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해양석유총공사가 운영하는 유전 플랫폼.
“오늘날 중국 영토는 닭 모양이야. 저장(浙江)성, 푸젠(福建)성, 광둥(廣東)성은 닭의 배, 신장위구르자치구와 시짱(西藏)자치구는 꼬리, 헤이룽장(黑龍江)성, 지린(吉林)성은 머리 부분이지. 그런데 말이야, 한반도는 닭의 부리, 일본은 모이거든. 부리로 (일본을) 쪼아야 돼.”
피식 웃음이 났지만, 중국이 북한을 활용해 일본을 견제한다는 ‘이조제일(以朝制日)’과 반일(反日)에 대한 나름의 해학이려니 생각했다. ‘청나라 이전 수천 년 동안 닭 머리는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 땅이었으니 한국을 잘 받들라’고 말하곤 웃어넘겼다. 벌써 10년도 더 된 얘기지만.
닭 모양을 한 중국 지도를 펼쳐놓으면, 머리에서 몸통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에 오목하게 들어간 목 부분이 있다. 랴오닝(遼寧)성 서쪽, 허베이(河北)성, 톈진(天津)시, 산둥(山東)성으로 이어지는 보하이(渤海·발해)해. 그 안쪽 가장 깊숙한 일대가 보하이만이다. 한때 고구려가 당(唐)나라와 건곤일척(乾坤一擲) 혈전을 벌였던 안시성도, 진시황제가 불로불사의 약초를 구하기 위해 서복(徐福)을 동쪽으로 떠나보낸 곳(秦皇島)도, 명나라 장수 오삼계(吳三桂)가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산하이관(山海關) 문을 열어 청나라 군대가 무혈입성한 곳도 보하이만 연안이다. 연암 박지원은 “파초선을 든 만인(滿人) 대관이 100여 명의 군사에 둘러싸여 조사받는 것이 무척 삼엄했다”며 이곳의 통관 수속에 대해 적고 있다.
근래에는 매년 7,8월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자들이 모이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로 유명하다. 1958년 대약진운동 전면 실시를 결정한 회의이기도 하다. 역사는 화북, 화동지역에서 수도 베이징(北京)으로 가는 최적의 해상·육상교통로이자 천혜의 휴양지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보하이만은 최근 유전(油田) 기름유출 사고로 또 한 번 역사에 기록될 듯하다. 보하이만 펑라이(蓬萊) 19-3 유전에서 원유 유출사고가 발생한 날은 6월4일. 중국 국가해양국은 한 달이 지난 7월5일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원유 유출사고로 840㎢의 바다가 오염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일주일 뒤 중국 언론은 중국해양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4240㎢의 해역이 오염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고, 이날 펑라이 19-3 유전의 B, C 플랫폼에서는 원유 생산을 중단했다. 이는 서울시의 7배에 해당하는 면적. 조사 결과, 인근 해역 3400㎢의 수질은 1등급에서 3등급으로 떨어졌다.
유전 사고 트위터 통해 처음 알려져
유전 가동은 중단됐지만, 사고 발생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원유 유출은 계속되고 있다. 유전 지역 주변에 음파 탐지를 하며 원인을 찾는다지만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당연히 기름유출량 추정치도 제각각. 10만t(태안 사고 기름 유출량은 1만t)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어 7월12일에는 펑라이 유전에서 약 150㎞ 떨어진 쑤이중(綏中) 36-1 해상 유전에서 제어기 고장으로 석유가 유출돼 인근 해역 1㎢가 오염됐다.
허베이성 러팅(樂亭)현 랑워커우(浪窩口) 소재 양식장에서는 가리비가 집단 폐사했고, 양식업자들은 매일 100㎏ 이상 떠오르는 물고기를 보며 가슴을 친다. 펑라이 유전은 중국 국영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와 미국 코노코필립스의 자회사인 코노코필립스중국석유가 각각 51%와 49% 지분을 갖고 운영하고 있다.
물론 유전 개발에는 사고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미 원유 유출사고도 여러차례 있었다. 문제는 그 대처에 있다.
펑라이 유전의 원유 유출사고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를 통해 처음 외부로 알려졌다. 유정 주변에 ‘이상한’ 유막이 발견됐지만 CNOOC는 쉬쉬했고, 정부 당국 역시 사고 발생 한 달이 지나서야 공식 시인했다. 여기에 당초 중국 정부 당국은 “기름이 번진 해역이 200㎡밖에 안 되는 소규모로 유출된 기름은 10t 이하”라고 했다. 당국의 발표에 의혹을 제기하는 의견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쑤이중 유전 사고는 펑라이 유전 사고와 달리 발생 당일 즉각 사고 사실을 공개했다. 네티즌들은 “눈감아주기 식 행정으로 사고를 키운 당국이 웨이보의 위력을 경험한 뒤에야 정신차렸다”며 비아냥댔다.
그렇다면 이러한 중국의 대응은 어떻게 봐야 할까. 사고를 축소, 은폐하려고 했다면 그 이유는 뭘까. 그 속내야 정책 결정자 일부만 알겠지만, 정부 당국으로선 분명 곤혹스러운 일이다.
2010년 7월 랴오닝성 다롄 항 인근에서는 송유관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석유의 대외 의존도는 50%를 넘었고, 수입액도 전년대비 29% 급증한 상황에서 강도 높게 추진하는 해상 유전 개발, 그 ‘바로미터’인 펑라이 유전의 생산중단은 당국으로선 국가적 위기로 느껴질 수 있다. CNOOC 관계자가 신징바오(新京報)를 통해 “매년 생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큰 부담을 느끼고 있고, 그만큼 안전문제가 커졌다”고 토로한 것도 당국이 느끼는 위기의 정도를 말해준다.
눈부신 성장 속 과실 누리지 못한 인민
내년이 후진타오(胡錦濤) 2기 체제가 물러나는 전환기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항상 그래왔지만, 전환기에는 체제안정이 여느 때보다 중요하기 마련이다.
보하이만 일대는 만년의 마오쩌둥(毛澤東)이 체력을 과시하기 위해 수영을 즐겼던 청정해안이지만 이미 ‘죽음의 바다’로 변한 상태다. 중국해양국은 “톈진, 랴오닝, 허베이성의 112개 쓰레기 처리장 가운데 80%가 보하이만에 폐기물질을 부어넣고 있다”고 밝혔고, 이 때문에 톈진시의 많은 양어장 어민들은 거액의 부채를 안고 이미 마을을 떠난 상태다. 하지만 톈진시와 랴오닝성 등은 보하이만 연해지구에 에너지시설과 항구, 공장시설을 지었고, 에너지와 물류 산업은 동북지역 경제발전의 핵심이 됐다.
‘눈부신 개혁개방 성과로 국가는 강국이 됐지만 인민들은 그 과실을 누리지 못했다’는 인민의 정서가 점철되는 곳이기도 하다. 소득불평등지수인 지니계수가 5.0(폭동을 유발하는 수준)을 넘은 중국에서, 그동안 억눌렸던 분노가 터져 나오면, 소요는 자칫 전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안정적 성장, 즉 ‘원쩡장(穩增長)’에 큰 걸림돌이다.
중국 당국이 펑라이 유전사고의 화살을 미국 석유업체 코노코필립스에 돌리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겠다. 당국과 언론은 “기름이 보하이만 연안에 도달해 양식장 물고기와 조개가 폐사하는데도 유전에서 기름이 계속 흘러나오는 등 코노코필립스 측이 대책마련에 소극적”이라고 반복해 주장한다.
또 하나. 법 제도 미비와 이에 따른 부정부패가 이번 사고처럼 환경 예방·대응 기능을 떨어뜨렸다고 보는 이가 많다. 이번 사고로 CNOOC 등에 부과할 배상금은 우리 돈 5000여만원에 불과한 것도 중국의 해양오염법과 해양생물보호관련 법규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한 대학교수는 기자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지방환경감독국은 중앙정부 산하기관이지만 지방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기 때문에 독립적인 기능과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종종 지방정부와 기업, 지방환경감독국이 공모해 환경오염을 자행하거나 묵인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펑라이 유전 사고는 진행 방향에 따라 중국체제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 정부의 펑라이 유전 사고 확인 요청에 중국이 거부한 것도 드러내기 싫은 중국의 속병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의 외교는 이러한 중국의 속병을 정확히 진단한 뒤 뒤따라야 한다. 우리로서는 “이웃나라를 배려하지 않는다”고 흥분할 수도 있겠지만, ‘불난 집에 부채질’할 필요는 없다. 보하이만은 우리 기업이 대거 진출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편 일의대수(一衣帶水)인 보하이만 원유 유출사고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현재로서는 단정하기 어렵다. “보하이만은 산둥반도와 랴오둥반도에 의해 폐쇄된 형태의 수역으로 여름해수가 그 안에서 회전하기 때문에 서해로 대량 유출될 가능성은 없다”고 중국은 설명하지만, 기름 유출로 오염된 물고기가 서해안으로 올 수도 있는 문제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서해 백령도에서 점박이물범에게 위성추적장치를 달아 이동경로를 조사했더니 물범이 보하이만으로 들어갔다가 돌아왔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정부의 철저한 관리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