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임검사 시절부터 ‘특수통’으로 이름을 떨친 그에게 대선자금 수사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안 돼 사상 처음으로 여야의 대선자금을 파헤친 수사는 그의 특별수사 인생의 하이라이트이자 라스트 신이었다. 한국 검찰사에 큰 획을 그은 이 수사로 그는 검사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누렸고 팬클럽까지 생기는 대중적 인기도 누렸다. ‘대선자객’ ‘국민검사’라는 애칭도 얻었다.
그러나 영광의 뒤안길은 쓸쓸한 법. 정치권과 기업체의 검은 거래를 샅샅이 파헤친 ‘공로’로 그는 대검 중수부장에서 부산고검장으로 영전했다. 대검 부장이 일선 지검장을 거치지 않고 곧장 고검장으로 승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그가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서울지검장을 원했다는 얘기는 검사들 술자리에서 소소한 안줏거리가 됐다.
2005년 4월 김종빈 검찰총장 취임 직후 그는 서울고검장으로 옮겨갔다. 수평이동이긴 했지만, 검찰 2인자로 불리는 대검차장과 더불어 총장에 이르는 가장 빠른 두 길목 중 하나이기에 그를 따르는 후배검사들로서는 기대를 걸 만했다.
그러나 검찰 주변에서는 그가 총장이 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추측이 불온한 삐라처럼 퍼졌다. ‘예지력’이 있는 검사들 사이에서는 오래 전부터 ‘상식’으로 통하는 얘기였지만. 그는 김 총장이 ‘지휘권 파동’으로 물러난 후 사법시험 동기인 현 정상명 총장과 함께 유력한 총장후보로 언론에 이름이 거론되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안 고검장은 인터뷰 중간에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다”고 손을 내저으며 ‘약속된 범위를 넘어선’ 질문공세를 여러 번 차단하려 했다. “(그런 얘기라면) 그만하겠다”며 몇 차례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기자의 만류로 다시 앉기도 했다. 총장 탈락 사유,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 등 몇 가지 민감한 사안에 대한 질문에 이르러서는 “(지금까지 얘기한 것) 다 무효다. 안 써도 좋으니 그만하자”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기자는 준비한 질문 중 일부를 거둬들이는 ‘양보’의 미덕을, 그는 ‘인내’의 미덕을 발휘했다. 스탠퍼드대 강연주제인 대선자금 수사 내용을 비롯해 법무장관 지휘권 파동,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의 주요 현안에 대해 논쟁적인 대화가 오갔다. 여기에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부드러운 얘기’가 덧붙여졌다.
‘must’이자 ‘can’
스탠퍼드대 강연은 이 대학 부설 국제학연구소 내 한국학연구소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강연 6개월 전에 제의를 받고 수락했다고 한다. 그가 스탠퍼드대 강단에 선 날은 공교롭게도 정상명 총장 내정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열린 날이었다.
“대선자금 수사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동안 공식석상에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기에 좋은 기회라 생각했고, 미국이라는 나라에 우리가 잘하고 있는 부분을 알릴 필요도 있겠다 싶어 응했습니다.”
청중은 대부분 한국학연구소 교수와 학생들. 한글로 써놓은 원고를 영어로 번역해 강연했다는데, 그의 표현대로라면 ‘거의 읽는 수준’이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동행한 통역이 도왔다. “하나만 더 받고 끝내겠다”고 ‘잘라야’ 할 정도로 질문이 많았다고 한다.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다면요.
“강정구 교수 사건과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대한 질문이었어요. 검찰 견제방안에 대한 질문도 있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