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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여성해방 세계 최대 마약 생산

아프간을 떠나는 자와 남는 자 ②

멀고 먼 여성해방 세계 최대 마약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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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에 한 번 잠자리 같이해야

아프간 정부의 여성인권에 대한 인식은 2009년 통과한 ‘가족법’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당시 개정된 아프간 가족법에는 외출 시 남편의 허락을 얻어야 하며, 취업·교육·병원 검진 시 반드시 남편의 동의가 필요하며, 여성을 제외한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만 자녀 양육권을 부여한다는 조항이 있다. 게다가 여성은 최소 4일에 한 번 남편의 잠자리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조항까지 들어 있어 문제가 된 바 있다. 당시 유엔과 산하 원조기구 등은 남편의 아내 강간을 합법화한다며 비난을 쏟아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혐오스러운 법안”이라고 말했고,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이 법안은 아프간의 진전보다는 후퇴를 가속화할 위험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영국 등이 이 법안에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는 아프간전쟁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여성해방’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아프간 여성의 인권이 9·11 테러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평가를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가족법은 내용상 탈레반 정부 시절과 다를 바가 거의 없어 미국과 영국은 당황했다.

미국이 계획한 아프간 여성해방계획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미국 사회가 처음 인지한 건 2005년 톨로 TV의 여성 앵커 샤리마 레자위가 살해된 사건이 발생하면서부터다. 아프간의 신세대를 대표하며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이 여성 앵커는 얼굴을 드러내고 남성 앵커와 단둘이 방송에 나온다는 이유로 오빠에게 ‘명예 살인’을 당했다. 필자는 그 사건을 취재하며 당시 그녀를 살해한 오빠를 만났다. 샤리마의 오빠는 ‘이웃들의 계속되는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동생을 명예살인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멀고 먼 여성해방 세계 최대 마약 생산

마약을 소각하는 아프간 군인들

미국인들은 충격과 함께 ‘탈레반도 없는데 왜 명예살인이 벌어졌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아프간 여성부 공보부 직원은 이 의문에 대해 “아프간에서 여성해방의 적은 탈레반이 아니라 남성의 여성인권에 대한 인식이다. 탈레반은 이를 등에 업고 정치력을 구사하는 것뿐이다. 탈레반이 없어져도 여성은 절대 하루아침에 해방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언론인보호협회(CPJ)의 밥 디츠는 “그 사건은 미국 언론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해방을 말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 계기가 되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은 아프간 전체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고, 미국 정부가 아프간 여성해방을 이유로 전쟁을 개시한 것은 섣부른 착각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미국 언론계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라고 했다.



아프간의 현지 언론 아프간 옵서버의 여성 기자 쉬키버는 “2001년 미군이 아프간에 들어왔을 때 많은 여성이 희망을 가졌다. 이제 학교와 직장도 다닐 수 있고, 여성이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다는 미국의 말 때문이었다. 여학생들은 조심스럽게 학교도 다녔고 여자 경찰에 응시했으며, 세상 밖으로 나오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환상일 뿐 지금은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카불 위클리’의 하뮨 기자는 “여성이 교육받는 것을 반대하는 테러범들은 장난감 총에 든 염산을 여학생들에게 발사한다. 이 액체에 맞은 여학생들이 얼굴에 화상을 입고 실명 상태가 되었다. 여학교 교장이 탈레반에게 참수되는 일도 있었다. 아프간 동부 카피사 주에서 여학생들이 있는 교실에 독가스를 살포해 수십 명이 실신하는 사고도 있었다. 그 학교는 사실상 폐쇄됐다. 부모들이 여학생을 학교에 보내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명예살인당한 여성 앵커

여성 국회의원이나 여배우, 여기자 등 아프간전쟁 이후 꿈에 부풀어 사회 각층에 진출했던 많은 아프간 여성 인사가 끊임없이 살해 협박에 시달렸다. 이들이 자신의 꿈을 펼치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었다. 이슬람 근본주의 율법 ‘샤리아(Shariah)’가 지배하는 아프간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었다. 미군이 아무리 여성해방을 외치고 강조해도 상황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탈레반 정부에서 비밀리에 여성운동을 하던 아프간 여성혁명연합(RAWA)은 탈레반이 물러난 2001년 이후에도 수면 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렵게 통화가 된 이 단체의 조직원은 “미국이 탈레반을 쫓아냈어도 아프가니스탄의 사회 정서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은 아프가니스탄의 오래된 역사이자 전통이다. 여성에 대한 계속되는 테러는 탈레반이 저지르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행동대원일 뿐이다. 여성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대다수 아프가니스탄 남성의 묵인이 탈레반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을 죽일 수 있는 배경이다. 우리는 이 정서를 알기에 여전히 지하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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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국제분쟁지역 전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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