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철소 뒤흔드는 천둥, 번개…고철이 보석으로
- 확장 욕망으로 망한 사업, 확장 욕망으로 되살린다?
- 고로제철소 완공하면 15만 고용창출효과
- 2011년, 세계 최초 자동차-철강 전문그룹 목표
- 5조2400억 자금 마련이 관건…현대제철 “문제없다”
- 지역주민이 ‘특급 VIP’인 까닭

녹슨 배관을 뜯고 용접봉의 불꽃을 보며 기뻐한 것도 잠시. 해를 넘기자 제철소 재건을 환영했던 지역주민과 시민단체가 불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현대INI스틸이 고로(高爐)제철소를 건설한다고 발표하자 환경이 훼손된다며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당진환경운동연합은 “고로공법을 적용한 광양지역은 일부 주민이 만성 기관지염에 시달리고 다이옥신 배출도 심각하다”며 “천혜의 관광자원이 망가지고 대기오염 등 환경 훼손을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거의 10년을 기다려 버려진 공장을 재가동하고 이 덕분에 썰렁했던 지역경제가 기지개를 켜려는 순간, 현대의 고로 건설계획은 거센 폭풍의 전조(前兆)처럼 느껴졌다.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확장의 욕망’에 사로잡혀 거대한 공장을 짓다가 퇴출된 것이 불과 몇 년 전 일이었다. 이 때문에 3000명이 넘던 직원은 600여 명으로 줄었고, 당진군 인구도 1만명이나 줄었다. 직원이나 주민 모두 실패했다는 자괴심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현대제철의 계획은 지역주민에게 옛 상처를 또다시 헤집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전기로(電氣爐)제철소만 돌려도 충분히 먹고살 만한데 왜 굳이 논란을 빚고 있는 고로제철소를 세워야 하냐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더구나 산과 들, 바다가 오염된다면 주민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것이다. “거대한 계획을 접고 그냥 평범하게 회사를 운영할 순 없느냐”는 요청이 끊이질 않았다. 마치 아들(현대제철)이 모나지 않고 평범하고 소박하게 살기를 바라는 어머니(당진)의 마음처럼.
이뿐인가. 여의도 금융가에선 현대그룹이 현대제철 때문에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악성 루머가 나돌았다. 고로제철소 건설에 5조2400억원이나 소요된다는 현대측 발표에 뒤따른 반응이었다. 게다가 경영진의 잦은 교체도 금융가의 불안감을 더했다.

전기로에서 만든 시뻘건 쇳물(왼쪽)과 철근을 생산하고 있는 모습.
앞으로 나아가자니 엄청난 투자재원과 지역주민의 반발이 가로막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자니 세계적인 경쟁에서 도태돼야 하는 현실에 현대제철은 처음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장 과장의 개인史
서울에서 목포 방향으로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린 지 1시간 만에 서해대교를 지나 송악 인터체인지에 다다랐다. 함께 내려간 현대제철 홍보실의 장영식 과장은 “몇 년 전만 해도 송악 톨게이트에서 통행요금을 받는 창구가 단 한 곳뿐이었는데, 지금은 6개로 늘었다”며 “이곳을 드나드는 차량이 그만큼 많아졌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장 과장은 당진제철소의 아픔과 재기의 역사를 고스란히 겪은 사람이었다. 1997년 한양대 금속공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그는 학생들이 선호하는 반도체 재료 분야를 마다하고 기피 1순위이던 제철 분야를 선택했다. 조선, 자동차 등 중후장대한 산업에 쓰이는 ‘산업의 쌀(철강)’을 일구면서 한국 경제에 일조하고픈 소망 때문이었다.
석사과정을 마치면 그는 당진제철소의 연구원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당시 한보철강은 최첨단 기술로 알려진 ‘코렉스 공법’을 적용해 철을 제련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해 1월 한보철강이 부도가 나고, 한국이 금융위기를 맞자 그의 미래에 덜컥 자물쇠가 채워졌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는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배운 것이 금속공학이어서 그는 ‘한국철강신문’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다. 기자들이 쓴 원고를 교정하는 일이었다. 석사까지 마친 엘리트였지만 고난의 시대에 그에게 맞는 번듯한 자리는 없었다.
교정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던 첫날, 그는 기자들이 쓴 원고를 꼼꼼하게 고쳤다. 금속공학 석사 출신의 눈으로 고친 원고는 편집장의 눈에 띄었고, 철강신문 기자로 채용되는 계기가 됐다. 그때부터 6년간 그는 당진제철소 등 전국의 철강업체를 취재하는 전문기자로 활동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당진제철소는 군데군데 잡초가 무성하고, 멈춰선 공장이 흉물스러웠어요. 저게 언제 다시 가동되려나 답답했는데, 지금 공장을 둘러보면 언제 그랬나 싶어요. 한보가 부도나면서 을씨년스럽던 지역사회도 주변 공단에 제철 관련 중소기업체들이 입주하면서 활기가 넘치고 있습니다.”
3년 전 현대제철 홍보실로 자리를 옮긴 장 과장의 개인사(史)를 듣고 있으니 그의 눈에 비친 당진제철소 재건의 의미가 더 실감나게 다가왔다. 한보가 망하지 않았다면 지금 그는 연구원으로 10년의 경력을 쌓았을 것이다. 물론 장 과장은 “그 덕분에 백면서생의 시야가 넓어졌다”고 자평하지만, 듣는 사람의 처지에선 인재가 흘려보낸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장 과장만 아픔을 겪은 것이 아닐 것이다. 구조조정으로 퇴출된 2000여 명의 공장 직원도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창 교육비를 대며 양육해야 할 자녀를 둔 아버지도 많았을 테고,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신부도 있었을 것이다. 임원 승진을 앞둔 부장도 있었을 것이고, 과장 차장으로 진급한 유능한 엘리트 사원들도 있었을 텐데, 이들이 품었던 꿈은 회사 부도와 함께 서해로 소리 없이 흘러갔다.
늦었지만 다행스럽게 현대제철이 공장을 인수, 예전에 당진에서 일했던 직원을 상당수 다시 불러들였다. 해외에서 일하던 직원들도 복귀했다. 하지만 그들이 보낸 세월을 다시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때문일까. 놓쳐버린 시간마저 복구하려는 직원들은 분주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로제철소 건설로 세계 유일의 자동차-철강그룹이 되겠다는 거대한 목표가 그들 앞에 버티고 있다.
‘천지창조의 순간이…’

고로 본체가 들어설 부지의 파일 시항타 작업장. 4월 준공을 앞둔 3만t급 부두 건설 현장에서 크레인 공사를 하고 있다. 열연공장에서 사용할 슬라브를 하역하고 있다.(위부터 차례로)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 시뻘건 쇳물이 커다란 솥에 담기고, 레일을 따라 이동하면서 수십t이 넘는 열연코일로 척척 태어나는 광경은 가슴을 뛰게 한다.
전기로는 고철을 녹여 쇳물을 만든다. 쉽게 말하면 걸레를 세척해 행주를 만드는 셈인데, 원재료인 고철이 불순물 덩어리여서 여기서 만든 제품은 철근이나 H형강 등 건축자재용으로 쓰인다. 당진제철소는 전기로 생산규모로 세계 2위다.
반면 고로는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생산한다. 고로에서 만든 쇳물은 순도가 높고 표면이 매끄러워 자동차나 가전기기 등 고급제품에 사용할 수 있다. 고로산업은 철광석 등 원자재 구입의 진입장벽이 높아 민간업체가 담당하기엔 여러 가지 제약이 있다. 이 때문에 초기 고로제철소는 국영기업으로 출발한 포스코가 맡았다. 대만이나 중국도 국영기업이 운영하고 있다.
철강은 한국의 5대 수출품목에 들어가지만 수입도 많아 해마다 손익계산을 해보면 적자다. 고로제철소에서 생산하는 슬라브(직사각형의 철 덩어리)의 경우, 한국은 현대제철의 200만t 수입을 포함해 연간 1000만t을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포스코가 업계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서다.
현대제철이 2011년 연간 700만t 생산규모의 고로제철소를 갖게 되면 철의 원료인 철광석을 이용해 열연, 냉연코일 등 완제품을 생산하는 ‘일관(一貫)제철소’ 체제를 갖추게 된다. 이렇게 되면 포스코의 국내 독점체제가 깨진다.
‘제철의 꿈’
전기로에서 생산한 제품과 향후 고로에서 생산할 제품을 더해 연간 1750만t을 생산하면 현대제철은 세계 10위권으로 진입한다. 회사는 이를 통해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가격을 안정시켜 소비자가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고로제철소를 짓기 위해 동원하는 건설인력만 9만3000명에 달하고, 제철소 운영에 7만8000명의 고용창출효과가 있다. 확장하면 15만여 명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것이 현대제철의 예상.
현대자동차그룹이 제철산업에 뛰어든 이유 중 하나는 자동차에 소요되는 고급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다. 자동차의 외장에 사용되는 냉연강판은 계열사 현대하이스코(현대제철로 합병됨)가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냉연강판의 원료인 열연강판은 포스코에서 공급받아야 한다. 열연강판은 철강석을 원료로 만들기 때문에 국내 업체로선 포스코가 유일하게 생산한다.
2000년 포스코가 현대하이스코에 열연강판 공급을 거부하면서 빚어진 법정분쟁은 현대자동차그룹이 왜 제철사업에 뛰어들었는지 짐작케 한다. 당시 포스코는 현대하이스코가 냉연강판 사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