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항공여객기는 어떤 업(業)인가.”
“글쎄요….”
“비행기는 뜨는 업이지. 비행 스케줄을 잘 정해서 비행기가 떠 있는 시간이 길어야 돈을 많이 벌잖아. 그럼 백화점은 무슨 업이야?”
“유통업 아닙니까.”
“아냐, 부동산임대업이지. 백화점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건물을 지어놓으면 그것으로 이미 80%는 성공한 거야.”
이런 농담 아닌 농담을 주고받은 이 회장은 사실 신경영을 발표하기 전 이어령 선생 같은 미래학자 겸 문인들과 어울리면서 업의 본질을 정리할 수 있었다.
10년도 더 지난 얘기지만, 이 같은 질문은 아직도 유효하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의 개념을 정확히 알아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당신은 경영자인가. 그렇다면 직원들에게 물어보라. 회사의 업이 무엇이냐고. 과연 당신이 정의한 업과 직원이 정의한 업이 같을까. 같다면 당신 회사는 성공하는 회사다.
무슨 일이든지 업종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 헤맬 때, 업계에서 20∼30년 동안 활약하면서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로 평가받는 우리 시대의 ‘스승’에게 업의 개념을 묻고, 10년쯤 뒤 그 업이 어떻게 변화할지 들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최근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금융업부터 출발해보자.
금융업의 미래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 은행 증권 투자신탁 보험 등 전통적인 금융업종의 경계가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은행 창구에서 종신보험을 팔고, 보험사 영업사원이 정기적금 상품이나 증권사의 수익증권을 판매한다. 그렇다면 증권사는 짜릿한 흥분을 맛보고 싶은 ‘투기적’ 투자자들의 놀이터로 변하고 말 것인가. 그렇지 않다. 증권사 직원 역시 수익증권은 물론 보험사에서 판매하는 보험상품도 판다.
이쯤 되면 ‘나는 은행원, 너는 보험맨’ ‘나는 증권맨, 너는 투신맨’ 식의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일터가 은행이고 보험사이고 증권사일 뿐 이들은 오로지 한 명의 고객을 앞에 두고 100m 달리기를 하는 금융회사 직원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전쟁의 최종 승자는 누가 될까.
생일 챙겨주는 사람 누군가
하나은행의 초대 행장이자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을 역임한 윤병철 재무설계 국제표준기구(FPSB) 회장은 전통 은행원 출신이면서도 보험사 직원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유는 간단 명료하다. “누가 가장 고객을 잘 알고 있느냐”란 질문에 “나요!” 하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단연 보험맨이라는 것이다.
한번 따져보자. 은행, 증권사, 보험사 그리고 투신사 중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1년에 서너 차례 당신에게 전화를 해주고, 생일도 꼬박꼬박 챙겨주는 금융회사 직원이 누구인가. 혹시 보험사 직원이 아닌가. 필자의 경우에도 오로지 보험사 직원만이 내 가족과 내 미래의 계획에 대해 알고 있다.
요즘은 국내 보험사 직원들도 노트북 컴퓨터를 갖고 다니면서 재무회계 프로그램을 통해 고객의 재무상태를 분석해주고, 노후대비 자금이 얼마나 필요한지 파악해주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종신보험을 판매하는 외국계 보험사 직원들만 이런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았다. 이들 보험사 직원이 경영학 석사 출신인지,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다가 보험맨이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들의 프레젠테이션 솜씨를 보면 아예 굴리고 있는 돈을 통째로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다. 요즘처럼 보험사 직원이 다른 금융회사의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시대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보험사 직원이 고객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