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학교 정문 앞에 카메라 메고 팔짱 끼고 비스듬히 서 있던 대학생 같은 사람이 바로 그였다. 우리 나이로 일흔여덟이라는데 이럴 수가! 믿을 수 없다는 얘기에 그는 재빨리 걸어가면서 말했다.
“비결을 말할까요? 그건 걷는 거예요. 난 수십년간 하루 3만보 이상 걸어다녔거든요. 아마 7~8㎞ 될 걸요. 카메라를 메고 시장통을, 사람 많은 거리를 날마다 걷고 또 걷는 게 내 일이었으니까.”
그를 따라 신호등을 건넜다. 멈추지도 않고 묻지도 않고 그는 곧바로 길 건너 대연성당 앞에 있는 자신의 살림집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아이고, 이거 집이 초라해서 큰일났네” 하면서도 앞장서서 쓱쓱 걷는다. 길가에는 그의 사진에서 흔히 보던 사람들, 애호박과 호박잎 서너 무더기뿐인 좌판을 펼쳐놓은 할머니, 낡은 담벼락에 기대 초점 없는 시선으로 담배를 피워 물고 선 초로의 남자, 한손은 뒷짐 지고 한손은 생선 두어 마리를 쳐들고 흥정하는 허리 굽은 아낙들이 보인다. 도처에 삶의 생생한 풍경이 널려 있다.
평소에는 지나쳐 보던 표정들이 리얼리즘 사진의 대가 최민식 선생을 뒤따라 걷자니 거울면이 햇살을 되쏘듯 내 눈을 부시게 한다. 의식주가 이뤄지는 삶의 현장은 어딜 가든 고만고만하게 누추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네 사는 세상이다. 관찰자가 아니라 그 풍경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 카메라 가방을 멘 최민식 선생이 걸어가고, 나는 감개무량해서 그 뒤를 따라간다.
네 평짜리 ‘작은 교보’
골목 안에 자리잡은 집은 좁고 나지막했다. 이 작은 집에서 그는 아내, 출가하지 않은 딸과 함께 살고 있다(3남1녀를 두었는데, 세 아들은 모두 장가를 갔다).길 건너 살 때는 제법 괜찮았는데 사정이 있어 집을 줄여 오느라 이렇다고 변명 비슷하게 말한다. 그러나 시멘트가 발린 조붓한 뜰 안에 시렁을 타고 오르는 포도넝쿨이 있고 일년초 몇 포기도 소슬하게 꽃을 피웠다.
미닫이문을 여니 한 서너 평 될까, 책으로 가득 찬 방이 나왔다. 사면에 재질이 다르고 제작 연도가 달라 보이는 나무로 짠 서가가 빽빽했다. 한쪽 벽면에 뚫린 공간 안으로 들어서니 거기 다시 책이 가득하다.
거기서 왼편 아래쪽 계단 아래 또 책이 가득한 공간이 나타난다. 벽과 담 사이를 이용해 책을 두는 방으로 개조한 모양이다. 전에 시인 장정일이 자기 방을 두고 했다는 말대로 사진가 최민식의 방 또한 ‘작은 교보’다. 세월에 노랗게 전 일본책부터 잉크 냄새 선연한 신간까지, 소설에서 철학, 시, 사회학, 역사, 심리, 그림책에 사진집까지. 출간 연도도 장르도 가히 전방위적인 책들이 밀집해 꽂혀 있다. 나는 희귀하고 엄정한 도서목록을 갖춘 서점에 들어온 기분이다. 바닥에 앉지 못하고 서가에 붙어 서서 책을 빼내본다. 손때가 가득한 책들이다. 곳곳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
“어떤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세 가지를 봐야 한답니다. 첫째 그의 서재를 보고, 친구를 보고, 부모를 보고….”
최 선생은 자신의 장서를 아끼고 자긍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낡은 책들이 겹쳐놓인 방은 이미 좁지도 초라하지도 않았다. 거기서 최 선생이 경험한 감동과 전율이 방 안에 견고하고 그윽한 아우라를 형성해놓고 있었다. 정규 학력이라곤 초등학교 졸업뿐인 그가, 세계가 주목하는 ‘스타 사진작가’의 반열에 오른 것은 발로 뛰는 성실성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더 근원적인 힘은 바로 이 서재에서 나왔음을 나는 대번에 알아봤다. 50년 전 일본에서 사진을 처음 공부할 당시의 교과서까지 그는 알뜰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기 와서 대개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이 많은 책을 정말 다 읽었느냐, 책 좀 빌려줄 수 없느냐…. 허허 참, 나는 그런 질문에는 대개 대답하지 않습니다.”
읽지 않으려면 가난한 살림에 왜 책을 사겠으며, 책이란 응분의 값어치를 치르고 직접 사서 읽어야지 빌려서 적당히 읽겠다는 태도로는 제대로 된 독서가 도대체 불가능할 거라는 의미의 무응답이다. 여러 장르의 책이 있지만 이 방의 중심을 차지하는 건 역시 사진집이다. 세기의 사진작가들의 작품집과 작품론이 한 벽면 가득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