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Dili)는 인도네시아 발리(Bali)에서 배로 1시간40분 남짓 거리다. 티모르섬은 인도네시아령 서티모르와 구(舊)포르투갈령 동티모르가 동서로 갈려 공존하고 있다. 이 섬은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Jakarta)에서 약 2000㎞ 떨어져 있고 동(東)누사텅가라(Nusa Tenggara Tim-ur)주의 변방에 위치한다.
티모르섬은 숲으로 뒤덮인 산과 넓은 구릉이 줄지어 있는 전형적인 열대 사바나 지역이다. 호주와 가까운 이 섬은 호주 내륙으로부터 불어오는 뜨겁고 건조한 사막 열풍의 영향을 받는다. 건기 때는 너무 건조해 섬 전체가 흙먼지로 자욱하고 더위와 갈증에 지쳐 죽는 가축들이 생길 정도다. 실제로 딜리에서 라우템(Lautem)에 이르는 동티모르 북부 해변가에는 그 흔한 갈매기가 발견되지 않는데, 수온이 너무 높아 물고기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기 때는 습한 바람이 서쪽으로부터 불어와 곳곳에 홍수가 진다. 따라서 티모르섬은 전체적으로 인도네시아의 다른 도서지방에 비해 농업이나 목축업 등이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다.
400년 이상 포르투갈의 식민지배 받아
서구 열강이 티모르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은 17세기 중반이었다. 그 선두주자는 포르투갈. 티모르섬이 위치한 말루쿠 군도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문화적 영향력을 미쳐 가톨릭을 정착시켰다. 지난 1996년 인도네시아 공보성은 동티모르 인구 81만명 중 가톨릭 교도가 91.4%, 기독교 2.6%, 이슬람 1.7%라고 기록하고 있다.
포르투갈 식민통치 시대 티모르섬이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백단향(白檀香: Sandalwood)의 주요 산지였기 때문이다. 백단향은 가구와 악기, 각종 장식품을 만드는 목재로 사용됐다. 특히 짙은 향기가 나는 뿌리 부분은 향료 조각 세공품을 만드는 데 쓰였다. 백단향은 성질이 따뜻해 가슴앓이, 배앓이, 곽란 등을 다스리는 약재로서 효능이 있다. 17세기 이후 동남아로 진출하는 유럽인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향료무역을 독점하는 것이었는데, 향료무역의 으뜸 상품이었던 백단향의 주산지가 바로 티모르였다.
이를 둘러싼 다툼 끝에 1913년 티모르는 동(포르투갈령)과 서(네덜란드령)로 갈리게 됐다. 그 후 서티모르는 1949년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로부터 완전 독립하면서 인도네시아령으로 귀속됐다. 하지만 17세기 중반 이래 400년 이상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를 받아온 동티모르는 사정이 훨씬 복잡했다. 포르투갈은 동티모르를 독립시키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그러는 동안 가톨릭계 선교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엘리트층이 1974년 민족주의 정치세력, 독립운동의 주체로 발전했다.
동티모르인들은 1975년 포르투갈 정부가 공식적으로 해외 식민지를 포기하자 제각기 정당을 형성하여 정부 주도권 쟁탈전에 돌입했다. 인도네시아와 합병을 주장한 티모르대중민주협회(APODETI)와 포르투갈과 연방을 결성하되 가까운 장래에 독립을 주장한 티모르민주동맹(UDT), 즉각적인 독립을 주장한 가톨릭계 엘리트 집단인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FRETILIN) 등 3개 세력이 독립의 방법과 시기 및 내용 등을 둘러싸고 내전을 벌였다.
짧지만 격렬한 내전에서 승리한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은 1975년 11월28일 동티모르인민민주공화국 성립을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는 그 해 12월 현지에 잔류해 있던 친(親)인도네시아 성향의 티모르대중민주협회로 하여금 의용군을 조직해 동티모르에 투입하도록 사주했다. 의용군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인도네시아에 지원을 요청했고 인도네시아는 특전사부대를 동원해 동티모르를 침공, 평정한 후 괴뢰정권을 세웠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1977년 괴뢰정권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동티모르를 인도네시아의 27번째 주로 변경하고 자국령임을 선포했다.
저항운동을 했던 동티모르 원주민들은 인도네시아군에 의해 참혹하게 희생됐다. 전투기들이 툭하면 민간마을을 폭격했고, 게릴라들을 체포해 고문하고 살해했다. 의심이 가는 원주민들은 집단수용소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10만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당시 인구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소탕작전으로 게릴라 세력은 현저하게 약화됐으며, 일부는 호주와 포르투갈 등 해외에서 동티모르 독립 쟁취 활동을 전개했다. 대표적인 저항조직인 모베레민족항쟁협회(CNRM)는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의 망명지도자들이 집결해 결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