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호

[영상] “50년 중식 외길, 묵묵히 걷다 보니 ‘대가’ 소리 듣게 됐어요”

[사람 속으로] 한성화교협회 감사장 된 ‘흑백요리사’ 여경래

  • 최창근 에포크타임스코리아 국내뉴스 에디터 caesare21@hanmail.net

    입력2025-02-02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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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교 출신 세계적 중식 요리사

    • 생계 위해 들어선 ‘요리의 길’

    • 정성 전해지는 요리 해왔다 자부

    • 중식 특징은 ‘산해진미’ ‘현지화’

    • ‘여경래 중식’은 덜 기름지고 담백한 스타일

    • ‘오랜 이방인’ 화교에게 마음 열길 바라



    “비 젖어 꺼진 등불 흔들리는 이 세상/ 슬픔을 섞어서 침묵보다 맛있는/ 짜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

    정호승 시인의 시 ‘짜장면을 먹으며’의 한 구절이다. 한국의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외식 메뉴가 다양화하면서 예전의 위상은 잃었지만 ‘짜장면’은 한국의 대표 외식 메뉴이자 국민 음식인 것은 분명하다. 짜장면으로 대표되는 ‘한국화된 중식’은 한국인의 애환과 함께해 온 솔(Soul)푸드이기도 하다. 2025년 1월 현재, 한국 내 중식당은 약 2만5000개. ‘동네마다 중국집’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다.

    경력 50년차 중식 요리 대가 여경래 셰프는 “본토 중식보다 덜 기름지고 담백한 ‘여경래 스타일’ 중식을 대중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해윤 기자]

    경력 50년차 중식 요리 대가 여경래 셰프는 “본토 중식보다 덜 기름지고 담백한 ‘여경래 스타일’ 중식을 대중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해윤 기자]

    가난한 화교 집안 출신, 아버지 여의고 요리사의 길로

    이처럼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외식인 중식에 50년 세월을 바쳐온 셰프(요리사)가 있다. 어린 시절 가정 형편 때문에 ‘요리의 길’로 들어서서 치열하게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대가(大家) 소리를 듣게 됐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이야기하는 그는 지난해 글로벌 OTT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버라이어티쇼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를 통해 다시 한번 명성을 얻었다. 여경래(65) 셰프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화교(華僑)’다. 중국 산둥(山東)성이 고향인 대만(중화민국) 국적 화교 아버지와 한국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늘날까지 그는 대만 국적을 지니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인정하는 ‘100대 중국요리 명인’에 선정될 만큼 한국보다 중국 요리계에서 유명한 셰프다. 세계중식협회 부회장직도 맡고 있고, 지난해 한성화교협회 감사장에 선출됐다. 한성화교협회는 대만의 지도 감독을 받아 재한 화교들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반관반민 단체.

    그는 “세계중식협회 부회장으로서 한국 셰프와 해외 방문을 자주 한다. ‘K-푸드’ 위상이 세계적으로 높고 중식을 만들어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다들 환영해 주는 분위기”라며 웃음 짓는다. 여경래 셰프를 만나 음식과 삶, 철학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중식 요리를 업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날과 지난날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지난날은 배고픈 시절이었다. 먹고살기 힘드니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면서 살기는 힘들었다. 오늘날 세상은 젊은이들이 꿈을 꿀 수 있고, 자신의 적성이나 희망과 직업을 맞출 수도 있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부러운 세상이다. 물론 젊은이들도 고충은 있을 테지만. 나는 가난한 화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경제적으로는 힘든 와중에 어머니가 이런 생각을 하신 듯하다. ‘화교의 후예이니 기술을 배우면 밥벌이는 하지 않겠나?’ 와중에 중식에 입문하게 됐다. 1975년부터이니 햇수로 50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요리사로서 직업에 보람이나 애환이 있다면.

    “요즈음에는 요리사도 선망받는 직업이 됐다. 세상이 많이 바뀌고 직업관도 그러한 것이라고 본다. 보람이나 애환을 이야기하라면 사실 할 말은 많다. 문제는 한마디로 정리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복잡미묘하다는 의미다. 일단 ‘어떤 일이든 하게 되면 열심히 하자’는 각오로 일을 시작했고, 이제까지 마음가짐을 지키고 있다. 직업 특성이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것은 변치 않는 태도다. 다른 사람이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기뻐할 때 나도 기쁘다. 매일 요리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이 일을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나름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는다. 성공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온 것이기보다는 직업의식을 갖고 오랫동안 꾸준히 이 길을 걸어오다 보니 다른 사람들 눈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 비춰 보면 오늘날은 발전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 속에서 나도 윤택해졌고. ‘좋은 세상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만족하다 보니 직업에 대한 애환이나 불평불만도 사실 없다시피 하다.”

    요리할 때 본인만의 철학을 이야기해 준다면.

    “철학이라고 하면 보통 ‘인식론(認識論)’적 사고나 접근을 하는데 나는 ‘경험론(經驗論)’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사실 요리에 처음 입문했을 때는 철학이 없었다. 그저 직업이니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다. 매번 정성 들여 음식을 만들었다. ‘정성(情性)’이라는 말은 흔히 쓰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나중에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내 손에 레몬 한 조각이 있다고 치자. 이를 입안에서 깨문다고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도 신맛 느낌을 덩달아 받고서 얼굴을 찡그릴 거다. 실제로 내 손에는 레몬은 없는 것이다. 실체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전해 줄 수 있는 것. 이러한 마인드가 정성을 들이고 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총괄셰프를 맡고 있는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중식당에서 요리 시범을 하는 여경래 셰프. [박해윤 기자]

    총괄셰프를 맡고 있는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중식당에서 요리 시범을 하는 여경래 셰프. [박해윤 기자]

    ‘흑백요리사’, 열정 다시금 불태운 계기

    한국 중식계의 유명 요리사였던 여경래 셰프에게 금상첨화 같은 기회는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버라이어티 쇼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 출연한 것이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대만 등 중화권에서도 반향을 일으켰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했다. 명성을 드높이는 계기가 됐는데 출연 소감은 어떠한가.

    “처음 제작진으로부터 출연 제안을 받고 고민 끝에 참가를 결정했다. 요리 대결 프로그램인데 이겨도 특별히 얻을 게 없을 듯해서였다. 대결에서 지면 체면이 상하는 것이고(웃음). 나의 요리사 생활의 근원은 ‘열정’이다. 프로그램은 열정을 다시 한번 불태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프로그램 형식 자체에 흥미도 있었고. 요리 대결에서 설사 져도 체면은 조금 상할 뿐이고 그렇다고 사람들이 나를 형편없는 요리사로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서 ‘한번 해봅시다’라고 제작진에게 말했다. 사실 요리에서 손을 놓은 지가 10년쯤 됐다. 환갑을 넘다 보니 직접 요리하기보다는 강연을 하거나 방송 출연에 열중한 면이 있다. 후배 요리사들이 주방에 가는 것을 말리는 것도 주 이유다. ‘내가 요리할게’라고 하면 ‘셰프님! 왜 그러세요? 화나셨어요?’라고 걱정할 정도다.”

    한국인 다수는 짜장면, 탕수육 등 ‘한국식 중국요리’에 익숙하지만 ‘정통 중국요리’는 낯선 것이 현실이다. 한국인에게 정통 중국요리의 매력에 대해서 이야기해 준다면.

    “이미 알려진 대로 ‘한국식 짜장면’은 중식이 아니라 한국이 원조인 요리다. ‘K-푸드’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에 처음 정착한 화교들이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했다. 짜장면은 한국에서 이른바 ‘국민 요리’ 반열에 올랐다. 하루에 700만 그릇 이상 팔린다는 통계도 있다. 일본 거주 화교들이 개발하고 한국화된 짬뽕도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그 못지않게 팔릴 것이라 본다. 탕수육도 마찬가지고. 대중화된, 그리고 한국화된 중식이라 할 수 있다. 중식은 고급 요리와 대중 요리로 양분할 수 있다. 중식의 특징은 다양한 식재료와 다양한 요리법으로 이른바 산해진미를 만든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만한전석(滿漢全席)이 있다. 이름 그대로 만주(滿洲)와 한족(漢族) 요리의 집대성이다. 또 다른 매력은 ‘현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환영받는다. 지난날 화교들이 경영했던 한국 내 중식당 다수는 한국인이 경영한다. 한국화된 중식을 만든다는 의미다. 한국식 중식은 전 세계에서 가장 덜 기름지고 담백한 스타일이다.”

    유명 중식당 셰프로 활동하면서 ‘여경래’ 브랜드 자체를 상품화하기도 했다. 앞으로 꿈은 무엇인가.

    “이른바 ‘여경래 스타일 중식’을 대중화하는 것이다. 개성이라 할 수도 있고 나만의 가치를 담았다고 할 수도 있는데 본토 중식보다 덜 기름지고 담백한 중식이 내 스타일이다. 후배들과 이러한 스타일의 중식을 확산하고 싶다. 다른 한 가지는 한국인에게 중식의 범주는 한정돼 있어서 대중화되지 않은 고급 요리도 더 알리고 싶다.”

    한국 화교 150년, 이제 한국은 내 고향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이 발발했다. 조선의 출병 요청을 받은 청(淸) 정부는 광둥(廣東) 수사제독 오장경(吳長慶)을 지휘관으로 병력 4만5000명을 파견했다. 군용품 조달을 위해 상인 40여 명도 함께했다. 이들이 ‘근대’ 한국에 발 디딘 ‘중국인’의 시초다. 오장경은 한국 화교의 비조(鼻祖)로 추앙받는다. 한국 화교는 한국인과 15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해 오고 있지만 ‘이방인’ 처지는 변치 않았다.

    화교로서 겪어야만 했던 애환은 무엇인가. 요즈음은 사라지는 추세이지만 한국인들의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

    “나는 화교 2세대, 자녀는 3세대, 손주는 4세대다. 우리 집안만 해도 적지 않은 세월 동안 한국에 터 잡고 살고 있다. 지난날 한국인의 차별적 시선이 존재했지만 오늘날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한국 사회가 개방화·글로벌화된 영향이라고 본다.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고. 예전에는 한국으로 귀화하면 지탄까지는 아니지만 비난받기 일쑤였다. 지금 그런 일은 사라졌다. 화교의 생활 터전은 한국인데 대만(중화민국)이나 중국(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으면 실생활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한국 사회에 진출하는 데도 국적이 제약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다. 보다 발전적이고 전향적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원향은 중국 본토, 국적은 중화민국(대만)이고 태어나고 자란 터전은 한국인데 ‘정체성’은 어떠한가. 한 전직 한성화교협회장은 한국 화교들을 ‘부모만 셋을 둔 고아’에 비유하기도 하던데. 모국인 대만이 어머니, 원적이 있는 중국이 아버지라면, 나고 자란 터전인 한국은 양아버지란 뜻이라고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에 뿌리내리고 산 지 몇 세대가 지나면서 정체성 문제는 옅어졌다. 중국, 대만, 한국 다 온전한 모국이라 할 수 없는 것은 현실이지만 한국이 내 고향인 것은 분명하다. 여권 문제로 인한 불편도 따르고 정체성 혼란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의 다음 세대에게 국적이나 정체성은 대전환의 시기가 온 것 같기도 하고. 정체성 문제는 정리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쉬운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개개인 혹은 세대마다 생각은 다를 것이고, 그런 시각 모두 중요하다.”

    지난해 한성화교협회 감사장으로 선출됐다. 선거에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또 앞으로 소망이 있다면.

    “처남 이중한 씨가 협회장 선거에 출마하게 됐다. 한성화교협회 정관상 협회장·감사장이 동반 출마해야 하는데 러닝메이트가 필요하다는 요청이 왔다. ‘흑백요리사’ 출연 이후로 내 인지도가 급상승한 것도 한 원인이다. 선거를 치르고 당선됐는데 나는 사실 정치에 관심이 없다. 3년 동안 한국 최대 화교단체 감사장이라는 중책을 수행해야 하는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을 듯하다. 감사로서 역할에 충실할 생각이다. 아직 취임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아서 구체적 이야기는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열심히 그리고 제대로 해서 협회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약속만 드릴 뿐이다.”

    여경래 셰프는 ‘흑백요리사’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름이 더 알려지게 되고 ‘신동아’와 인터뷰로 이어진 것에 대해서 기쁘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지면을 통해서 내 개인적인 생각, 마음가짐 등을 독자에게 전할 수 있어 기쁘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한데 을사년 한 해 동안 행복과 평안이 깃들기를 소망한다. ‘한국의 오랜 이방인’ 화교에게도 관심을 갖고 마음을 열고 다가가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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