 설계가인 미코얀과 구레비치가 창설했고, 수호이 설계국은 파벨 수호이가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그 설계국은 미그-1과 미그-3 레시프로 전투기를 개발했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1947년 개발한 미그-15는 6·25전쟁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그 후 미그는 소련의 핵심 전투기 설계국으로 급부상했다.
제트 전투기 시대 수호이 설계국은 공격기 설계를 주로 담당했다. 이 설계국은 1983년 9월 대한항공 007기를 격추한 수호이-15 요격 전투기를 개발한 곳으로 유명하다. 냉전 시절 수호이는 미그 아래에 있었으나 소련이 무너진 다음에는 반대가 되었다. 수호이-27 계열은 세계 각국에서 러브콜을 받았고, 러시아 공군의 대표 전투기가 되었다. 반면 미그의 미그-29 계열 전투기들은 러시아 공군에서조차 외면받고 수출 실적도 미미했다. 수호이는 러시아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인 파크파를 개발하고 있다.
■ 수호이의 여객기 (슈퍼젯 100)
슈퍼젯-100(Super Jet 100)은 수호이 사가 만든 차세대 중소형 여객기다. 100인승 규모로 기계적 제어가 아닌 전기 신호로 제어하는 플라이 바이 와이어(Fly-By-Wire) 조종체계를 채택했다.
슈퍼젯-100 개발은 2000년 시작돼 2008년 3월 19일 첫 비행에 성공했다. 대당 가격이 3500만 달러로 경쟁 기종에 비해 저렴하다. 운용 유지비용도 적게 든다는 것이 수호이 사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14대가 생산되었으며, 세계 각국의 민간 항공사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헬기 대명사 (밀) (카모프)
밀의 대표적인 헬기에는 Mi-8/17 다용도 헬기와 Mi-24, Mi-28 공격헬기가 있다. 세계 최대의 수송헬기인 Mi-26도 이 회사가 개발했다.
카모프 사는 하나의 축에 반대 방향으로 도는 2개의 로터를 연결하는 기술을 택한 세계 유일의 헬기 회사로 유명하다. 이런 방식을 택한 것은 로터의 회전반력을 상쇄하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헬기로는 KA-32가 있다.
한국도 밀과 카모프 사가 생산한 헬기를 도입했다. 소련에 빌려준 차관 원리금을 방산물자로 돌려받는 ‘불곰사업’에 따라 밀 사의 Mi-17 헬기를 도입해 경찰청에서 운용하고, 산림청은 카모프 사의 Ka-32 헬기를 도입해 산불진화용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공군도 탐색구조용으로 Ka-32를 도입해 HH-32로 이름을 바꿔 사용하고 있다.
■ 병력 수송 가능한 (Mi-24 헬기)
소련 시절 밀 사가 개발한 공격헬기 Mi-24 하인드(Hind)는 공격뿐만 아니라 병력과 물자 수송에도 쓰였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군은 Mi-24 하인드 공격헬기로 기관포와 로켓탄 그리고 각종 폭탄을 투하해 무자헤딘 게릴라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두려움에 떨던 무자헤딘 게릴라들은 Mi-24 하인드를 ‘사탄의 마차’로 불렀다.
Mi-24는 이란-이라크전쟁 때 미국제 공격헬기인 AH-1J 시코브라(Sea Cobra)와 공중전을 벌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Mi-24는 이라크군 공격헬기였고 AH-1J는 이란군 공격헬기였다. 이란은 미국과 사이가 좋았던 팔레비 왕정 시절 미국으로부터 AH-1J를 도입했다.
공중전 결과에 대해서는 양측의 주장이 엇갈린다. 전쟁 초반에는 이란 군의 AH-1J가 압승을 거두었으나, 이후에는 Mi-24 하인드가 우세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Mi-24 하인드 공격헬기는 6대, AH-1J 시코브라 공격헬기는 10대가 손실되었다. 하지만 이 숫자는 대공화기와 전투기에 격추된 것도 포함돼 있어 두 공격헬기의 성능 차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하긴 어렵다.
Mi-24 하인드 공격헬기는 총 2000여 대가 생산되었다. 개발국인 러시아를 포함해 전 세계 50여 국가에서 운용 중이다.
■ (일류신) (투볼레프) (야크)
투볼레프(Tupolev)는 러시아 항공기 설계국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안드레이 투볼레프가 중심이 돼 1922년 창설됐다. 주로 여객기와 폭격기 등을 개발했다. 대표적인 항공기로는 Tu-22M과 Tu-160 폭격기가 있다.
일류신(Ilyushin)은 1933년 세르게이 블라디미로비치 일류신의 주도로 창설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선 전차 잡는 공격기 Il-2 슈톨모빅(Shturmovik)을 개발했다. 냉전 시절에는 전투기, 공격기, 수송기, 여객기 등 40여 종을 개발했다. 지금은 Il-76 수송기와 러시아 대통령 전용기로 사용되는 Il-96M 여객기를 생산하고 있다.
야크(Yak)는 1934년 야코블레프에 의해 창설돼 수직이착륙 전투기와 훈련기를 생산했다. 야크는 1990년 고등훈련기 겸 경공격기 ‘야크(Yak)-130’ 개발에 들어가 1996년 4월 첫 비행을 성공시켰다. 2010년 2월부터는 양산에 들어갔다. 야크-130은 4.5세대 전투기나 5세대 전투기의 훈련에 적합한 최신예 훈련기로 평가받고 있다.
야크-130은 이스라엘의 고등훈련기 경쟁에서 우리나라의 T-50을 물먹인 이탈리아의 알레니아 아에르마키(Alenia Aermacchi) 사의 고등훈련기 M-346의 모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차기 고등훈련기 도입사업에선 T-50에 역전패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