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이미지란 양면적인 것이다. 특정한 이미지로 굳어진 인물들은 흔히 극적인 부침(浮沈)을 경험한다. 가령 벼락처럼 떠오른 대중 스타들이 그들을 둘러싼 이미지의 허상이 깨지면서 한순간에 곤두박질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손길승 회장의 이미지에도 그런 ‘거품’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품어 볼 수 있다. ‘한국 대표 전문경영인’으로서 손길승이라는 브랜드는 공적인 영역에서, 폭넓은 대중적 공간에서 검증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대기업 경영인들은 대체로 일반인에게 잘 노출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손회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SK를 출입하는 기자들도 손회장을 가까운 자리에서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러니 그를 제대로 안다고 하는 사람도 드물다. 때문에 손회장의 이미지라는 것도 실제로는 SK 내부에서 만들어진 것이 밖으로 새나오면서 증폭되고 계산된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표류하는 ‘전경련號’
기자는 손회장이 공석에서 얘기하는 것을 몇 차례 본 적이 있다. 지난해 말 그가 회장으로 있는 기업메세나협회 행사에서 마이크를 잡고 연설하는 모습은 노련한 영화배우를 연상케 했다. 호텔 연회장을 가득 메운 수백명의 좌중을 휘어잡는 말솜씨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손회장은 관훈클럽 토론회에 참석했을 때도 저널리스트들의 까다로운 질문에 전혀 주눅들지 않고 명쾌한 답변을 이어나갔다. 배짱도 웬만한 정치인 이상이었고, 사안의 핵심을 짚어내는 순발력 또한 뛰어났다. 그는 치밀한 논리와 달변 능력은 물론, 번듯한 ‘포장’까지 갖췄다. 부드럽게 깔리는 바리톤 음성과 여유롭고 점잖은 톤의 은발(銀髮)은 편안하면서도 은근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했다.
손길승 회장은 SK의 최고참이다. 1965년 그룹 공채 1기로 SK에 입사했으니 올해로 38년째 SK에 몸담고 있다. 그가 SK에서 보낸 시간은 고스란히 SK의 성장사다.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 굵직굵직한 사업계획들이 그의 머리를 거쳐 결정됐고, 그것이 실행되는 과정에서도 그의 손을 거쳤다.
현재 SK의 주축을 이루는 SK텔레콤(한국이동통신 후신), SK주식회사(유공 후신), 워커힐 호텔, SK증권, SK생명 등을 인수할 때마다 손회장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입사할 때만 해도 평범한 직물회사에 불과했던 SK는 이런 기업들을 인수하고 확장한 데 힘입어 현재 재계 순위 3위의 메이저 그룹으로 성장했다.
손회장 개인은 SK를 통해 보람과 명예와 부를 얻었겠지만, ‘SK의 오늘은 손길승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바꿔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오너 경영이 지배적 풍토인 우리 재계에서 전문경영인인 손회장이 SK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고 많은 임직원으로부터 존경받는 것은 바로 그런 능력과 기여도를 높이 사기 때문이다.
손회장이 이제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표류해온 ‘전경련호(號)’의 새 선장을 맡은 것이다. 그는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으로서 SK를 지휘했던 것처럼, 오너들의 집단인 전경련에서도 ‘선주(船主)’들의 대리인 자격으로 전경련이라는 배를 끌고 가게 됐다.
전경련의 표류는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됐다. 먼저 정권 교체기라는 특수상황이다. 전경련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권과 긴장·대립 관계였다. 하지만 이번 정권과는 유난히 그 대립각이 크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가 재벌개혁에 대해 역대 어느 정권보다 분명한 철학과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전경련의 정체성 문제다. 최근 전경련은 다른 경제단체와의 통합론, 심지어 무용론(無用論)에까지 직면했다. 전경련에는 현재 400여 개 회원사가 소속되어 있지만, 몇몇 재벌그룹들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여 온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명실상부한 재계의 대변자가 아니라 소수 주요 그룹만을 위한 단체라고 비난받는다.
손회장이 이들 두 가지 당면 과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전경련의 순항(順航) 여부가 달려 있다. 손회장의 전경련호가 어떤 항로를 택할 것인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할 문제다. 다만 손회장 구상의 방향을 짐작케 해주는 두 개의 장면이 관측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