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1위 미디어기업 넷플릭스에 국내 통신사 지상파 연합군 도전
웨이브 출범은 장대하나 신규 콘텐츠 확보·막대한 제작비 부담
한정된 재원으로 한판 승부? “넷플릭스가 훨씬 유리한 상황”
[GettyImage]
1997년 출범한 넷플릭스는 본래 DVD 타이틀을 각 가정에 정기적으로 배달하던 사업자였다. 2007년 영화·드라마 등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웹 스트리밍 사업자로 변신했다. 넷플릭스가 콘텐츠 제작·공급자로서 저력을 확인한 것은 2013년 넷플릭스 오리지널(자체 제작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의 대흥행이었다. 이로써 넷플릭스는 전통의 강자 HBO(Home Box Office)를 위협하는 존재로 거듭났다. 이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전 세계 시청자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2019년 6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넷플릭스 유료 구독자는 1억5000만 명, 시가총액은 1530억 달러(165조2859억 원)다. 명실상부한 글로벌 미디어 1위 기업이다.
넷플릭스는 2016년 1월 국내시장에 상륙했다. 초기에는 ‘찻잔 속 태풍’으로 평가받았다. 서비스 개시 6개월 동안 가입자가 7만 명에 불과했다. 당시 100만 명 규모로 추산되던 유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의 7%를 차지했다. 다수 시청자는 첫 1개월 무료 서비스 기간 경과 후 서비스를 해지했다. 넷플릭스는 글로벌 시장에서는 성공했으나 한국 시장에서는 생존에 실패한 ‘공룡’으로 기록될 뻔했다.
초기 성과 부진 속에서 넷플릭스가 택한 전략은 ‘현지화’다. 자국 콘텐츠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한국 시청자를 공략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확보한 자본을 대거 투입해 기존 콘텐츠 확보, 신규 콘텐츠 제작에 나섰다. 초기 빈약하던 시청 목록에는 국내 지상파·케이블방송에서 실적을 인정받은 콘텐츠가 채워졌다. 넷플릭스가 제작하거나 투자한 대작(大作)들도 더해졌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비롯해 편당 제작비 20억 원이 투입된 드라마 ‘킹덤’, 총 제작비 430억 원이 투입된 ‘미스터 션샤인’과 ‘스카이캐슬’ 등이 대표적이다. 넷플릭스가 국내 진출 이후 3년 동안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에 투자한 금액 총액은 1500억 원이다.
넷플릭스에 ‘날개’ 달아준 LG유플러스
2019년 7월 기준, 넷플릭스 국내 유료 가입자는 184만 명에 달한다. 넷플릭스의 국내시장 성장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LG유플러스와의 합작이다. 두 회사는 지난해 11월부터 ‘동맹’을 맺고 LG유플러스 셋톱박스를 통해 넷플릭스 콘텐츠에 접속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LG유플러스 서비스 사용자는 별도 스크린 미러링(유선 연결 없이 무선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TV 화면으로 시청하는 솔루션) 없이도 대형 화면으로 넷플릭스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초기 부진을 극복하고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넷플릭스가 가진 고유 장점도 무시 못 한다. 넷플릭스의 첫째 장점은 사용자 친화형 서비스다. 사용자 편의성 증대를 위해 IT 신기술을 끊임없이 적용한다. 이를 넷플릭스에서는 ‘지속 혁신(Constant Innovation)’이라고 표현한다. 둘째, 시청자 맞춤형 콘텐츠 제공이다. 시간·장소 제약은 물론 시청 속도도 제한이 없다. 드라마·다큐멘터리 전 회를 한 번에 릴리즈한다. 셋째, 빅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제공한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시청자의 시청 이력을 분석, 시청자 취향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넷째는 국경 없는 콘텐츠 제공이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콘텐츠를 단일 플랫폼에서 제공한다. 끝으로 창작의 자유(Creative freedom)를 보장하는 플랫폼 철학을 꼽을 수 있다. 제작자는 투자자 간섭 없이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이 같은 철학 구현을 위해 광고도 없앴다.
글로벌 1위 기업이라는 골리앗의 몸에 IT 기반 서비스라는 다윗의 두뇌까지 탑재한 넷플릭스의 한국 시장 공략에 국내 업체들도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 ‘국내시장 방어전’의 포문을 연 것은 국내 IPTV 업계 1위 SK브로드밴드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인 법. SK브로드밴드는 그동안 방송 시청자라는 제한된 고객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온 지상파 3사에 손을 내밀었다. 기존 자사 OTT 서비스 옥수수(oksusu)와 2012년 5월 출범한 KBS·MBC·SBS 공동 콘텐츠 플랫폼 푹(POOQ·콘텐츠연합플랫폼)의 합병을 도모한 것이다. 이를 통해 SK브로드밴드가 가진 플랫폼에 지상파 방송사가 가진 콘텐츠를 더해 넷플릭스에 대항하는 청사진을 그렸다.
‘푹’ ‘옥수수’ 연합군 ‘넷플릭스’에 맞서
9월 16일 서울 중구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열린 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웨이브 출범식.
공정위 승인이라는 관문을 넘은 SK브로드밴드는 주식 100%를 소유한 모기업 SK텔레콤이 콘텐츠연합플랫폼(CAP) 주식 30%를 취득하고, SK텔레콤이 SK브로드밴드의 OTT 서비스 옥수수를 넘겨받는 방식으로 기업합병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통합법인(웨이브)은 기존 옥수수 가입자 946만 명에 푹 가입자 400만 명을 더한 1336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며 유료 구독형 OTT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44.7%의 1위 업체로 거듭났다.
윤풍영 SK텔레콤 코퍼레이트센터장(전무)은 “웨이브가 내년 초까지 1000만 명 넘는 유료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최첨단 미디어 기술 경험과 프리미엄 콘텐츠를 제공하는 대한민국 대표 OTT 서비스로 성장해나갈 것”이라면서 성공의 자신감을 내비쳤다.
‘넷플릭스 오리지널’과 콘텐츠 정면 승부 준비
웨이브는 콘텐츠 확보에 필요한 ‘실탄’ 확보에도 적극적이다. 기존 대주주(SK브로드밴드, 지상파 3사)와 별개로 SK증권PE와 미래에셋벤처투자를 재무적 투자자(FI)로 유치했다. 양사는 콘텐츠웨이브가 발행한 20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참여했다. 웨이브는 1000억 원의 재무적 투자를 추가 유치해 2023년까지 총 3000억 원 규모의 콘텐츠 제작비를 마련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를 통해 가칭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를 선보여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대표되는 해외 대작들과 정면 승부를 벌일 예정이다.웨이브 고위 관계자는 “100원짜리 드라마 한 편을 만드는데 넷플릭스나 아마존이 50원을 투자한다면 웨이브도 50원이나 51원은 투자하겠다. 해외 투자사보다 절대 적지 않게 공격적으로 갈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웨이브가 콘텐츠 경쟁력을 강조하는 이유는 SK텔레콤의 마케팅 능력이나 특화 요금제만으로는 유료 구독형 OTT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판단에 기인한다.
웨이브는 가격경쟁력도 강조한다. 웨이브의 월 구독료는 7900원(1회선·HD), 1만900원(2회선·FHD), 1만3900원(4회선·UHD) 등 총 3가지다. 베이식(1회선·HD) 9500원, 스탠더드(2회선·FHD) 1만2000원, 프리미엄(4회선·UHD) 1만4500원으로 책정된 넷플릭스보다 저렴하다. 기존 SK브로드밴드의 푹 영화 요금제(1000여 편 콘텐츠 제공)가 월 9900원인 점에 비해서도 파격적인 조건이다.
앞날이 장밋빛만은 아냐
‘시작은 장대한’ 웨이브의 앞날이 장밋빛만은 아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공정위가 내건 조건부 승인 조항이다. 이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국내 OTT 사업자에게 제공하지 않아도 되지만 웨이브는 넷플릭스나 기타 OTT 사업자들이 지상파 VOD를 요청할 경우 거부해선 안 된다. 콘텐츠 구입·제작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난해 넷플릭스의 제작비는 130억 달러(15조8000억 원)에 달했고, 올해는 150억 달러(18조2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6부작 드라마 ‘킹덤’ 총 제작비에만 120억 원을 썼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제작비는 넷플릭스 재무에서도 가장 큰 부담 요인이다. 글로벌 대기업 넷플릭스는 이를 주식시장에서 충당할 수 있지만 웨이브는 그렇지 못하다.신규 콘텐츠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당장 CJ ENM과 JTBC로부터 콘텐츠를 공급받을 수 없게 됐다. 웨이브 출범 다음 날인 9월 17일 CJ ENM과 JTBC는 CJ ENM의 기존 OTT 서비스 티빙을 기반으로 새로운 OTT 서비스 합작법인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7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2018년도 방송사업자의 시청점유율 산정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CJ ENM은 점유율 12.6%로 KBS(25%)에 이어 종합 2위, JTBC는 9%로 종합편성채널 부문 1위다. 두 회사의 시청 점유율은 전체 시장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21.6%에 달한다. 반면 웨이브 대주주면서 주요 콘텐츠 공급원이 될 지상파 3사의 매출, 순이익, 방송제작비는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시청자에게는 일거양득 기회
그렇다면 웨이브는 넷플릭스의 적수가 될 수 있을까? 독점 보유한 콘텐츠에서 우위를 보이는 넷플릭스의 승리를 점치는 시각이 많다. 강준석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방송미디어연구실 연구위원은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콘텐츠 기업은 국내 사업자에 비해 오리지널 콘텐츠 수급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훨씬 유리한 상황”이라고 전망했다.넷플릭스와 웨이브가 동반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미디어 기업 분석전문가 신은경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8월 발표한 ‘새로운 WAVVE가 온다’ 보고서에서 “넷플릭스와 웨이브는 다른 성격의 OTT다. 국내 콘텐츠 및 차별화된 오리지널 콘텐츠 제공을 통해 넷플릭스와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웨이브 요금제는 월 7900~1만3900원으로 넷플릭스보다 1000~2000원 저렴하다. 웨이브, 넷플릭스를 동시에 구독하는 이가 증가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본격적으로 막 오른 OTT대전! 국내 시청자에게는 불꽃 튀는 싸움을 구경하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양질의 콘텐츠도 이용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기회가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