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고 보니 이제껏 그들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에서 담론의 대상으로 부상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아주 간단한 이유에서다. 그들은 아직 젊다. 한창 세상으로 나올 준비에 바쁜 잠룡(潛龍)에 불과하다. 이들의 형상은 때론 선배의 뼛속에 각인된 이념의 틀로 해석됐고, 심하게는 좌우세력의 포섭대상으로 격하될 뿐이었다.
‘대졸 대통령론’이라는 허황된 논리가 횡행하는 시대라 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386 이후 세대를 학번으로 구분하자면 87학번에서 96학번 사이라 하겠다. 1987년의 시민혁명과 1997년의 외환위기 충격, 이어진 인터넷 혁명의 중간에 끼인 세대. 선배는 이들에게 ‘경제성장의 첫 번째 수혜자’라는 부러운 시선을 보냈지만, 정작 그들은 스스로를 입시전쟁과 취업난의 최대 피해자로 여길 따름이다.
법조계의 ‘대중 스타’이자 논란의 초점으로 떠오른 이정렬 판사(36·서울 남부지법 민사단독)에게 눈길을 돌려보자. ‘튀는 판사’라는 다소 야누스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그의 얘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세대론을 먼저 끄집어내야 한다.
세대를 거론하는 이유는 그가 내세울 만한 게 ‘젊다’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범한 길을 걸어온 ‘보통 판사’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로 스타가 되고, 내기골프 무죄 판결로 역적이 됐다고 해서 보수나 진보, 혹은 좌나 우를 거론하는 것은 시대를 오독(誤讀)한 결례다. 그의 표정에는 반(反)권위, 개인의 자유를 외치는 히피 정신과 법치(法治)혁명을 외치는 ‘범생 스타일’이 기묘하게 동거한다. 잇단 소신 판결은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한 ‘용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쯤에서 지난해 2월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단독 판사로 부임한 지 1년여 만에, ‘이정렬표 판결’이라는 선정적인 꼬리표가 붙은 그의 판결을 되짚어보자.
▲2004년 5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무죄 선고▲2004년 5월 전국공무원노조 조합원의 집단행동에 대해 선고유예 판결▲2004년 5월 탈북자를 위한 여권위조에 대해 무죄 취지 판결(난민 인정)▲2004년 6월 약식 기소된 목사에 실형 선고 및 법정구속▲2004년 7월 검찰구형 5년인 사건에 대해 10년9개월 선고(60세까지 교도소에 있으라는 취지)▲2005년 2월 억대 내기골프 사건 무죄 선고▲2005년 5월 배임혐의 노조 사무총장 구속영장 기각(절차상 위법)▲2005년 6월 ‘주부 가사노동은 단순 육체노동이 아닌 숙련노동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
“남보다 잔머리가 좋았을 뿐”
지난해 뜨거운 이슈가 된 병역거부나 내기골프 판결을 빼더라도 평범한 판결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그의 가치관은 상식을 뛰어넘는다. 그가 내린 판결은 자연스레 법원 내의 치열한 논쟁으로 이어졌고, 때론 검찰의 자존심에 흠집을 냈으며 나아가 정부 정책과 국가의 존립 근거에 의문부호를 던졌다. 선정적인 언론의 잘 포장된 먹잇감으로, 가십성 뉴스거리로 전락한 것은 당연한 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