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속 시간을 잡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도 화려한 이력서와 잘 어울린다. 2~3분 남짓한 통화지만 시종일관 ‘~습니다’로 끝나는 종결어미에는 자신감이 실려 있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첫인상도 예상했던 그대로다. 선뜻 손을 내밀며 힘있게 악수를 청하는 모습, 자신 있는 미소, 정확한 눈맞춤. 역시 잘나가는 사람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저 잡초예요.”
잡초라니.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커리어 우먼의 자기소개치곤 지나치게 겸손하다. 당장 이력서의 몇 줄만 봐도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부는 언덕의 이름 모를’ 그 풀과는 거리가 있지 않은가.
“잡초기질이라고 할까요. 웬만해선 기가 안 죽습니다. 밟을수록 오기가 생기는 편이죠. (웃음) 미국 유학을 결정할 때도 별로 두렵지 않았습니다. 인생에서 몇 번 역경을 겪었는데, 그때마다 역경이 곧 스스로가 가장 많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란 걸 깨달았어요. 이겨내면 그 이상의 큰 선물을 받을 수 있거든요. 되레 좋은 시절이 오는 전조라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역경’이란 말도 의외다. 탄탄대로만 걸었을 법한 세련된 변호사가 겪은 역경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주저 없이 “긴 터널을 걷는 것 같던 결혼생활”이라고 말을 이었다.
“친구가 ‘네 인생에서 가장 잘못한 선택과 가장 잘한 선택이 뭐였냐’고 묻더라고요. 결혼이 최악이고 이혼은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답했습니다. 예전엔 전남편처럼 나쁜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용서했어요, 남을 미워하는 것도 쉽지 않잖아요.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 아닌가 해요. 그 때문에 공부도 하게 됐고 지금의 제가 있게 된 거니까요.”
김행선 변호사는 대학 4학년 때 전남편을 만나 졸업 후 바로 결혼했고 7년 만에 이혼했다. 구체적인 이유에 대한 언급은 피했지만 그와의 결혼은 “법정이혼 사유에 모두 해당하는 종합선물세트였다”고 한다.
“이혼 경력으로 크게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다만 주변에서 ‘왜 이혼했나’ ‘아이들은 어떠냐’는 상세한 개인사까지 질문해서 곤란할 때가 있어요. 또 화내면 ‘성격이 저러니까 이혼했지’ ‘이혼한 사람은 인생의 실패자’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더 자제하는 편입니다. 단점일 수 있지만 장점일 수도 있겠죠.”
따지고 보면 검찰직 7급 공무원이라는, 여성이 선뜻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게 된 것도 이혼이 계기였다. ‘자아성취’ 같은 거창한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서울지검 수사계장, 대검 강력부 계장
“양육비가 없어서 아이들을 남편한테 맡겨야 했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애들이 생각나서 마음 아팠습니다. 나이 든 여자를 뽑아주는 데가 많지 않고, 영어 과외만으로는 밥벌이가 안 돼 공무원시험을 준비한 겁니다. 사법고시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아 포기하고 수사같이 활동적인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아 검찰직을 지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