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 개성 흐려지고 86세대 동조화
86세대 아류로 자리매김
주변부, 낀 세대…불안정해지는 입지
사회 비판 강하지만 야권에 관대
진보 편향이면서 ‘부동산’ ‘미국’ 선호
70년대생의 이념 쏠림, “정신적 부도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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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아 수를 기준으로 70년대생은 우리나라 인구 구성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1970년부터 1979년까지 출생아 수는 각각 100만6645명, 102만4773명, 95만2780명, 96만5521명, 92만2823명, 87만4030명, 79만6331명, 82만5339명, 75만728명, 86만2669명이었다. 2024년 출생아 수가 24만2334명인 점과 비교하면, 70년대에 상대적으로 훨씬 많은 사람이 태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수백만에 이르는 1970년대생은 개인별로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들은 평균적 특성을 공유하는 하나의 세대로 묶일 수도 있다. 세대란 ‘같은 시기에 사회변화, 기술발전, 역사적 변동을 함께 겪으면서 공통된 문화 특성과 가치관을 갖게 되는 비슷한 연령층’을 뜻한다.
이번 비상계엄·탄핵 정국에서 70년대생은 월등히 높은 탄핵 찬성률로 시선을 끈다. 한국갤럽의 2025년 3월 조사에서 40대와 50대는 보수 성향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찬성 응답이 77%(반대 21%)와 66%(반대 31%)로 모든 세대 중 가장 높게 나왔다. 70년대생은 40대 중반~50대 중반에 분포한다. 정당 지지에서도 40대(55%)와 50대(47%)는 모든 세대 중 진보 성향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가장 높았다.
60대만 하더라도 윤 대통령 탄핵 찬성률이 48%로 탄핵 반대율(49%)보다 낮아졌고, 민주당 지지율(39%)이 보수 성향 국민의힘 지지율(51%)에 한참 못 미쳤다. 30대의 탄핵 찬성률(59%)과 민주당 지지율(34%)도 40·50대의 그것보다는 뚜렷하게 낮았다. 40·50대의 진보 편향은 그 이전부터 여러 여론조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났다.
보수화 공식 깨져
40·50대의 이러한 경향성은 다소 이례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우리나라 국민은 20·30대에 진보적이었다가 40·50대에 접어들면서 보수색이 짙어지는 공식을 보여왔다. 현 40·50대는 이 공식에 들어맞지 않는데 이는 70년대생의 독특한 특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70년대생의 직전 세대는 80번대 대학 학번을 가진 1960년대 출생자를 뜻하는 86세대다. 86세대는 전대협, 한총련, NL, PD로 상징되는 대학 운동권을 이끌었고, 이후 진보 정치와 사회운동, 대중문화의 주축을 이뤘다. 그런데 최근 언론에 나온 지표를 종합해 보면, 70년대생은 86세대보다 더 진보적이고 모든 세대 중 가장 진보적이다. 이 원인과 관련해, 여러 문화평론가는 70년대생이 직전 세대인 86세대의 강한 영향 아래에서 수십 년을 보냈고, 이 과정에서 86세대와 동조화돼 진보 성향을 띠게 됐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60대가 된 86세대 상당수가 보수 성향으로 바뀌자 그 아류인 70년대생이 가장 진보적 성향을 띠게 됐다는 것이다.
70년대생의 평균적 삶의 이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닐 당시 이들은 ‘신세대’ ‘X세대’로 불렸다. 특히 X세대는 70년대생을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다. ‘X세대의 생활’이라는 우리금융지주 보고서(2024)도 1970~1979년생을 X세대로 규정한다(그림 1 참조).

출처: 우리금융지주 보고서 ‘X세대의 생활’

출처: 김원준의 유튜브 아카이브
1990년대엔 이성, 이념, 규범, 구조 등의 해체를 지향하는 포스트모더니즘도 국내 대학가에서 활발히 논의됐다. X세대와 포스트모더니즘은 계급론에 근거해 사회구조의 변혁을 시도한 운동권 문화와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었다.
모든 걸 휘저어
1990년대에 반바지나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귀걸이를 착용한 채 출근하는 X세대 남자 신입 사원이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70년대생은 X세대 현상을 기존 86세대 운동권 문화의 대안으로 만들지 못했다. 책 ‘70년대생이 운다’의 저자인 박중근 캠프코리아 대표에 따르면, X세대의 날개가 꺾인 결정적 계기는 1997년 12월부터 찾아온 IMF 구제금융 사태였다.
이 국가 부도는 70년대생의 모든 걸 휘저어 놨다. 원서만 쓰면 입사하던 좋은 시절이 끝났다. 취업난이 시작됐다. 직장마다 ‘우리 팀 중에 몇 명은 나가야 한다’는 문제가 생겼다. 해고의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심각한 분위기에서 X세대 직원들이 자기 개성을 내세울 순 없었다. ‘튀지 않게, 실수하지 않게, 윗사람에게 고분고분하게, 평균을 지향하는 풍조’에 70년대생도 젖어들었다.
한 컨설팅 회사 임원은 X세대의 특성에 대해 “개성이 강하지만 위에서 까라면 깐다”라고 말했다. X세대가 ‘위에 순응하는 X세대’로 이미 변질했다는 이야기다. 변희재는 한발 더 나아가 X세대나 90년대 신세대가 어느 순간부터 개성이 안 강하고 자기 생각도 안 강한 평범한 상태가 됐다고 말한다.
이렇게 70년대생은 점차 독자적 색채를 잃었고, 그러면서 큰 존재감과 영향력을 지닌 바로 위 86세대의 문화에 동화됐다. 대학에서 ‘형’ ‘선배’라 부르며 따르던 윗세대의 가치관과 사상을 스펀지처럼 흡수한 것이다.
86세대 중에는 30대부터 사회 각계의 최상급에 오른 사례가 많다. 30대에 임종석은 국회의원이, 이재웅은 코스닥 상장사 대표가, 공지영은 문단의 주류 작가가, 박찬욱·봉준호는 촉망받는 영화감독이 됐다. 진보 진영의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알려진 김어준(1968년생)도 86세대다. 반면, 70년대생은 30대부터 공론의 장에서 안 보이기 시작했다.
중심부와 주변부
진보 성향 주류 미디어의 프로그램과 뉴스는 86세대 및 이들과 이념적으로 동질적인 사람들에 의해 제작돼 왔다. 70년대생은 주로 수동적 수용자로서 86세대의 정서와 가치관을 품은 대중문화 콘텐츠를 받아들였고, 이를 보면서 편안함과 위안을 느꼈다. 86세대 문화 기반 매스컴의 70년대생 재사회화는 오랜 기간 광범위하게 진행됐다. 이 때문에 신군부의 쿠데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2023)을 본 후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의 우두머리로 인식하는 사고체계는 70년대생에게서 더 쉽게 형성됐다.![정치권에서 70년대생은 주변부에 머무른다. 김용민(1976년생) 민주당 의원, 박주민(1973년생) 민주당 의원, 김은혜(1971년생) 국민의힘 의원, 윤희숙(1970년생) 전 국민의힘 의원 등 70년대생 정치인은 차기 주자급이 아니다. [각 정당 홈페이지]](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d3/dc/00/67d3dc00088bd2738276.jpg)
정치권에서 70년대생은 주변부에 머무른다. 김용민(1976년생) 민주당 의원, 박주민(1973년생) 민주당 의원, 김은혜(1971년생) 국민의힘 의원, 윤희숙(1970년생) 전 국민의힘 의원 등 70년대생 정치인은 차기 주자급이 아니다. [각 정당 홈페이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차기 지도자로 거론되던 70년대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73년생 한동훈’이라는 책이 나오던 때와 상황이 달라졌다. 탄핵 정국을 보수 대통령과 86 운동권 정치세력 간 권력투쟁 성격으로 보면, 한동훈은 보수 여당 대표로서 후자 편에 섰다. 86 세력의 대안이어야 할 70년대생 지도자로서의 신선도가 떨어진 셈이다.
이 때문에 ‘73년생 한동훈’의 저자인 심규진 스페인 IE대학 교수는 페이스북에 “윤 정권의 스타 장관이었던 한동훈은 유승민의 후계자가 되었다”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어 “유승민은 친박이었는데 박통을 배신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한동훈은 윤통의 아끼는 후배였는데 역시 배신자로 여겨지는 점도 참 공교롭네요”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권력의 바통이 86세대에서 이준석(1985년생) 개혁신당 의원 등 80년대생으로 바로 넘어갈 조짐도 보인다.
“비판적 사고 없이 그냥 선배 따라가”
이렇게 사회 여러 영역에서 86세대가 이끌고 70년대생이 뒤따르는 흐름이 형성됐다. 70년대생에 대해 변희재는 “아무런 비판적 사고 없이 그냥 선배를 따라간 거다. 그래서 가장 좌경화됐다. 86세대보다 더 좌경화됐다”라고 설명한다. 70년대생은 개성도, 조직력도 없이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 86세대의 문화 공습에 초토화가 됐다는 것이다.
70년대생에 대한 86세대의 지대한 영향은 일반 직장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많은 기업과 기관에서 70년대생은 86세대의 그늘 밑에 있었다. 86세대가 일찍 요직에 올라 오랫동안 차지해 온 결과로 70년대생을 건너뛰고 80·90년대생으로 그 자리가 넘어가는 양상이 발생한다.
2021년 11월 네이버에서 1967년생 한성숙 대표가 물러났다. 그 자리는 1981년생 최수연 대표로 채워졌다. 이 회사의 몇몇 70년대생 직원들은 허탈함을 느꼈다고 한다. 다른 기업에서도 40대에 임원이 돼 50대 내내 계속 근무하는 86세대가 많다. 이들이 너무 오래 하면 70년대생은 올라가야 할 때 못 올라간다. 결국 70년대생을 ‘스킵’하고 MZ세대가 후임이 된다.
이러한 사례가 많아 70년대생은 ‘낀 세대’로 불린다. 1972년생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70년대생의 불행에 대해 “60년대생의 장기 집권이 원인”이라고 말한 바 있다. 86세대 경영진의 처지에서는 70년대생 직원들과 형, 동생 하며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다가도 쇄신이 필요한 때가 되면 세대를 낮춰 파격 발탁을 선택하게 된다. 70년대생은 오랫동안 86세대에 의해 순치돼 왔기에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한다.
70년대생이 세대교체의 주역이 아니라 대상이 되는 징후는 여러 직장에서 나타난다. 요즘 몇몇 경제전문가는 직장인이 퇴사 위기를 느끼는 시기를 만 49세 전후로 꼽는다. 70년대생에 정확히 해당한다. 우리금융지주 보고서(2024)는 70년대생 가장이 퇴사나 퇴직을 고민하는 시기를 이보다 6년을 더 당긴 만 43세로 설명한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구조상 중년의 직장인은 오래 다닌 정규직 직장을 그만둔 뒤 재취업이 쉽지 않다. 되더라도 훨씬 줄어든 급여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70년대생은 86세대와의 동조화로 진보 편향성을 갖게 됐다. 그러나 이들은 86세대 아류로 사는 것에 따른 낮은 편익과 높은 비용을 충분히 인식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지난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86세대와의 차별화와 경쟁에 나서지 않은 것이다.
70년대생을 다룬 문헌에 따르면, 요즘 직장 내에서는 70년대생 간부와 90년대생 직원 간 세대 갈등도 종종 일어난다. 70년대생은 부하 직원의 ‘을질’로 피해를 보기도 한다. 반면, 몇몇은 ‘라떼(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꼰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70년대생이 겪는 이러한 문제는 새로운 걸 배우려는 인지적 유연성의 감소, 자기 확신과 폐쇄적 태도의 강화, 과거에 대한 미화에 기인한다.
흥미롭게도, 86세대는 자신의 카리스마로 후속 세대인 70년대생을 휘어잡았지만, 70년대생은 후속 세대인 80·90년대생에 강력한 영향을 줄 카리스마를 갖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이에 따라 86세대에서 70년대생으로 이어진 ‘진보적 가치의 전승’이 70년대생에서 80·90년대생으로 계속되리라는 보증은 없다.
70년대생의 이중 잣대
70년대생은 진보 편향이면서도 부동산과 미국을 선호하는 점에서 이중잣대를 가진 듯하다. 이들은 1990~2020년대 성인일 때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는 과정에 함께했다. 이 때문에 부동산 거래 및 미국과의 인적 왕래에 관심이 높다. 이들은 서울·수도권 아파트 ‘영끌’ 매수의 주요 주체이기도 했다. 자녀 조기유학에도 마음이 열려 있다.
이번 비상계엄·탄핵 정국 초기에 탄핵 찬성 집회에는 40·50대 일반 시민과 연예인이 다수 참여했다. 이후 ‘탄핵 촉구 시국선언에 참여하고 이를 SNS에 올렸다가 미국 ESTA에서 입국을 거부당했다’는 논란이 보도됐다. ESTA는 비자 없이 미국에 입국하려는 외국인의 개인정보 사전등록 시스템이다. 외교부는 시위 참여와 미국 입국심사 간에 연관성이 없다고 밝혔다. 우연인지 몰라도 이 논란 후 탄핵 찬성 집회의 참석자 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알려진다.
나아가, 70년대생은 사회 부조리에 비판적이면서도 동시에 진보 성향 이재명이 기소된 혐의와 조국(전 조국혁신당 대표)의 자녀 입시 비리 혐의엔 관대한 편이다. 이재명에 대한 70년대생의 지지도는 모든 세대 중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2024년 4월 총선에서 조국혁신당이 선전한 데엔 70년대생 유권자의 도움이 컸다.
이러한 70년대생 대중의 이중 잣대는 ‘제도적 도덕성’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러셀 하딘이라는 학자가 제안한 이 이론에 따르면, 유권자는 정치인 개인의 도덕성뿐만 아니라 대통령, 정부, 정당 등 제도적 기관의 도덕성(제도적 도덕성)도 함께 평가한다. 그런데 대체로 유권자는 정치인 개인의 도덕성보다는 제도적 도덕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를 70년대생에게 적용하면, 이들은 ‘이재명의 혐의가 심각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정부, 국민의힘의 도덕성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재명의 여러 혐의에도 불구하고 이재명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중 잣대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다. 상식에서 현저히 벗어난 이중 잣대는 진영 논리와 집단주의에 매몰됐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70년대생의 진보 편중을 지적한 글에 한 네티즌은 다음과 같은 댓글을 붙였다.
“1972년생인 나는 공업계고를 나와 대기업에 취업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야간대학과 방송대학을 다니며 공부했다. 그래서 한총련이나 주사파와 가까워지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리 분별을 옳게 못 하고 뒤틀린 인식을 하는 일부 1970년대생들을 보면서 잘못된 이념이 얼마나 무서운지 항상 느낀다.”
“불면의 밤 다시 시작”
70년대생은 자기 생애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벌어들이는 시기에 있다. 그러나 직장에서의 지위가 불안정해지는 상황에 부닥쳤을 뿐만 아니라 많이 버는 만큼 많이 써야 하는 스트레스도 받고 있다.
이들 상당수는 연로해지는 부모 세대와 독립하지 못한 자녀 세대를 이중으로 부양한다. 대신, 이들은 고급스러운 문화적 취향을 갖고 있음에도 이런 취향을 위해 지출할 여유가 별로 없다. 본인의 노후를 대비하기 힘들다는 건 더 큰 문제다. 우리금융지주 보고서(2024)에 따르면, 70년대생의 85.3%가 부모·자녀 등 가족을 부양하는 반면, 39.3%만이 본인의 노후를 대비해 경제적 준비를 한다. 부동산 급등장에 제때 올라타지 못한 사람은 벼락 거지가 된 것 같은 경험도 한다.
70년대생은 40대 중반~50대 중반이 된 지금 꿈과 현실의 괴리를 여실히 체감하는지 모른다. 그 억압된 욕구를 정치적 성향이 다른 대통령에게 쉽게 표출하는지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70년대생은 어린 세대보다 비상계엄의 부당성을 더 강하게 인식해 탄핵 반대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을 수 있다. 1980년 비상계엄 전국 확대는 70년대생에겐 강하게 각인됐다. 이들은 운동권이 주류인 대학 시절에 자유, 정의, 인권, 민주주의의 가치를 내면화했다. 영화 ‘서울의 봄’ 등 미디어 콘텐츠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수시로 재조명받았다. 따라서 이들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를 민주주의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해석해 반발의 강도를 높였을 수 있다.
다만 70년대생은 국회가 내란죄로 대통령을 탄핵소추한 뒤 헌법재판소 심리에서 내란죄를 제외하려 한 점, 대통령의 폭압적 진압 지시를 입증하는 진술과 메모의 신빙성이 낮아진 점 등 대통령에 유리한 정황을 다른 세대만큼 중립적으로 평가하진 않았다.
법원은 3월 7일 윤 대통령 구속 취소를 결정했고, 검찰은 9일 그를 석방했다. 이에 몇몇 70년대생은 좌절, 분노의 감정이 솟구치는 걸 느낀다. 온라인 여기저기에서 이런 마음을 토로한다. “윤석열이 웃으며 구치소에서 나오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불면의 밤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화가 난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 “너무 짜증이 나서 못 살겠다”
“왜 이런 개떡 같은 일이”
일부 진보 성향 정치평론가는 “윤석열 구속 취소와 석방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영향을 미칠 확률은 제로”라고 지지층을 위로한다. 헌재의 최종 결정과 무관하게, 이런 위로는 근거가 별로 없다.
법원은 윤석열 구속을 취소하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내란죄 수사 권한을 의심했다. 이에 따라 헌재로 넘어간 수사 기록의 증거 가치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구속 취소는 탄핵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통령이 구속된 상태에서 헌재가 탄핵 기각을 결정하면, 대통령은 구치소에 갇힌 채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정상적 통치가 불가능하고 나라의 체통이 말이 아니다. 헌재 재판관은 이런 현실적 문제 때문에라도 탄핵 기각 결정을 내리는 걸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윤석열이 석방되면서 그는 언제든 집무실로 복귀할 수 있게 됐다. 헌재 재판관이 기각 결정을 내리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이런 이유로 김어준도 윤석열의 석방에 대해 “왜 이런 개떡 같은 일이 벌어졌을까?”라고 말한 것이다.
70년대생은 그간 높은 정치 관여도를 유지했고, ‘내가 행동하면 세상이 바뀐다’는 효능감을 느껴왔다. 탄핵소추된 진보 노무현 대통령을 복귀시켰고, 광우병 촛불시위로 보수 이명박 대통령을 거의 마비시켰으며, 보수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그러나 이번 보수 대통령 탄핵 정국이 이런 역사적 경험과 사뭇 다르게 흘러가자 몇몇 70년대생은 당혹감을 느끼는 듯하다. 그래서 이 문제에 더 몰입하고 더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밤늦도록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탄핵 찬성 쪽 영상만 보면서 확증편향이 더 강화된다.
더욱이 몇몇 정치인은 탄핵소추 세력과 탄핵에 찬성하는 시민들을 ‘운명공동체’로 엮어 탄핵이 기각되면 운명이 결딴날 것처럼 말한다. 이렇게 ‘관전자’를 ‘오징어 게임’ 같은 생사가 걸린 게임의 ‘선수’로 과몰입시키는 상황이다. ‘탄핵이 기각되면 탄핵에 찬성한 시민들의 정신건강이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나오기도 한다. 탄핵 찬성을 기원하면서 매몰한 시간과 노력이 많을수록 탄핵 기각에 따른 충격도 클 것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탄핵이 인용되면, 탄핵에 반대한 시민들이 받을 충격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나 자신보다 정치가 우선?
한지원 평론가는 70년대생의 특정 이념 쏠림을 “정신적 부도 상태”라고 말한다. “60대가 되면 X세대는 가장 큰 세대 집단이 된다. 1인 1표의 민주주의로 대결하면 젊은이가 X세대를 절대 이길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는 셈이다. 한국 사회를 어디로 끌고 갈지 걱정된다.”
정치에 관한 높은 관심과 정치참여는 민주시민의 덕목이지만, 본질적으로 나 자신보다 정치가 우선일 순 없다. 70년대생은 ‘신세대’ ‘X세대’로 불리던 20대 시절의 탈이념적이고 꿈 많고 개성 넘치던 자기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자기성찰과 회복이 본인에겐 탄핵 인용·기각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