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호

자유롭게 민원 제기하는 나라, 보복 없는 나라가 진정한 경제강국

  • 이민화│기업호민관 mhlee@homin.go.kr│

    입력2010-10-29 11: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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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정부의 불합리한 규제는 개선될 수 있다.
    • 그러나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민원을 제기하는 기업에 대한 보복이 정부 부처, 공무원 사이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보복이 무섭다보니 기업들은 불합리한 규제를 그저 참고 견딘다. 그래서 많은 기업인은 불합리한 규제에 대해 자유롭게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 중소기업 규제 개선의 핵심 과제이자 시작이라고 말한다. 조사결과 중소기업인 99.6%가 비보복 정책의 채택을 지지했다.
    자유롭게 민원 제기하는 나라, 보복 없는 나라가 진정한 경제강국

    정부 규제의 상징이 됐던 대불산업공단의 전봇대.

    장비 생산업체인 A사 김모 사장은 지난해 제품 허가를 받으러 관련부처에 들렀다가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담당 공무원에게서 자사 제품의 손잡이 한 곳 색깔을 바꾸려면 품목 재허가 신청을 하라는 답변을 들은 것이다. 특정 부품 색을 하나 바꾸기 위해 기기 전체에 대한 품목 허가를 다시 신청할 생각을 하니 아득하기만 했다. 그는 안 되겠다 싶어 관련부처 고위 당국자에게 해당 조치의 부당함을 알렸고 이는 얼마 후 시정됐다. 하지만 이후 더 큰 문제가 벌어졌다. 김 사장의 말이다.

    “민원을 제기한 후부터 실무 공무원들은 우리 회사 다른 신제품에 대한 품목 허가 신청을 최대한 지연했습니다. 심지어 제출한 서류의 문장 하나를 트집 잡아 이런저런 추가 정정까지 요구하는 통에 초조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김 사장은 “경쟁업체들은 속속 시장을 죄어오는데 행정관서의 비협조로 진도가 안 나가 속을 끓였다”고 당시 상황을 털어놨다. 개발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밤을 새운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의 보복

    서울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한 기업인 B씨도 비숫한 일을 당했다. 그는 “공무원 심기를 한번 건드렸다가 그렇게 크게 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운을 뗐다. 이야기는 2006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국회에서 열린 업계의 조찬포럼에 참석했다. 그 자리엔 국회의원은 물론 해당업계 관련 부처의 국장급 공무원도 있었다. 부처 공무원의 발표를 듣고 난 그는 토론 시간에 다음과 같이 이의를 제기했다.

    “○○○께서 하신 발표는 근거가 부족하다. 그렇게 되면 허위나 다름없어진다.”

    그 한마디가 문제가 됐다. 이후 해당 부처에서 치밀한 보복이 들어왔다. 포럼 이후 한 달여 뒤 그 부처는 산하 연구원에 용역을 줘 해당 업체가 만든 제품이 시장에 적합하지 않다는 취지의 연구를 시행하도록 했다. 그 부처는 이듬해 초 이를 놓고 공청회까지 열었고 그 결과를 토대로 부처는 해당 제품의 적합요건에 대한 법까지 만들어 이 회사 제품이 팔릴 수 없도록 했다.

    그는 지난해 초 해당 법률에 대한 위헌심판청구 소송을 헌법재판소에 제기했지만 지난달 말 각하 처리되고 말았다. 이후 3년간 제품을 단 한 개도 생산하지 못했고 그의 회사에 납품하는 다른 하도급업체들은 줄줄이 부도를 냈다. 그는 현재 해당 부처에 100억원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놓고 있다. B씨는 “중앙 부처 공무원들이 너무 권위적이다. 옛날 고을 원님이나 사또도 그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라고 개탄했다.

    서울 K의원 김모 원장의 평화로운 삶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은 2007년 8월. 어느 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 직원이 갑자기 병원에 들이닥쳐 실사를 하겠다며 수납대장부 등의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김 원장은 이미 예약된 환자가 있으니 진료가 끝난 뒤 관련 자료 등을 찾아주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더구나 인테리어 공사를 하던 터라 자료를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평원 직원은 처음엔 잠시 기다려주는 듯하더니 이내 진료실을 박차고 들어와 “자료를 내놓지 않으면 영업정지를 받을 것”이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김 원장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얼굴이 새빨개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김 원장은 “치료에는 환자와 의사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같이 있던 환자가 도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했겠느냐”며 당시의 악몽을 떠올렸다. 결국 김 원장은 더 이상 진료를 하지 못한 채 환자들을 돌려보내야만 했다. 심평원 직원은 통상 6개월인 실사 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겠다며 그동안의 관련 자료를 모두 내놓으라고 다그쳤고, 김 원장은 불합리하다며 이를 거부하고 실사팀을 바꿔줄 것을 요청하는 민원을 냈다.

    되돌아 온 민원서류

    그러나 그 대가는 너무 컸다. 김 원장은 결국 국민건강보험법 위반 혐의로 영업정지 1년, 면허정지 7개월, 벌금, 환수금 5배 부과 등의 조치를 받은 것은 물론 검찰에 기소돼 법정에 서는 신세가 됐다. 충격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며 억울한 사연을 청와대, 인권위, 국민권익위 등에 제출했다. 그러나 모든 민원은 보건복지부(현 보건복지가족부) 민원실을 거쳐 자신의 조사를 맡았던 담당 사무관에게 전달됐다. 자신이 낸 민원서류를 당사자인 공무원이 전화로 읽어 내려가자 김 원장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서울지법 북부지원은 지난해 8월 김 원장에 대해 “심평원 직원이 임의로 자료 제출을 요구한 부분과 관련 실사 기간을 3년으로 연장한 것을 거부한 피고인의 행위를 위법하다 볼 수 없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특히 보건복지부 장관 명의의 문서 없이 심평원 직원이 3년간의 관계 서류 제출을 요구한 것은 적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18세기 조선 정조 시절, 황해도 곡산에서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이유는 군포대금을 200냥에서 900냥으로 올리는 등 관의 횡포가 심했기 때문이다. 이에 조정에서는 다산 정약용을 부사로 임명하면서 주동자를 처형하도록 명령했으나, 부임 길에 주동자를 만난 정약용은 주동자 이계심의 시위 사유 10가지를 듣고 그를 무죄방면했다. 나아가, 다산 정약용 선생은 그에게 “너는 관이 천금을 주고 사야 할 사람이다”고 하면서 “관이 현명해지지 못하는 까닭은 민이 제 몸을 꾀하는 재간을 부리고 관에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다산 선생과 보복금지 정책

    모든 정부 규제는 민원 기업들이 불합리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면 결국은 개선된다. 그러나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바로 민원 기업들에 대한 보복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업인들이 부담 없이 불합리한 규제에 대해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소기업 규제 개선의 핵심 과제이자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정부에서는 기업규제를 완화함으로써 100조원에 달하는 규제 비용을 축소해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기업규제를 신고하는 당사자인 기업은 규제신고로 인한 직·간접적인 피해나 번거로움 때문에 신고를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기업이 민원을 제기했을 때, 규제기관의 보복성 조치를 금지하는 제도를 확립함으로써 안심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중소기업 민원인 보호 정책’을 제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자유롭게 민원 제기하는 나라, 보복 없는 나라가 진정한 경제강국
    미국이 규제 개선의 근간으로서 ‘비(非)보복 정책’을 채택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기업호민관실에서도 2009년 7월 창설과 동시에 최우선적으로 추진한 과제가 바로 ‘비보복 정책’이었다. 한국의 기업호민관에 대응되는 미국의 국가옴부즈맨실(Office of the National Ombudsman·ONO)은 비보복(Non Retaliation)정책을 ‘정부기관의 규제에 불만이나 이의를 제기한 기업에 대해 정부기관이 응징(punish)하는 행위를 못하도록 하는 정책’으로 정의하고 있다.

    “국가 옴부즈맨(ONO)은 중소기업에 대해 연방기관 직원이 취한 규제집행 행위에 관해 중소기업으로부터 의견을 접수할 방법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접수된 의견은 적절한 방식으로 해당 연방기관의 감사실에 전달되어야 하며, 민원인의 신원은 연방기관 직원의 신원 보호와 마찬가지로 비밀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미 중소기업법 제 30조(b)항 규제집행의 감독)

    비보복 정책 실천의 예로 미 국세청에서 1997년 국세청 법에 비보복에 대한 강력한 벌칙 조항을 신설한 것을 들 수 있다. ‘세법이나 국세청 매뉴얼 또는 정책을 위반해, 납세자나 납세자 대표 또는 국세청 내 다른 직원들에 대해 보복이나 괴롭힘은 면직될 수 있는 행위로 본다’는 것이다. 2007년에는 보복에 대한 무관용(Zero Tolerance) 정책을 천명하기도 했다.

    미 국토방위청에서는 2004년 3월18일 연방관보 고시문에 다음과 같이 법을 고시하기도 했다.

    험난했던 비보복 정책 도입

    “우리 기관의 정책이나 조치에 관해 질문이나 불만을 제기할 경우 또는 우리 기관의 정책이나 조치와 관련해 외부의 도움을 구하려고 할 경우, 우리 기관은 어떠한 형식으로라도 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기관은 귀하가 우리 기관의 정책이나 조치에 대해 의견, 질문 또는 불만을 제기하고자 할 때 우리가 보복하거나 나중에 질문이나 불만을, 방해할 것이라는 염려 없이 이를 제기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만일 귀하가 우리 기관이 이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할 경우, 우리는 이를 조사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며, 그러한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귀하는 우리 기관의 정책이나 조치에 대해 귀하 지역에 있는 우리 기관의 사무소에 의견 제시, 문의 또는 불만을 제기할 수 있으며, 또한 국가 옴부즈맨실에 연락할 수 있습니다.”

    2009년 7월23일 기업호민관실은 출범과 함께 5대 중점 실천과제를 설정했다. 비보복 정책, 대중소기업 공정거래, 소상공인 대책 등이었다. 그중 최우선 과제로 비보복 정책을 설정한 이유는 앞에 서술한 바와 같다. 비보복 정책 수립을 위해 우선적으로 연구 과제를 수행해 2010년 5월31일자로 연구 보고를 완료했다. 그 과정에서 실시한 160개 중소기업 설문 결과는 그림과 같이 나타났다. 대부분의 응답 기업들이 민원제기의 효과를 의문시하고 보복을 두려워했고, 99.6%라는 압도적 다수가 비보복 정책의 채택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비보복 정책의 도입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정부 관료들의 반응부터 냉소적이었다. 주무 기관인 총리실은 “비보복 정책을 채택하면 지금까지 보복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러나 기업호민관실에서 사례를 조사하고 나서자 뜨거운 반응이 나타났다. 중소기업인들의 호소가 수백 건이나 이어졌다. 언론에서도 이 문제에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결국 주무기관인 총리실은 지난 6월 비보복 정책을 전폭 수용해 부처에 총리지침으로 하달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7월에는 대한민국 정부부처 중 처음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내규로서 비보복 정책을 채택했다.

    한국은 관 주도의 압축 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그 결과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부기관과 민간기업 사이 갑을 관계가 강화되어 소통의 문제가 심각해졌다. 과거 수출 주도 제조업에서 효율적이던 갑을문화는 이제 서비스 경제에서 창조적인 수평문화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 중진국 진입 방정식과 선진국 진입 방정식은 절대로 같지 않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한다. 지난 100년간 중진국에 도달한 국가는 많았으나, 선진국에 진입한 국가는 일본과 아일랜드 두 나라에 불과하다. 정부 규제 중심에서 이제는 민간 자율 중심으로 경제 구조전환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규제로 인한 비용은 미국이 GDP의 9% 수준임을 감안할 때 한국은 적어도 100조원은 될 것이라 추산된다. 규제 선진화를 통해 10%인 10조원만 줄여도 한국 경제의 새로운 활력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지원보다 규제 개선이 더 중요한 산업 정책인 것이다.

    자유롭게 민원 제기하는 나라, 보복 없는 나라가 진정한 경제강국
    李 珉 和

    1953년 대구 출생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사

    ㈜메디슨 대표이사 회장

    한국기술거래소 이사장

    現 기업호민관(중소기업 옴부즈맨)


    비보복 정책의 효과

    비보복 정책은 이러한 전환의 시작점으로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보복이 존재하는 한 규제에 대한 어떤 조치도 효력을 잃게 된다. 비보복 정책은 이제 막 물꼬를 트기 시작했으나, 운영이 부실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효과가 없다. 관련되는 모든 부처가 협조해야 한다. 그래야 중소기업이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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