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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색한 골목길, 일제 흔적조차 아름다운 동네서 사는 즐거움”

‘西村 지킴이’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교수

“옹색한 골목길, 일제 흔적조차 아름다운 동네서 사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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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복궁 서쪽 마을 ‘서촌’은 서울의 지난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 이곳의 경관과 문화를 지키는 데 앞장서온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서촌에서 진정 가치 있는 것은 한 채 한 채의 집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통해 형성된 골목길과 그 안에 자리 잡은 주민 공동체”라고 말한다.
  • 그와 함께 서촌 골목을 거닐며 숨은 매력을 찾았다.
“옹색한 골목길, 일제 흔적조차 아름다운 동네서 사는 즐거움”
로버트 파우저 교수(51)는 최근 서울 종로구 체부동 118번지에 집을 마련했다. 1936년 지어진 65㎡(약 20평) 남짓한 크기의 한옥이다. 묵직한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자 ㄱ자형 본채와 두 칸짜리 별채, 아담한 장독대가 눈에 들어왔다. 넓지 않은 마당 가득 초가을 햇살이 들어와 있었다.

“여기 앉으면 하늘이 바로 보여요. 남향이고, 근처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좋죠.”

파우저 교수는 툇마루에 앉아 유창한 한국어로 집 자랑을 했다. 미국 미시간 주에서 나고 자란 미국인인 그는 2008년 9월 서울대 교수가 됐다. 국어교육과 사상 최초의 외국인 교수라 화제였다.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든 건 남다른 ‘서촌’ 사랑이다. 서촌은 경복궁 서쪽 동네를 일컫는 말. 그의 집이 있는 체부동을 비롯해 효자동·옥인동 등 15개 법정동을 아우른다. 파우저 교수는 이곳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리는 데 관심이 많다. 지난해 6월 ‘서촌주거공간연구회(서주연)’를 만들고, 최근까지 회장으로 일했다.

“처음엔 북한산과 인왕산 능선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한옥의 풍경에 반했어요.”



교수 임용 후 서울대 기숙사에 머물며 살 집을 찾아다니던 때였다. 마천루가 즐비한 도심 한복판에 펼쳐진 평화로운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미국에서 태어나 아일랜드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일본에서 교수를 하는 등,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살았지만 서촌 같은 경관은 처음이었다. 곧 누하동에 집을 구했다.

살아보니 더 좋았다. 양팔을 벌리면 손이 벽에 닿을 만큼 비좁은 골목, 조선 말기·일제강점기·근대화 초기 건축의 특징을 낱낱이 보여주는 낡은 집들…. 지척의 청와대 때문에 오랫동안 개발의 바람이 비껴간 마을은 전체가 ‘살아 있는 역사박물관’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지도를 들고 걸어도 길이 보였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하나씩 알아나가면서, 일견 어지럽고 옹색해 보이는 마을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아시아를 동경하던 소년

“옹색한 골목길, 일제 흔적조차 아름다운 동네서 사는 즐거움”
외국인이 어쩌면 그리 순식간에 서촌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 배경에는 파우저 교수의 남다른 이력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군인으로 일본에서 근무했다. 교토의 전통 건축과 일본인의 삶에 대한 아버지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파우저 교수를 늘 설레게 했다. 미시간대 일문학과에 진학한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일본어에 능통하다. 한국어를 배운 건 그 뒤였다.

“1982년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한국에 한 번 들른 적이 있어요.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느라 시내 곳곳에서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그 역동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사람들도 수줍음 많고 냉정한 편인 일본인과 달랐어요.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네고, 기차에서 만나니 김밥과 귤을 건네주더군요.”

마침 ‘아시아 언어를 하나 더 배우면 좋겠다’ 싶던 터라 이듬해 서울에 1년간 머물며 한국어를 배웠다. 미국에 돌아가 응용언어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고려대와 KAIST 등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이후 다시 박사학위를 받고 일본 교토대 등에서 교편을 잡다가 서울에 왔다. 2006년 일본 가고시마대에 ‘교양한국어’ 강의를 개설해 일본 학생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에게 한국은 오랫동안 꽤 친숙한 존재였던 셈이다.

“일본에 있을 때도 계속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10여 년 만에 돌아온 서울은 많이 낯설더군요. 제가 기억하는 1980년대의 상점과 간판, 거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서촌 정도뿐이었죠. 아주 먼 옛날과 가까운 과거가 뒤섞인 풍경이 반가웠습니다.”

건축가 임형남은 이런 서촌을 일러 ‘풍화된 동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시간의 순례가 가능한 곳’이라고 했다. 파우저 교수를 매혹시킨 것도 그것이다. 조선시대 사대부 문화의 전통에 머물러 있는 북촌 한옥마을과는 다른, 서촌만의 멋에 눈을 떴다.

골목 마당의 정겨움

그가 발견한 서촌의 매력을 보기 위해 함께 길을 나섰다. 파우저 교수의 집이 있는 체부동 118번지는 ‘붉은 벽돌 골목’이라고 불린다. 붉은색 벽돌로 담을 쌓은 집, 외벽에 붉은 타일을 붙인 한옥이 모여 있어서다. 파우저 교수는 “1930년대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당시 경성은 급속히 커졌어요. 사람이 모이면서 집이 많이 필요해졌죠. 그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큰 필지를 20평 내외의 작은 필지로 쪼갠 뒤 각각에 집을 지어 파는 게 유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종래에 없던 ‘도시형 개량 한옥’이 나타났다. 크기는 작고 꾸밈은 단출한 장삼이사의 살림집. 세월이 흐르면서 내려앉은 기와, 부서진 담엔 시멘트나 타일을 덧대 고친 흔적이 역력하다. ‘가회동 31번지’의 웅장한 한옥과는 출발부터 다른, 한때 서울의 가장 대중적인 주거공간이었을 이런 집은 이제 보기 힘들다. 서촌에도 개발이 허용됐다면 일찌감치 헐렸을 게 분명하다. 파우저 교수가 누하동에 정착했을 때 서촌은 막 그런 길로 나아가려는 참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개발제한 조치가 완화되면서 낡은 한옥 자리에 임대용 고층 건물을 짓는 이들이 나타났다. 파우저 교수의 집 근처에도 7층짜리 건물이 섰다. 산자락과 나지막한 집들이 어우러지는 서촌의 풍광이 차츰 사라져가는 데 낙담한 그는 오래지 않아 서촌을 떴다. 2010년 초, 북촌 계동의 한옥으로 이사했다. 체부동 한옥은 그가 ‘서촌에서의 삶’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오랫동안 발품을 판 끝에 마련한 것이다. 북촌에 살면서도 마음은 늘 이쪽을 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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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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