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호

패왕별희(覇王別姬)

사랑과 이별, 배반과 질투로 얼룩진 연극 같은 베이징 현대사

  •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입력2005-08-29 1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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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니까 한 번은 가봐야지, 사연이 얼마나 많겠어….” 이렇게 잔뜩 기대에 부풀어 떠나지만 막상 도착하면 자금성 앞에서 사진 몇 장 찍고 돌아나오기 일쑤다. 수천 년을 이어온 정치의 중심, 미로처럼 얽힌 역사의 현장. 베이징을 낯선 외국인 관광객이 제대로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를 통해 중국인의 숨겨진 표정과 도시의 진면목을 속속들이 살펴보자. 여행 중에 꼭 맛봐야 할 음식,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곳 소개는 보너스!
    패왕별희(覇王別姬)
    누가 베이징(北京)에 간다고 하면 나는 ‘베이징 삼락(三樂)’을 꼭 체험해보라고 추천한다. ‘일락(一樂)’은 자금성 뒤편에 있는 허우하이(后海) 주변의 옛 골목을 자전거를 타고 누비는 것이다. 호숫가에 울창한 버들이 제대로 늘어지는 여름철, 그것도 해질 무렵이 최고다.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의 전통 가옥과 그 사이로 꾸불꾸불 끊임없이 이어지는 골목을 드나들면서 옛 베이징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다 지치면 호숫가를 따라 늘어선 앙증맞고 매력적인 카페에서 쉰다. 석양을 받아 더욱 황금빛으로 빛나는 자금성 지붕, 허우하이 호수, 바이타(白塔)를 보면서 차를 마시거나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정취는 정말 그만이다. 중국과 서양, 고전과 현대의 접점을 체험할 수 있다.

    ‘이락(二樂)’은 얼궈터우술(二鍋頭酒)에 양고기 샤브샤브인 훠궈(火鍋)를 곁들이는 것이다. 삼합을 먹어야 전라도를 체험했다고 말하듯, 얼궈터우에 훠궈를 먹어야 베이징을 체험한 것이다. 얼궈터우는 작은 병 하나에 우리 돈으로 200~300원 한다. 값이 싸서 좋고, 가짜가 없어서 좋다. 65도, 59도, 39도 등 알코올 도수가 다양하고, 도수가 높을수록 술맛이 좋고 비싸다. 최소한 50도는 넘어야 얼궈터우의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솥에서 두 번 내렸다고 해서 얼궈터우인데, 적어도 베이징에서는 훠궈와 천상의 궁합을 이룬다.

    경극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

    베이징의 겨울은 눈보다 바람이다. 예전에 베이징에서 공부할 때 새벽에 나를 깨우는 것은 창문을 꽉꽉 닫아놓아도 어느새 스며드는 황사의 흙냄새, 그리고 기숙사 옆에 세워둔 자전거가 거센 북풍에 휙휙 쓰러지는 소리였다. 황사로 목이 칼칼하고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날에 훠궈와 얼궈터우를 먹어야 한다. 베이징에서 그것은 제의(祭儀)다. 베이징에 온 사람이면 이런 고약한 땅에 왜 수도를 세웠느냐고 불만을 터뜨릴 수 있지만, 베이징의 그런 고약한 날씨를 견디는 제의가 훠궈에 얼궈터우를 먹는 일이다.

    그 맛은 겨울에는 겨울대로, 여름에는 여름대로 별미다. 겨울에도 먹다보면 땀이 솟아 에어컨을 켤 정도이니 여름에는 땀으로 목욕을 하며 먹어야 한다. 하지만 독특한 체험이 될 것이다. 뜨거운 육수에 살짝 데친 부드러운 양고기를 특유의 소스에 찍어 독한 얼궈터우와 함께 목으로 넘기는 순간, 목에서부터 불기운이 시작되어 밑으로 내려갔다가 이내 치솟아오르면서 온몸이 달아오른다. 자신도 모르게 언 몸이 스스로 풀리고 일순간 정신이 아득해진다. 예전에 ‘사나이 가슴에 불을 댕긴다’는 고량주 광고 카피가 있었지만, 술이 사람의 가슴에 어떻게 일순간에 불을 댕기는지, 불 같은 술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온몸에 불을 지르고 나면 뒤끝이 참으로 시원하다. 어찌 이런 술이 있으랴! 내가 위스키보다 중국술을 좋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가슴에 불을 지르고 끝은 ‘쿨’한 그런 사람이 어디 흔한가. 그래서 중국술에 빠지는 것이다. 인간이든 술이든 뒤끝이 좋아야 하거늘 그 점에서 얼궈터우는 확실하다.

    ‘삼락(三樂)’은 차를 마시면서 경극(京劇)을 한 대목 감상하는 것이다. 호박씨를 까먹거나 중국 전통 다과와 함께 구수한 룽징차를 마시면서 감상하면 더욱 중국 맛이 난다. 중국의 심벌즈인 나오와 얼후, 비파 같은 다양한 악기로 연주하는 시끄러운 음악과 아득한 고음의 가성에 넋을 빼앗기다보면 여행의 피로를 잊는다.

    경극은 원래 베이징 지방에서만 유행했다. 하지만 이제 베이징을 넘어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적 아이콘이 됐다. 1990년대 말부터 중국에는 전통 문화를 즐기는 복고주의 물결이 크게 일었는데, 그 덕에 경극을 감상할 수 있는 극장도 급증했다. 중국인의 관심이 높아졌고, 여기에 외국인 관광객이 가세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공연장이 생겼다.

    그런데 경극은 중국 역사와 고전에 사전 지식이 없으면 줄거리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또 모든 동작이 관습적으로 약속된 것이어서 미리 알고 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경극은 무대장치나 소품이 없고, 모든 것을 동작으로 표현한다. 팔을 괴고 기대면 잠자는 것이고, 말채찍을 들고 있으면 말을 타는 것이다. 상징성이 뛰어난 예술 장르다. 그래서 그저 시끄럽고 엽기적인 오페라쯤으로 여길 수 있다. 외국인이 문화체험 삼아 경극을 감상할 때는 유명한 작품을 한 대목씩 뽑아서 들려주는 극장을 선택하면 경극의 백미를 감상할 수 있다. 영어 자막을 서비스하는 곳이라면 더욱 좋다.

    1990년대 후반부터 경극 감상이 베이징을 찾는 관광객을 위한 필수 코스가 된 데에는 천카이거(陳凱歌) 감독의 대표작 ‘패왕별희(覇王別姬)’의 덕이 크다. 1993년 개봉된 이 영화에서 경극 학교 사부는 “경극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고 말한다. 사람이라면 경극을 봐야 하고, 개·돼지인 것은 경극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극을 봐야만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경극을 봐야 베이징의 참맛을 체험하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인도 그렇지만 중국인 역시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에서 패한 항우(項羽)를 좋아한다. 항우는 원래 힘이 장사였다. 힘이 센 사람을 가리켜 항우장사라고 하듯이, 항우는 산을 뽑을 만한 힘을 지녔다고 한다. 지혜나 요령, 꾀는 부족하지만 우직하고 순박한 사람이다. 그런 항우의 모습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 그의 마지막 순간이다.

    항우는 유방(劉邦)에게 포위당해 ‘사면초가’가 되자 한밤중에 일어나 술을 마셨다. 늘 그의 곁을 지키던 애마 추(?)와 애첩 우희(虞姬)를 곁에 두고 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시로 노래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로 시작하는 시로, 영화 ‘패왕별희’에선 경극 학교 아이들이 수련하면서 늘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힘은 산을 뽑을 수 있고, 기개는 온 세상을 덮을 만한데때가 불리하여 추도 나아가지 않는구나추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쩔거나우여, 우여, 그대를 어찌해야 하는가

    항우가 이 노래를 부르자 우희도 따라 부른다. 주위는 온통 눈물바다다. 항우는 우희더러 유방에게 가서 목숨을 보전하라고 권한다. 유방이 한때 우희에게 마음을 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희는 “어떻게 두 지아비를 섬기며, 천하통일을 꿈꾸는 황제께서 어찌 일개 계집의 안위를 마음에 두느냐”면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다가 자결한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역발산 기개세’의 능력을 가졌지만 때가 불리하여, 천명과 천시가 따라주지 않아 좌절하는 영웅의 비애와 한탄이 담겨 있는 애절한 노래다. 경극 ‘패왕별희’는 이런 패왕과 우희의 최후를 다루고 있다.

    뜨뜻미지근하고 답답한 중국인

    ‘삼국지’에서 제갈량은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하늘이다(謀事在人, 成事在天)”고 했다. 사람의 노력은 결국 하늘의 명을 넘을 수는 없다. 중국인에게 천명이란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이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는 그것을 천명이라 여기며 체념하고 순응한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간이라고 해도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다. 자신이 패할지라도 그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순응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숙명론이자 운명론인데, 자칫 보수적이고 노예적인 심리를 낳을 소지가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사람들이 종종 중국인이 뜨뜻미지근해서 답답하다고 하는데, 중국인은 예나 지금이나 소극적이다. 여기에는 이런 천명관(天命觀)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이런 천명관은 불행한 사람을 위로하고, 한 걸음 물러서 불행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실패한 사람을 구원하는 구실을 한다. ‘내가 실패한 것은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늘의 뜻이나 때가 맞지 않아서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부정적으로 보면 자신의 책임을 하늘에 떠넘기는 일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이러한 태도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 자신을 위로하고 구출한다. 개인이 직면한 불행과 좌절을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일단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항우의 최후에는 이런 중국인의 삶의 철학이 압축되어 있다. 항우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오강을 건너 그곳 왕이 되어 후일을 도모하라는 주위의 권고에 “내가 강동의 젊은이 8000명을 싸움터에서 죽게 했는데 무슨 낯으로 그곳 사람을 보겠느냐”면서 강을 건너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그는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못한 것이 아니다”고 하면서 자결한다.

    이 순간 항우는 정치적 패배자를 넘어선다. 어차피 인간이 천명을 거스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천명에 순응하여 자신의 최후를 시적으로 마감한 문화적 영웅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우희와 추의 이야기가 곁들여지면서 항우의 최후는 한편의 시가 되었다. 자기가 받든 사람이 완전히 망하게 됐어도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키는 우희, 그녀는 모든 남성이 갈망하는 영원한 여성상, 아니마의 또 다른 상징이다. 그래서 중국인뿐만 아니라 한국 남성도 양귀비보다 우희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이리라.

    영화 ‘패왕별희’는 두 경극 배우의 이야기다. 두 배우의 단골 레퍼토리가 ‘패왕별희’이고, 초나라 패왕 항우와 그의 애첩 우희 역을 맡는다. 영화는 두 사람이 경극 배우를 양성하는 곳에서 만나 연극 파트너를 넘어 사랑과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 결별과 배반, 비극적인 최후까지를 1924년부터 1979년까지 중국 현대사의 중요 사건 속에 배치한다.

    중국 현대사의 전개에 따라 베이징의 주인과 그들이 지배하던 역사 무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차례로 등장한다. 청나라를 상징하는 장 내시와 중화민국을 상징하는 원 대인, 일본군 침략자 아오키 장군, 그리고 베이징 최후의 승자인 중국 공산당을 상징하는 샤오쓰가 그렇다. 영화는 이렇게 베이징이라는 역사의 무대를 차지하는 주인이 바뀜에 따라 경극의 운명은 물론 패왕 샬로와 우희 데이의 운명이 어떻게 희·비극을 오가는지 보여준다.

    북경인은 기침소리에도 가락이 있다

    패왕별희(覇王別姬)

    장궈룽이 열연한 영화 ‘패왕별희’ 한 장면.

    이 영화에는 역사라는 무대와 경극의 무대가 함께 등장한다. 역사 무대의 주인공이 바뀌면서 경극 무대의 주인공이 웃고 운다. 사실 이것이 베이징의 역사, 베이징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다. 중국의 다른 지방 사람들은 베이징 사람을 거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베이징 사람은 베이징 사람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중일전쟁,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문화대혁명의 폭발, 4인방(마오쩌둥의 권력을 승계하려던 문혁파 일원·장칭, 장춘차오, 야오원위안, 왕훙원)의 몰락, 천안문 사태 등 중국 역사의 중요 고비를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의 주인 교체는 곧 베이징 주인의 교체였고, 그런 역사의 변화를 직접 목도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강하다. 베이징 사람은 정치를 화제로 끊임없이 주절주절하기를 좋아한다. 베이징 사람을 사귈 때는 그런 정치 취향을 이용하는 것이 비결이다.

    ‘패왕별희’를 찍은 천카이거 감독은 유달리 베이징을 사랑한다. 베이징에서 태어나고 자라서만은 아니다. 그는 훗날 “‘패왕별희’를 찍을 때 나도 모르는 어떤 힘에 조종당하는 듯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베이징이 내게 남긴 것을 모두 찍으려 했다”고도 했다. 베이징을 사랑하고 베이징에 관한 추억이 많은 그가 베이징을 말하기 위해 경극을 택했다. 천카이거는 “베이징 사람은 기침소리에조차 가락이 있고 눈물이 나올 지경”이라고 말했다. 천카이거가 경극과 경극 배우를 소재로 한 영화 ‘패왕별희’를 찍은 것은 고향 베이징과 경극에 대한 추억과 애정 때문이다. 천카이거는 이 영화를 찍은 뒤 꿈을 꿨는데, 꿈에 장궈룽과(張國榮) 데이가 자신에게 작별을 고했고, 자신은 꿈속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천카이거에게 ‘패왕별희’는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각별한 영화다.

    경극에서는 여자 주인공을 ‘단(旦)’이라고 부른다. 특기할 점은 여자 주인공을 남자가 맡는다는 것. 봉건시대에 남녀가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을 금지해서다. 그래서 남자가 여자 역할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경극의 성패가 달렸고, 이 때문에 경극만의 신비스러움과 매력을 지니게 됐다.

    중국 작가 루쉰(魯迅)은 이를 두고 “중국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영원하고 가장 널리 보급된 예술은 남자가 여자로 분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루쉰의 해석은 이렇다. 남자가 여자로 분장하면, 남자 관객은 여자로 분장한 것이니까 그를 여자로 받아들인다. 반면에 여자 관객은 남자가 여자로 분장한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남자라고 여기게 된다. 결국 남자가 여자로 분장함으로써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마술적인 장치라는 것이다. 경극의 최전성기이던 1920~30년대 중국 경극계에서 그런 여성 역할을 가장 잘한 배우가 중국 경극사의 상징인 메이란팡(梅蘭芳)이다. 특히 경극 ‘패왕별희’에서 우희 역할을 잘했다.

    천카이거는 어려서 메이란팡의 손자와 같은 유치원에 다녔다고 한다. 그 집에 가면 부모는 바빠서 늘 가정부가 아이들을 챙겨줬는데 어린 천카이거의 눈길을 끈 것이 있었다. 하나는 그 집에 있던 텔레비전이다. 1950년대 후반에는 매우 귀한 것이었는데, 소련 정부가 메이란팡에게 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유난히 많은 고양이, 또 친구의 할아버지인 메이란팡이 아침 일찍 일어나 검무를 추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메이란팡이 신고 있던 하얀 띠를 두른 신발도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삶의 여유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연이 됐는지 훗날 영화감독이 된 천카이거는 메이란팡이 가장 잘 연기한 우희에 관한 영화를 찍는다.

    “입 벌려, 입 벌려, 넌 계집애야!”

    영화 ‘패왕별희’는 남자가 여자로 변신하는 경극의 신비와 마력이 있는 지점을 다룬다. 경극이 유사 이래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1920년대, 베이징의 경극 학교에 한 여자가 곱상한 소년을 데리고 온다. 술집 여인인 어머니는 아이가 커서 더는 홍등가에 둘 수 없으니 받아달라고 간청한다. 경극학교 사부는 얼굴이 곱상한 아이가 마음에 들지만 손이 육손이어서 안 된다고 거절한다. 그러자 엄마는 아들의 한 손가락을 싹뚝 잘라버린 뒤 다시 데려온다. 이 사내아이가 훗날 미인 우희 역을 맡는 ‘데이’(아명 도즈)이고, 어머니에게 버림받아 들어온 아이 옆에서 부모가 되고 연인이 되어주는 경극학교 사형이 훗날 패왕 항우 역을 맡는 ‘샬로’(아명 시토)다.

    그런데 사내아이를 여자아이로 어떻게 성전환시킬 것인가. 방법은 폭력이다. 데이는 극중에서 우희의 대사인 “나는 본래 계집아이로서…”를 자꾸 “나는 본래 사내아이로서…”라고 잘못 노래한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남자라는 것을 드러내고 만다. 그럴 때마다 사부의 엄청난 체벌이 가해진다. 안타까운 샬로가 “네가 진짜 여자라고 생각하면 안 틀릴 거야” 하고 달랜다. 데이 스스로도 의식적으로 노력해보지만 노래를 하다보면 다시 “나는 본래 사내아이로서” 하고 나와버린다. 무의식이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이다.

    사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데이는 결국 도망친다. 그런데 밖에서 경극 공연을 보고는 패왕의 멋진 모습과 화려한 무대에 압도당해 다시 경극학교로 돌아온다. 전보다 더 열심히 연습하고 노래 실력도 제법 늘었지만 여전히 ‘성전환’은 이뤄지지 않는다.

    패왕별희(覇王別姬)

    황사가 몰아친 베이징 시내에서 자전거를 탄 시민이 서둘러 귀가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경극학교에 후원자가 방문한다. 청나라 때 경극의 최대 후원자이자 경극계를 좌지우지하던 사람은 궁중의 내시였다. 그 내시 밑에서 경극 극장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 경극학교를 방문해 곱상한 얼굴의 데이를 발견하고는 한 소절 해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중요한 자리에서도 데이는 “나는 본래 계집아이로서…”라고 해야 할 대목을 “나는 본래 사내아이로서…”라고 해버린다. 사부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고 지켜보던 아이들도 모두 얼어붙는다.

    그 절망적 상황에서 패왕 항우 역을 연습하고 있던 샬로가 스승의 담뱃대를 들고 나선다. 데이의 보호자이자 든든한 버팀목이던 사형이 나서서 그를 의자에 앉힌다.

    “입 벌려, 입 벌려! 넌 계집애야, 넌 남자가 아니고 계집애라고!”

    사형 샬로가 담뱃대를 데이의 입에 넣고 휘젓자 붉은 피가 데이의 입가에 흐른다. 끔찍한 장면인데 데이는 처음에는 놀라고 긴장했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고, 결국은 무엇인가 결심이 선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