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접속’으로 ‘흥행배우’ 반열에 오른 뒤 전도연은 극과 극을 오가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내 마음의 풍금’의 늦깎이 초등학생이 ‘해피엔드’에서 바람난 유부녀로 분해 알몸연기를 펼치고,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는 라운드걸 출신의 가수 지망생으로 분해 액션 연기에 도전했다. 지난해 개봉한 판타지영화 ‘인어공주’에선 1인2역을 매끄럽게 소화해 갈채를 받았다.
이 악물고 연기하다
전도연은 ‘접속’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됐을 무렵 자신을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확실하게 대응했다. 전도연이 얼마 전 한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 털어놓은 고백은 의미심장하다.
“‘영화감독과 그렇고 그런 사이다’ ‘몸으로 승부했다’는 식의 말을 들을 때마다 더욱 이를 악물고 열심히 연기했다.”
주위의 우려를 씻고 영화 ‘접속’은 개봉 20여 일 만에 전국 관객 100만 명을 동원하는 등 흥행에 크게 성공하고, 젊은이들 사이에 PC 통신 붐을 일으켰다. ‘접속’ OST도 높은 인기를 누렸다. 전도연은 단박에 대종상 신인여우상,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백상예술대상 인기상을 휩쓸었다.
1998년 ‘약속’에서 전도연은 조직폭력배 두목 공상두(박신양)를 사랑하는 여의사 채희주를 연기했다. 지금도 그 영화를 떠올리면 머리를 뒤로 단정히 묶고 흰 가운을 입은 채 험악한 분위기에도 주눅 들지 않고 두목의 상처를 치료해 주던 당찬 의사의 모습과, 사랑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달려가 키스를 나누던 로맨틱한 여인의 모습이 교차한다.
출연하는 영화가 잇따라 성공하며 당당히 ‘흥행배우’ 반열에 오른 전도연은 작정이라도 한 듯 연기의 폭을 넓혀갔다. 1999년 ‘내 마음의 풍금’에서 총각선생님을 짝사랑하는 늦깎이 초등학생을 연기했던 그는 곧이어 출연한 영화 ‘해피엔드’에서 불륜에 빠진 유부녀 역할을 맡았다. 단발머리의 순수한 초등학생 ‘홍연’에서 아픈 아기를 집에 재워놓고 나와 애인과 정사를 벌이는 ‘보라’로의 파격적인 변신은 관객들로 하여금 전도연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전도연이 새 작품에 출연할 때마다 파격적인 변신이 화제가 됐지만 그가 지금까지 맡은 역할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이라는 점. 이는 ‘배우 전도연’이 아닌 ‘인간 전도연’의 모습과 꼭 닮아 있다. 전도연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의 모토는 사랑이다. 난 사랑이 너무 좋다. 사랑에 관한 책이 좋고, 사랑에 관한 노래가 좋고, 사랑에 관한 영화가 좋다. 책을 사도 10권 중 8∼9권은 연애소설이다. 내 인생에서 사랑을 빼면 난 갑자기 할머니가 돼버릴 거다.”
그래서인지 전도연은 연기할 때만큼은 상대배우와 진짜 사랑에 빠진다. 촬영장에서는 같이 연기하지만, 촬영이 끝나면 언제 손을 잡고 포옹을 했냐는 듯 남남이 되어버리는 배우들도 있는 반면 전도연은 상대배우와 진짜 연애라도 하는 듯 친해져야 제대로 연기할 수 있다고 한다. 전도연 연기의 근원은 바로 넘치는 사랑에 있다. 그와 함께 작업했던 한 사진작가는 전도연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전도연은 에너지가 넘치는 배우다. 슬픈 표정을 지으라고 하면 조금 뒤에 아예 펑펑 울어버려 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다. 그 풍부한 감정 때문에 다양한 표정과 연기가 나오는 것 같다.”
전도연은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도 절절한 사랑을 연기하는 중이다. 그가 맡은 역할 윤재희는 대통령의 딸이자 외교관으로 ‘빵빵한’ 배경을 가졌지만 눈빛과 표정엔 어김없이 이루고픈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이 서려 있다.
“보이는 것에만 의존하는 현실적인 사람이 볼 수도 없고 손에 넣을 수도 없는 사랑을 기다린다. 내일은 믿지 않고 사랑은 믿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누구보다 강하고 당돌해 보이지만 스스로 나약하다고 말하는 전도연이 한 말이다. 사랑을 믿고 사랑에 집착한다는 전도연의 농익은 연기는 그의 계속된 사랑과 연기, 그리고 삶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