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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 선진국은 양립할 수 없다”

경영전략 대가 조동성 서울대 교수의 재벌개혁론

“재벌과 선진국은 양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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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대기업 투자는 경제민주화 요구에 대한 화답
  • ● 자칭 ‘국민기업’승계 땐 사기업 논리에 반감
  • ● 재벌이 재단 설립해 투명경영하는 스웨덴 모델
  • ● 공유가치 창출로 기업과 사회 ‘윈-윈’
  • ● 박근혜 당선인, 아버지처럼 재벌 문제 접근
“재벌과 선진국은 양립할 수 없다”
새해 들어 대기업들이 갑자기 착해진 걸까. 1월 초 대기업 총수들이 하나같이 사회적 책임, 공생, 기업시민 같은 단어들을 입에 올리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뜨거운 이슈가 됐던 경제민주화 요구에 대한 화답 성격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의례적 수사(修辭)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하는 시선도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신년사에서 “협력사의 경쟁력을 키워 성장을 지원하고 지식과 노하우를 중소기업들과 나누어 국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투자계획을 묻는 기자들에게 “될 수 있으면 투자를 늘리겠다. 앞만 보고 열심히 하겠다. 기업을 하는 이상 사회적 책임이라는 건 항상 따른다”고도 했다. 삼성그룹의 올해 투자액은 50조 원을 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협력업체와 동반성장에도 적극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투명경영, 윤리경영, 협력사와의 동반성장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고 했다. LG그룹은 새해 초 20조 원대 투자를 선언하고 나섰다. SK 최태원 회장은 “새해 글로벌 경기는 극한으로 치달을 만큼 어려운 상황이며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기대치는 한층 높아지고 있어 이럴 때일수록 기업은 기업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민주화 의지 꺾였나

이미 대선 기간에 경제민주화가 새 정부의 주요 이슈가 될 것이라는 점은 예견됐다. 다만 구체 과제가 무엇이 될 것인지는 그 전모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선 중소기업 경쟁력과 지원 강화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대기업에 대해선 이렇다 할 언급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은 선거과정에서 경제민주화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다. 그러나 막상 당선된 뒤엔 경제민주화 의지가 줄어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우선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이혜훈 최고위원 등 경제민주화 공약을 주도했던 인사들은 인수위에서 배제돼 있다. 대신 경제 1·2분과와 고용복지분과에 보수 성향의 학계 인사와 관료 출신이 포진했다. 급기야 이언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월 8일 “박근혜 당선인이 경제민주화 공약을 선거용으로만 써먹고 용도 폐기했다. 경제 정책의 기조를 경제민주화를 통한 내실 있는 성장보다 과거식의 외형적 성장에 두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사회책임을 강조하며 변화를 예고하는 것은 분명 새로운 흐름이다.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64)는 이것이 올해 재계의 가장 큰 흐름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선거를 거치면서 기업인들이 많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과거의 지도자들은 박근혜 당선인보다 더 강한 얘기를 했지만 실천하지 않았어요. 지금 박 당선인의 경우 강도가 약하면서도 실천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얘기한 것은 지킬 것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도 능동적으로 나서서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듯합니다. LG의 20조 원대 투자 발표가 바로 그 첫 번째 화답이 아닐까 합니다.”

경제민주화가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은 경제민주화를 이뤄서 그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도록 하겠다는 표현이다. 다만 정부가 칼을 뽑아서 휘두르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실행하는 사회적 흐름이 조성될 것이라는 게 조 교수의 전망이다.

조 교수는 최근 대기업의 움직임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 초기 상황과 비교해 흥미롭다.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그는 미국을 방문해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지만 원하는 정도의 경제원조를 얻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후 박 의장은 국가 발전에 기업을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때 박 의장은 부정축재환수법으로 구속했던 기업인들을 풀어줬어요. 그리고 부정축재 안 따질 테니 앞으로 산업발전에 협력하라고 했습니다. 그 무렵 기업인들이 뜻을 모아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만들었어요.‘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했으니 우리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투자하겠다’는 반응을 보인 겁니다. 그런데 박근혜 당선인도 50여 년 전 아버지처럼 대기업의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기존 순환출자는 인정하겠다고 했으니까요. 그러자 기업들이 투자로 화답하고 있어요. 상당히 비슷한 접근 아닙니까.”

소액주주 피해 보는 자본주의

조동성 교수의 전공 분야는 경영전략이다. 1990년에는 ‘한국재벌연구’라는 책을 통해 일찌감치 경제민주화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최근 그는 우리 사회에 경제민주화 이슈가 공론화한 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접했다고 한다.

“언론에서 전문가들이 모여 경제민주화를 주제로 대담을 하는데 흥미롭게도 서로 이야기가 겉돌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대화를 하기는 하는데 서로 두뇌가 밀접하게 연결돼 이뤄지는 대화(brain engagement)가 아니었어요. 하나의 공통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찬반 의견이 있기 마련인데, 반대 의견도 없이 대화가 진행되더군요.”

▼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서로 다르게 정의하고 있었기 때문인가요.

“맞습니다. 예컨대 사과를 두고 어떤 이는 배라 하고 어떤 이는 수박이라고 해요. 경영학, 경제학, 사회학이 모두 다른 방식으로 경제민주화를 보고 있어요.”

조 교수에 따르면 첫째, 경영학에서는 지배구조를 먼저 본다. 경영학은 기업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기업 안을 들여다보는데, 그때 기업 주인이 누구인지를 따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지배구조 문제다. 지배구조의 민주화가 경영학의 경제민주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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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상 기자│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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