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당선인은 ‘강성’ 경제민주화론자들을 새 정부 초기 인적 구성에서 배제할 공산이 높다. 실제로 인수위엔 김종인 전 선대위 행복추진위원장, 이혜훈 최고위원 등이 진입하지 못했다. 김 전 위원장은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불렸으며 박 당선인이 경제민주화 화두를 선점하도록 한 인물이다. 하지만 재벌그룹의 기존 순환출자도 소급해 금지해야 한다는 강경론을 제기하면서 신규 순환출자에만 국한하자는 박 당선인과 견해차를 보였다. 김 전 위원장은 “내 역할은 대선 승리로 끝났다. 박근혜 당선인이 잘하고 있다”고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했다.
친박계 이혜훈 최고위원은 같은 친박계 김세연·이종훈 의원, 비박(非朴)계 남경필 의원과 함께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을 이끄는 4인방이다. 그중에서도 이 최고위원이 가장 ‘좌클릭’해 있다는 평이다. 이 최고위원은 1월 4일 “재계가 경제위기론을 들고 나와 경제민주화를 무산시키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경실모 4인방 가운데 김세연 의원은 사안에 따라 보수 성향을 띠고, 이종훈·남경필 의원은 중도에 속한다. 이들도 박근혜 정부 출범 준비과정에서 뚜렷한 역할을 맡지 못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1호 법안을 낸 민현주 의원도 마찬가지다.
인수위에서 경제민주화가 주요 이슈로 다뤄지지 않자 박 당선인의 의지에 의구심을 품는 시각도 있다. 당초 인수위에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이 들어가거나, 그런 기능을 갖는 분과 또는 특위를 설치할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구체적인 논의조차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을 다룰 인수위 경제 1·2분과, 고용·복지분과도 대부분 보수 성향의 학계 인사와 행정관료 출신으로 채워졌다. 경제1분과는 기획재정부 출신 류성걸 의원(간사)과 박흥석 광주상공회의소 회장, 홍기택 중앙대 교수가 맡았다. 경제2분과에는 이현재 의원(간사)과 서승환 연세대 교수가 포진했다. 고용·복지분과 멤버는 최성재 서울대 명예교수(간사), 안상훈 서울대 교수, 그리고 성균관대 교수 출신인 안종범 의원이다.
따라서 인수위 단계에서 대기업 규제 목소리를 강하게 낼 사람은 극소수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런 상황은 청와대 인선이나 조각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특히 이혜훈 최고위원이 우려했듯 재계에서 경제위기론을 본격적으로 꺼내 들면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공약 전반이 벽에 부딪히고 결국 재벌의 오랜 관행을 깨는 데 실패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있다. 청와대와 내각에 추진력을 갖춘 경제민주화론자가 포진하지 못할 경우 그런 비관론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유일호, 이현재의 경우
잘 알려진 대로 박 당선인 주변에는 친재벌 성향의 참모, 지인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12월 26일의 경제단체 순회에서 보여준 박 당선인의 의지, 공(公)과 사(私)를 분명히 가리는 평소 성격을 보면 그들에게 쉽사리 휘둘리지는 않을 듯하다. 박 당선인의 한 측근은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상득 전 의원,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 대기업이 정권에 줄을 댈 창구가 뚜렷했지만 박근혜 정부에선 그럴 만큼의 명확한 포인트가 없다”고 했다. 박 당선인 주변의 친재벌 인사들이 정치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박 당선인은 오히려 경제민주화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인맥을 동원해 재벌을 설득할 수도 있다.
더구나 대기업이 과거 선거 때마다 후보들에게 정치자금을 대는 관행이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만큼 박 당선인은 재벌 개혁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에 빚진 게 없는 만큼 자유롭게 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의미다. 전경련 대표단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중소기업 업종 침해와 재벌 2, 3세들의 행태를 비판한 것도 경제민주화 실천 과정에서 대기업을 봐줄 일이 없다는 경고를 한 것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이와 함께 박 당선인 주변에는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권익을 대변할 참모들도 포진해 있다. 박 당선인이 청와대 인선이나 조각 단계에서 이들을 중용할 경우 경제민주화 정책은 탄력을 받게 된다.
인수위에선 현역 의원인 유일호 비서실장과 이현재 경제2분과 간사의 활약이 기대된다. 유 실장은 경제 정책 전문가로 손꼽힌다. 특히 재정 정책과 조세 분야의 풍부한 식견을 바탕으로 박 당선인의 최우선 공약인 민생안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유 실장에게 인수위 비서실장직을 제의하면서 “정책이 중요하니 맡아달라”고 청했다고 한다. 유 실장은 “대기업 위주의 성장과 불공정 행위로 인한 폐해 등은 어떤 방식으로든 개선돼야 한다”는 생각을 밝혀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경제민주화의 목표로 제시하기도 했다.
중소기업청장 출신인 이현재 간사는 재계에서 ‘중소기업 전문가’로 통한다. 옛 상공부, 산업자원부 등에서 중소기업·소상공인 정책에 오랫동안 간여했다. 그는 인수위에 발탁된 뒤 첫 일성으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가는 제도적인 것을 점검해서 실제 중소기업이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검토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의정활동 중에도 공정거래위원회의 솜방망이 처분을 비판하며 동반성장의 중요성을 역설하곤 했다.
폭넓은 중소기업 인맥
박 당선인의 중소기업 정책 브레인으로는 선대위 중소기업진흥특별본부장을 맡았던 허범도 전 의원도 있다. 상공부 출신으로 초대 부산지방중소기업청장과 산업자원부 차관보,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중소기업중앙회 김기문 회장과 서병문 수석부회장도 박 당선인이 향후 중소기업 정책을 구체적으로 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이다. 특히 김 회장은 박 당선인과 몇 차례 개별적으로 만나 중소기업 현안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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