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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지분 매입, 아들은 경영 ‘올인’… 휠라 윤윤수‧윤근창 父子 척척 분업

[이현준의 G-zone] 어깨 무거운 윤근창, 브랜드 ‘노후 이미지’ 극복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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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4-04-29 15: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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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준의 G-zone’은 기업 지배구조(Governance) 영역을 중심으로 경제 이슈를 살펴봅니다.
    윤윤수 휠라홀딩스 회장. [동아DB]

    윤윤수 휠라홀딩스 회장. [동아DB]

    여기 합이 잘 맞는 부자(父子)가 있습니다. 사적으로 사이가 좋은지까지야 알 수 없지만(업계에선 “좋다”는 말이 나오긴 합니다), 업무에선 손발이 척척 맞습니다. 휠라그룹 오너 윤윤수(79) 휠라홀딩스 회장과 그의 아들 윤근창(49) 휠라홀딩스 사장 이야기입니다. 휠라그룹은 스포츠 의류브랜드 ‘휠라’로 알려진 기업이고, 휠라홀딩스는 그룹 지주사입니다.

    아버지는 틈만 날 때마다 개인회사로 자사주를 사들여 지배력을 끌어올립니다. 단순히 지배력만 끌어올리는 게 아닙니다. 아들을 위한 ‘사랑’을 담았죠. 즉 승계를 위한 포석입니다. 모은 지분은 결국 아들에게 갈 테고, 이는 향후 자리를 이을 아들의 그룹 지배력으로 이어집니다. 승계 재원 마련을 위해 배당도 확대했습니다. ‘주주 가치 제고’라는 명분도 있는 일석이조 방안이죠. 이러한 아버지의 노력을 바탕으로 아들은 경영에 집중하는 모양새입니다. 악화되고 있는 그룹 실적, 노후한 브랜드 이미지 제고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쌓여있거든요.

    개인회사로 4년간 173회 주식 매입, 지분율 20.09 → 35.43

    윤윤수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샐러리맨 신화’라고 불릴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돼왔습니다. 30살에 샐러리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그룹 회장까지 올랐죠. 특히 1991년 이탈리아 브랜드 휠라의 한국 지사 사장이 된 후 2007년 본사를 인수한, ‘배를 삼킨 배꼽’이 된 사례는 백미로 꼽힙니다.

    세월이 흘러 2018년 아들 윤근창 사장이 단독 대표 자리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뒤이어 그룹을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윤 회장은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떼고, 윤 사장의 의지로 그룹이 운영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그렇다고 윤 회장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개인회사 ‘피에몬테’를 통해 수시로 지분을 사들이며 힘을 보태고 있죠.

    윤근창 휠라홀딩스 사장. [동아DB]

    윤근창 휠라홀딩스 사장. [동아DB]

    피에몬테는 윤윤수 회장이 75.12%, 윤근창 사장이 4.05%, 그리고 윤근창 사장이 지분 60%를 보유한 회사 ‘케어라인’이 20.77%씩 지분을 나눠 가진 100% 가족회사입니다. 이로인해 휠라그룹의 지배구조는 피에몬테-휠라홀딩스-자회사로 이어지는 ‘옥상옥’ 형태를 나타냅니다.



    윤 회장은 2020년부터 피에몬테를 통해 꾸준히 지분을 사 모았습니다. 올해 3월까지 약 4년간 173회에 걸쳐 약 1710만 주를 사들였습니다. 구입 대금을 모두 합치면 약 2900억 원에 이르고요. 지분율도 드라마틱하게 올랐습니다. 20.09%에서 35.43%에 이르게 됐죠.

    배당도 크게 늘렸습니다. 지분을 본격적으로 끌어올리던 2021년부터죠. 2020년 1주당 185원이던 배당금은 2021년 1000원으로 껑충 뛰더니, 2022년엔 사상 첫 중간배당까지 해가며 1580원에 이르렀습니다. 지난해엔 중간배당까지 합쳐 1090원이었고요. 2021년 당기순이익이 3378억 원,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1531억인 것을 감안하면 이익이 반토막 나면서도 배당은 더 한 겁니다.

    휠라그룹은 “주주가치 제고”라고 설명합니다. 2022년 2월 발표된 글로벌 5개년 전략 계획 ‘위닝 투게더’의 일환이라는 것이죠. 이 전략의 핵심항목이 적극적 주주환원 정책이거든요. 물론 배당 확대가 주주가치 제고와 연결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피에몬테의 급격한 지분율 상승 시점과 배당확대의 그것이 맞물린다는 것은 퍽 공교롭죠. 따라서 이러한 일련의 상황이 ‘승계’와 직결돼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80세에 다다른 윤 회장의 나이를 감안하면 당연한 관점일지도 모릅니다.

    배당을 늘리면 피에몬테가 받는 돈도 늘어나고, 상속을 위한 재원 마련에도 도움이 됩니다. 2022년 케어라인 몫으로 받은 배당금이 250억 원에 이르니까요. 또 피에몬테의 2대 주주가 윤근창 사장의 회사나 마찬가지인 케어라인인데, 여기에 지분을 넘기면 증여세가 아니라 법인세가 돼 세율이 65% 수준에서 20%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여러모로 윤 회장은 윤 사장에게 ‘든든한 아버지’인 셈이죠.

    ‘매출 4조 원 클럽’ 가입했지만…

    이제 바통은 윤근찬 사장에게로 이어집니다. 윤 사장에겐 아버지가 이룩한 휠라그룹을 ‘발전적 계승’해야 하는 책무가 생겼습니다. 매출만 보면 사정이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코로나19로 패션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던 시기에도 성장했습니다. 2020년 3조1288억 원, 2021년 3조7940억 원을 기록하더니 2022년엔 4조2218억 원을 찍으며 ‘4조 원 클럽’ 가입에도 성공했고요. 지난해엔 2022년 대비 5.1%가량 줄긴 했지만 4조66억 원을 기록해 4조 원 선을 사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영업이익이 문제입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3035억 원으로 2022년 대비 30.2% 줄었고, 최근 5년으로 놓고 봐도 가장 안 좋은 기록입니다. 덩치는 커졌는데, 실속이 없다는 말이 되죠. 특히 본업인 휠라가 아픈 손가락이 되고 있습니다.

    휠라홀딩스 로고. [휠라홀딩스]

    휠라홀딩스 로고. [휠라홀딩스]

    휠라홀딩스 실적은 크게 휠라 부문과 골프 관련 자회사인 아쿠쉬네트 부문으로 나뉘는데, 지난해 휠라 부문이 567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거든요. 매출 비중으로 보면 2021년 휠라 33.5%, 아쿠쉬네트 64.8%에서 지난해 휠라 20.4%, 아쿠쉬네트 77.6%로 휠라의 경쟁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노후화된 브랜드 이미지가 원인으로 꼽힙니다. 1990년대만 해도 휠라는 고급‧고가의 외국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당시 운동을 좀 하는 사람이었다면, 특히 농구를 즐기는 사람이었다면 하나쯤은 가지고 있던 ‘힙’한 브랜드기도 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생겨나며 낡은 브랜드, 심하게는 ‘아재 브랜드’로 인식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윤 사장은 이렇듯 떨어진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하는 데 진력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인 프리미엄 라인 ‘휠라플러스(FILA+)’입니다. 이탈리아 고급 소재 등 고가‧고품질 재료를 이용한 의류‧신발‧액세서리가 주 상품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를 위한 ‘새 판’도 짜고 있죠. 올해 1월 글로벌 브랜드 사장직을 신설하고 토드 클라인 휠라 USA 사장을 선임했습니다. 토드 클라인 사장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와 리복의 임원 출신입니다. 30년 넘게 관련 산업에 몸담아 온 업계 베테랑이며 리복 재직 당시 성공적 리브랜딩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또 휠라플러스를 이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영국의 하이엔드 스트리트 브랜드 ‘팔라스’ 설립자 레브 탄주를 영입했습니다. 스트리트 브랜드 전문가가 영입된 만큼 더 ‘영’하고 자유로운 느낌의 제품이 탄생할 거라 예측 할 수 있죠.

    휠라그룹에 대한 전망은 엇갈립니다. 형권훈 SK증권 연구위원은 “‘인터런’ ‘에샤페’ 등 신제품 판매가 호조를 보이며 휠라 브랜드 경쟁력이 개선되고 있다”며 “올해 영업이익은 4520억 원으로 지난해 대비 50%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반면 정지윤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휠라홀딩스는 올해 가이던스로 연결 영업이익 성장률을 당사 추정치를 하회하는 30~40%로 제시했다”며 “연내 리브랜딩 효과와 실적 반등의 시점이 요원해 보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윤 사장이 ‘위닝 투게더’를 통해 제시한 목표는 2026년까지 매출 4조4000억 원, 영업이익 16%입니다. 매출 목표를 달성한다고 가정한다면 영업이익 7040억 원을 거둬야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최근 5년간 가장 높은 영업이익을 기록한 해는 2021년. 그때의 영업이익이 4929억 원이니 목표까지 남은 길이 제법 먼 듯 보입니다. 윤윤수‧윤근창 부자의 협동이 ‘위닝 투게더’로 끝날지, 그냥 ‘투게더’로 끝날지 알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이현준 기자

    이현준 기자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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