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10월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된 리커창이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중화권 언론도 일찌감치 리커창을 주목하고 조명했다. 심지어 일부 매체는 그가 허난(河南)성과 랴오닝성의 당 서기로 재직할 때 공공연하게 ‘내일의 태양’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주변국 지도부의 시각도 비슷했다. 그가 랴오닝성 당 서기이던 2007년 4월 랴오닝성을 방문한 롄잔(連戰·74) 대만 국민당 명예주석은 조상에 차례를 지낸 뒤 리커창에게 ‘올라라, 올라라, 또 올라라(登高, 登高, 再登高)’라고 쓰인 유리 공예품을 건넸다. 대만의 총리와 국민당 주석까지 지낸 그가 이런 선물을 건넨 것은 당시 6개월 남짓 남은 중국 공산당의 제17차 당 대회에서 제5세대 지도자로는 가장 앞에 섰다가 2012년 제18차 당 대회에서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으로 최고의 지위에 오르라는 은밀한 축원 메시지였다. 오카다 가쓰야 전 일본 민주당 대표도 이에 앞서 2005년 랴오닝성을 방문한 뒤 “리 서기가 장차 중국의 미래 지도자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내놓고 말했다.
이처럼 2007년 10월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가 열리기 2, 3개월 전까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구성에서 리커창이 시진핑의 뒤에 서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후진타오 현 주석, 쩡칭훙(曾慶紅) 당시 국가부주석 등 최고 권력의 향방을 결정하는 극히 제한된 범위의 권부 인사를 제외하고는. 그래서인지 리커창을 소개하는 책은 지금도 시진핑 국가부주석 못지않게 많다.
‘내일의 태양’에서 2인자로
리커창은 2007년 10월22일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시진핑과 함께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됐다. 하지만 그의 권력서열은 7위로 6위인 시진핑에 한 끗발 밀렸다. ‘내일의 태양’에서 2인자, 즉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으로 바뀐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듬해 3월 열린 제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제5차 전체회의에서 그는 국무원 부총리로 선출됐다. 시진핑은 국가부주석에 뽑혔다. 국가부주석은 중국의 차기 지도부에서 정치권력 1인자인 국가주석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자리다. 부총리는 다음에 총리를 맡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6월 훙칭(洪淸)이 펴낸 리커창 전기의 제목은 아예 ‘미래의 중국 총리 리커창(他將是中國大管家-李克强傳)’으로 돼 있다. 이변이 없는 한 리커창은 2인자란 얘기다.
하지만 리커창은 과거 어느 총리보다 실질적인 파워를 지닌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02년 가을 등장한 제4세대 지도부는 후진타오 주석-원자바오(溫家寶) 총리-쩡칭훙 부주석 등 3인의 ‘트로이카 체제’로 불렸다. 하지만 2012년 가을 구성될 제5세대 지도부는 ‘시-리(習-李) 양두체제’가 될 것으로 분석가들은 예상한다. 시진핑은 태자당의 현직 영수로서, 리커창은 ‘퇀파이(團派·중국공산주의청년단 출신)’의 현직 좌장으로서 엇비슷한 권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상하이방(上海幇), 태자당, 퇀파이가 각각 3명씩 황금분할을 이룬 제17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와 달리 18기에는 퇀파이가 더 많이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리커창을 위시한 퇀파이의 목소리가 제5세대 지도부에서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게다가 총리가 관할하는 중국 경제는 일취월장하고 있다. 올해는 일본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2위로 올라설 조짐이다. 2019년엔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중국 총리의 힘이 국제무대에선 물론 내부에서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내각에 해당하는 국무원의 수장인 총리는 4명의 부총리와 5명의 국무위원(부총리급) 외에도 27개의 부서를 거느린다. 또 31개 지방 성장과 수십여 개의 국무원 직속기구, 국무원 판사(辦事)기구, 직속 사업단위의 최고책임자도 대부분이 부장(장관)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