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저지에 만족하는 3분의 1 의석 고착 가능성
尹, 비상계엄으로 구조적 지지 연합 축소에 쐐기 박아
부·울·경이 집권 가능성 낮은 국힘 계속 지지할지 의문
민주당, 외연 확장 위해 보수층에도 구애 나설 것
![2024년 12월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제안 설명 시작 전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뉴시스]](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8f/35/b8/678f35b81fded2738276.jpg)
2024년 12월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제안 설명 시작 전 국민의힘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뉴시스]
비상계엄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지 나흘 뒤인 2024년 12월 8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친윤(親윤석열) 성향 유튜브 채널 ‘배승희의 따따부따’에서 한 이 같은 발언은 국민의힘 주류가 어떻게 정치적 이해득실을 계산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의 반헌법적 행동에 대한 반감이 팽배해 있지만, 몇 년 지나면 다시 보수 유권자들이 되돌아올 것이라는 발상이다.
만약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돼 조기 대선이 치러져 더불어민주당이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민주당 정권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 정권 심판론 바람을 타고 2022년 대선 때처럼 다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기대도 숨어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를 어떻게든 지연시켜 ‘그래도 이재명보다 낫지 않으냐’는 진영 논리를 결부하려는 프레임 전환을 시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당 20년 집권론’ 현실화 가능성
하지만 몇 년 뒤에 유권자들이 보수로 되돌아올 가능성은 낮다. 도리어 장기적·구조적으로 국민의힘 또는 보수정당이 압도적 소수파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20년과 2024년 총선 결과처럼 민주당이 개헌선(전체 의석의 3분의 2)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고, 국민의힘이 100석 전후를 가지는 게 고작인 구도가 계속 이어지게 된단 얘기다.
1990년대까지 일본에서 거대 여당 자유민주당(자민당)이 우세한 가운데 만년 야당 사회당이 전체 의석의 3분의 1 정도만 차지한 ‘0.5당’ 역할을 했던 것과 비슷하다. 자민당이 1.5당의 지위에 오른 뒤 이른바 ‘1.5당 체제’가 장기화했다.
단순히 윤 대통령의 반헌법적 비상계엄이 유권자들의 보수정당 이탈을 불러일으켜서가 아니다. 지지기반, 동원할 수 있는 자원, 당내 역학 구도 등이 계속해서 보수정당을 ‘주류’에서 ‘변방’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에서 이탈해 2017~2020년 민주당을 지지했다가 다시 2021~2022년 국민의힘을 선택한 유권자 집단이 이후 국민의힘이나 그 후계 정당을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2016~2022년까지 선거는 보수에서 이탈했거나, 중도이지만 보수 성향이 강했던 이들이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그때그때 국면마다 심판론에 동참했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들을 붙잡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고, 그 결과 2024년 4·10 총선에서 패배했다. 총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변화를 꾀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 있다. 하지만 되레 반헌법적 비상계엄을 선택하면서 보수 와해에 쐐기를 박았다.
민주당 산하 민주연구원은 2018년 지방선거 평가 보고서에서 민주당은 모든 계층·연령·성별·지역을 포괄하는 중심 정당이 되고 있는데, 보수정당(당시 자유한국당)은 주변 정당으로 위상이 축소됐다고 평가했다. 주변 정당은 어쩌다 집권하더라도 간헐적일 수밖에 없으며, 대개 중심 정당의 당내 권력 교체를 통해 정권교체가 이뤄진다. 2018년 당시 민주당 중심의 낙관론에서 나온 보고서이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 꼭 들어맞는다. 당시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20년 집권론’을 꺼낸 데 대해 민주당의 오만한 자세가 이후 선거 패배를 불러일으켰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이제 이 전 대표의 발언은 선견지명이 된 듯하다.
국민의힘이 일본 사회당 같은 ‘2분의 1 정당’보다 더 쪼그라들 가능성도 상당하다.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먼저 상위 중산층은 물론이고 이제는 부유층에서도 상당수가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보수 정치의 물적 토대가 무너질 수 있다. 두 번째는 부산·울산·경남의 이탈이다. 정당의 지역 기반은 중앙 정치에서 특정 정당을 밀어주고, 이 정당이 다양한 지역개발 사업과 예산을 확보해 지역 출신 엘리트의 관직을 보장하기 때문에 유지된다. 한때 “대통령이 특산물”이었던 대구·경북과 달리 부산·울산·경남은 1990년대 초반 제조업 블루칼라 중산층이 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라 보수로 넘어온 지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산·울산·경남은 얼마든지 이탈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지지층이 고령층에 국한돼 있다는 점이다. 1960~65년에 태어난 60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보수세가 약하다. 6·25전쟁을 직접 체험한 세대가 점점 사라지고, 고령층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가 다변화하면서 고령자의 보수화 추세도 예전만 못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보수 내에서의 분열이다. 비상계엄 사태는 부정선거론에 동조하면서 강성 우파 유튜브 중심으로 결집한 ‘윤석열 사수파’와 최소한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고 기존 언론사들의 이데올로그 역할을 하는 ‘윤석열 반대파’로 보수를 두 동강 냈다. 이들은 이념 지향과 조직 원리가 다르다. ‘탄핵의 강’을 건너는 것보다 ‘계엄의 바다’를 넘어가는 게 훨씬 어려운 이유다.
![1월 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모인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저지를 위한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8f/36/25/678f362511c5d2738276.jpg)
1월 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모인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저지를 위한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日 자민당-사회당 = 韓 민주당-국민의힘
일본 자민당은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당해 만들어진 일본식 총보수 정당이다. 1958년 총선에서 전체 중의원(하원) 의석의 63.8%를 얻은 이후 2009년 총선을 제외하면 한 번도 제1당을 놓친 적이 없다. 특히 1958~93년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도적 의석을 가진 여당을 맡고, 사회당이 자민당의 절반 정도 의석을 가진 이른바 ‘55년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자민당 초우위가 계속된 데에는 복합적 이유가 있다. 먼저 소상공인, 지방의 농민이나 자영업자 등 구(舊) 중산층, 대기업 경영자 등 암반 지지층의 존재다. 두 번째는 재정지출, 지역개발, 산업 및 복지 정책 등을 통해 다양한 수단을 사용해 다양한 계층과 집단의 이해관계를 만족시켰다는 점이다. ‘토건국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매개로 지역 엘리트와 유권자를 붙잡았을 뿐 아니라 복지 확대에도 적극적이었다. 자민당 내에서 다양한 분파가 경쟁하는 상황은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혔다.
그에 비해 경쟁 정당인 사회당은 지지기반이 협소한 데다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이념 중심 노선을 고집했다. 사회당은 군사·안보 정책을 간판으로 내세웠다.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된 의제는 성장뿐 아니라 복지까지 자민당이 주도했다. 사회당 내 복지국가를 개량주의적 책동으로 보는 기류도 강했다. 결국 전통적 진보정당 지지층인 노동자들이 일본에선 사회당을 외면하게 됐다. 중대선거구제도 자민당에 유리했다. 3~5명을 한 번에 뽑는 방식에서 자민당은 우위를 계속 점할 수 있었다. 한 선거구에서 1명을 꼭 당선시키는 사회당은 현상 유지에 안주하게 됐다.
한국형 1.5당 체제 가능성이 높은 가장 큰 이유는 민주당 지지 연합이 와해될 가능성이 낮은 데 있다. 호남과 수도권의 호남 이주민과 그 자녀 세대, 그리고 이른바 ‘강남 좌파’라 불리는 상위 중산층이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이다. 여기에 충청과 그 이주민, 20~30대 여성 등으로 지지의 외연이 넓어졌다. 인천의 정치 지형 변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계양·부평을 제외하면 보수세가 강했는데, 청라·송도·영종·검단 등 신도시가 잇따라 개발되면서 민주당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충청권에서 이주한 유권자 사이에 민주당 지지세가 확산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신도시 지역에서 보수가 반짝 우세를 보였지만 이내 민주당으로 되돌아갔다.
보수 정치의 변화는 민주당 지지기반에 타격을 주기 어려운 방향으로 향했다. 2000년대 시작된 민주당의 복지 확대와 재벌 개혁 정책에 맞설 만한 경제정책을 마련하지 못한 게 대표적이다. 대신 20년 넘게 부동산 감세만 고집할 뿐이다. 호남과 그 이주민은 호남 차별을 정치적으로 계속 이용할 뿐 아니라, 영세 자영업자나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높은 그들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대변해 주지 않는 보수정당에 표를 주지 않는다.
민주당은 대졸 화이트칼라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대변해 왔는데, 보수는 세대론을 가져와 이들을 반보수로 규정하고 포기했다. 민주당이 재벌 개혁 의제를 주주 권익 보호로 바꿔 금융자산 의존도가 높아진 세대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려 한다. 여기에 지역균형개발이나 여성 권익 보호 등도 민주당이 독점하는 의제다. 보수는 수도권과 지역의 심각한 격차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보수 콘크리트 지지층은 없다
보수 지지층 와해는 지속적이고 가파르게 진행돼 왔다. 갤럽이 2016년과 2024년 총선 직후 실시한 정당별 지지율 조사를 비교하면 잘 드러난다. 50대의 보수정당 지지율은 2016년 40%에서 2024년 27%로 추락했다. 60대도 60%에서 47%로 내려갔다. 또한 블루칼라(30%→19%), 생활수준 ‘하’ 계층(40%→30%)에서 지지율이 하락했다. 대전·세종·충청 권역의 지지율은 35%에서 27%로 떨어졌다. 장·노년, 육체노동자, 가난한 사람들, 충청 권역에서 보수가 쪼그라들면서 영남과 70대만 남게 된 형국이다.
보수의 집권 가능성이 사라진다면 지금 남아 있는 지지자가 더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지지자 연합은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의 영남 지역, 60대 중반 이상 고령자, 서울의 고소득·고자산 계층 등이다. 이들 중 부산·울산·경남과 고소득·고자산 계층은 만년 야당을 찍을 이유가 없다.
한국의 선거는 승자독식이다. 대통령제가 가장 큰 원인이다.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지지 연합에 속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보수(報酬)가 현격히 다르다. 승패가 확연히 갈리는 소선거구제도 대통령제 못잖게 승자독식 시스템을 만든다. 실리적 유권자 집단의 경우 제 목소리를 반영 못 할 0.5당을 찍을 이유가 없다. 대표적으로 ‘지방’이 그러하다.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패권적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지역 출신 재경 엘리트의 직위, 지역 현지 엘리트의 사업 기회, 유권자의 낙수효과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보수정당이 중앙정부 자원에 접근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 대구·경북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이탈은 필연적 수순이다.
고소득·고자산 계층, 나아가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주변 정당을 지지하는 건 정부 정책과 입법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위 계층과 기업은 국민의힘 지지보다 민주당에 영향력을 확보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한국 사회 엘리트층 핵심에 뿌리를 박아야 하는 민주당도 이들을 우군으로 끌어들일 유인이 있다. 최근 민주당 내에서 종합부동산세, 상속세 감세론이 힘을 얻는 건 ‘민주당의 주류 정당화’라는 틀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보수의 위기는 단순히 대통령 윤석열이 일으킨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것이 아니다. 구조적 문제가 있다. 윤 대통령이 패가망신하게 된 이유로 강성 우파 유튜브가 지목되는데, 비전과 실력이 없는 그가 대안을 찾기 위해 분투하기보다 일종의 ‘가상현실’에서 위안을 찾으려 한 것은 이해 못 할 행동은 아니다.
또 보수 정치인들은 쪼그라든 지지자 연합 내에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강성 보수 입맛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 상황이다. 윤상현 의원은 탄핵 반대 집회 단골 출연자가 돼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 체제 그 자체”라고 말하고 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친윤·친한 줄 세우기는 당에 파탄적”이라고 말했던 그가 표변한 것은 대선후보 경선을 염두에 둔 행보일 것이다. 2019~2020년 “제게 돌을 던진다 하더라도 태극기 부대까지 끌어안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던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후 변방으로 밀려난 것을 지켜봤으면서도 똑같은 길을 걸어가는 건, 지금의 보수 지지층이 그때보다 훨씬 더 축소돼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