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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장사·배추장사 따로 가야 산다

통합 후유증 앓는 ‘공룡 농협’

돈장사·배추장사 따로 가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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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농민의 농협’. 3년 전 농협·축협·인삼협이 손잡고 ‘통합농협’을 출범시키며 천명한 모토다. 하지만 지금도 대다수 농민들은 ‘농민을 위한 농협’이 아닌 ‘농협을 위한 농협’을 목도하고 실망한다. 농협은 수익이 급증하고 있는데, 정작 농협의 주인인 농민들은 빚만 더 늘어간다.
돈장사·배추장사 따로 가야 산다
2000년 7월1일, 오랜 진통 끝에 ‘통합농협중앙회’가 출범했다. 농업협동조합·축산업협동조합·인삼협동조합 등 3개 협동조합 중앙회가 하나로 합친 것이다. 농민이라는 하나의 몸에 3개의 커다란 머리를 지닌 기형(畸形) 상태를 바로잡아보자는, 협동조합 개혁 드라이브의 결실이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초기부터 협동조합 개혁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정부 출범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협동조합 개혁을 ‘국정 100대 과제’에 포함시켰고, 이후 농림부의 주도로 개혁의 방향과 방안을 설정해나갔다.

개혁의 주요 슬로건은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농민의 협동조합’. 임직원 중심의 비대한 협동조합 조직을 정비해 농민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중복 기능 조정과 경제사업의 지역농협 이관 등을 통한 중앙회 조직 슬림화, 각 사업부문별 독립성 보장, 신용사업 중심에서 경제사업 중심 조합으로의 전환, 중앙회의 지도·교육·농정활동 강화, 농·축산물 통합유통체계 구축으로 농산물 제값 받아주기 등이 구체적 방안으로 제시됐다.

통합농협은 이같은 개혁 의지를 담고 태어났다. 당시 농림부와 통합농협은 “3개 중앙회는 단순한 물리적 통합에 그치지 않고 화학적으로 융합해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그로 인해 얻어지는 이익을 농민에게 환원하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농협의 개혁 청사진은 아직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농협 주변의 대체적인 평가다.



‘다이어트’ 실패한 중앙회

농협의 주인은 농민이다. 농민들은 지역농협(‘단위농협’이나 ‘회원조합’이라고도 부른다)에 가입해 조합원으로서 출자금을 내며, 농협중앙회는 전국의 1300여 개 지역농협이 출자해 만든 연합체다.

협동조합의 조합원은 주식회사의 주주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개념이다. 주주가 단순한 투자자(investor)라면 조합원은 협동조합을 소유하고, 사용하고, 운영하고, 이익을 취하는 이용자(user)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다수 농협 조합원, 즉 농민들은 “농협이 여전히 ‘농민을 위한 농협’이 아니라 ‘농협을 위한 농협’에 머물러 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무엇보다 농협 개혁의 우선 과제였던 중앙회 조직의 슬림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3개 중앙회가 통합되면서 조직과 인원이 다소 줄어들긴 했다. 특히 사실상 농협으로 흡수 통합된 축협중앙회의 시·도지회와 신용사업 점포들이 폐쇄되면서 축협 직원들의 명예퇴직이 많았다. 농협중앙회가 2001년 9월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통합 후 퇴직한 인원은 (구)농협중앙회가 433명(명예퇴직 211명), (구)축협중앙회가 402명(명예퇴직 343명)이었다.



그러나 중앙회의 전체 인원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통합 후 1년6개월이 지난 2001년 말 현재 농협중앙회 직원수는 2만330명으로, 통합 시점인 2000년 7월1일보다 오히려 200여 명 늘었다. 특히 4급 이상 직원수는 종전 수준을 그대로 유지한 데 비해 5·6급과 생산직 등 하급직 중심으로 인력 구조조정이 일어나 ‘저효율 고비용’ 구조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회는 “2002년 6월 말 현재 직원수가 통합 당시보다 13%(2476명) 감축됐다”고 국회에 보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정규직의 수치이고, 계약직을 포함할 경우 직원수에 별 차이가 없다. 상위 직급은 거의 손대지 않고, 하위 직급을 대거 계약직으로 돌린 것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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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형삼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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