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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른 쇠와 강한 쇠가 만나야 좋은 칼 나옵니다”

복합강으로 칼 만드는 단조장 주용부

“무른 쇠와 강한 쇠가 만나야 좋은 칼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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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용부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무른 쇠와 강한 쇠를 붙인 복합강으로 칼을 만드는 대장장이다. 복합강으로 만든 칼은 예리하면서도 튼튼하고 잘 무뎌지지 않는다. 그래서 회칼처럼 신선한 재료를 다루는 칼은 복합강으로 만든다. 이런 기술은 쇠를 다루는 우리 전통 단조(鍛造)기법에서 나온 것이지만 오히려 일본에서 계승·발전했고 우리나라에서는 맥이 끊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용부 대장장이가 되살려낸 단조기술로 만든 회칼은 독일제나 일제에 뒤지지 않으면서도 가격은 매우 낮은 편이다.
“무른 쇠와 강한 쇠가 만나야 좋은 칼 나옵니다”

칼의 마무리는 날 세우기다. 날이 잘 섰는지 비춰보는 주용부 명장.

쇠는 단단해서 좀처럼 변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오행에서 변형이 가능한 요소가 바로 쇠(金)다. 물(水)은 유연하나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고, 나무(木)로는 갖가지 기물을 만들 수 있지만 팽창과 수축을 거듭하며 끝내 뒤틀리곤 한다. 흙(土)은 구워 그릇을 만들 수 있지만 흙의 으뜸 기능은 어디까지나 곡식을 기르는 것이다. 불(火)은 말할 것도 없다. 불은 다른 물질을 변형시킬 수는 있어도 불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자(箕子)가 주나라 무왕에게 가르쳐주었다는 홍범구주(洪範九疇)에서 오행을 말할 때 쇠를 종혁(從革), 즉 조작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장장이 주용부(74)가 쇠를 좋아하는 것도 그 변화하는 성질 때문이다.

“무른 쇠도 단련하면 강해지고, 또 쇠로 기구나 식기, 칼 등 무엇이든 만들 수 있잖습니까. 세상 어떤 것도 그렇게 변신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쇠가 좋습니다.”

쇠로 농기구도 만들고 무기도 만들 수 있다. 예전에는 전쟁이 끝나면 무기를 거둬들여 녹여서 농기구를 만듦으로써 평화가 도래했음을 알리기도 했다. 농기구는 무기에 비해 확실히 건설적인 기구지만, 쇠 자체의 예리함과 차가움, 단단함과 유연성 등 모든 속성을 응축해 보여주는 것은 역시 칼이다. 그래서 칼은 쇠가 가장 아름답게 완성된 모양이라고도 한다. 천하의 대장장이들이 만들었다는 보검이 전설로 남은 것도 아마 이 때문이리라. 대장장이의 솜씨는 결국 칼 만드는 솜씨에 달려 있으니까.

그런데 대장장이에게 칼 만드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한가. 칼 모양은 단순한데, 왜 복잡한 농기구나 바퀴를 만드는 것보다 어렵다고 할까?



“칼은 강한 쇠로 만들면 날을 날카롭게 벼릴 수는 있으나 잘 부러지고, 또 연한 쇠로 만들면 부러지지는 않지만 칼날을 예리하게 세울 수가 없습니다. 좋은 칼이 되려면 강도와 연성을 다 갖춰야 하는데, 이게 정말 쉽지 않거든요.”

결국 해결책은 무른 쇠와 강한 쇠를 붙여 만드는 것일 텐데, 녹는 온도가 다른 무른 쇠와 강한 쇠를 붙이는 것은 이론상 불가능하다.

“제가 명장 심사를 3년여에 걸쳐 받았는데, 대학 금속학과 교수가 와서 어떻게 연철과 강철이 서로 붙느냐며 믿으려들지를 않더군요.”

그는 이 말을 하면서 화난 표정을 짓는 게 아니라 싱글거렸다. 비법을 알고 있는 사람의 여유랄까, 자부심이 가득 담긴 웃음이다. 그 웃음 속에는 대장장이로 살아온 그의 60년 세월도 녹아 있다.

주용부의 운명은 전쟁과 함께 급변했다. 그가 대장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6·25전쟁 때인 열서너 살 무렵이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무엇이든 만들기 좋아하는 소년은 아마 뛰어난 기계공학도가 되었을 것이다. 청주에서 단란하게 보냈던 그의 어린 시절은 전쟁이 터지면서 끝이 났다. 전쟁 통에 아버지가 실종되면서 장남인 그는 어머니와 네 동생을 부양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전쟁이 한창인 때 졸지에 가장이 된 열서너 살 소년이 선택할 수 있는 일로 무엇이 있었을까. 그래도 그에겐 몇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처음에는 외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2000평 땅에 농사를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농사를 지어본 적 없는 그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목수는 깎는 일을 주로 하니 깎아먹어 못살게 되지만 대장장이는 잘산다’는 말들을 했어요. 괜히 하는 말이었지만 어린 마음에 대장장이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지요.”

전쟁 때문에 대장장이 된 소년

“무른 쇠와 강한 쇠가 만나야 좋은 칼 나옵니다”

무른 쇠와 강한 쇠를 이어붙여 칼 모양을 잡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칼들(위).아직 완성되지 않은 칼들. 칼을 완성하기 위해선 메질, 담금질부터 갈기, 날세우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무엇이든 잘 만드는 솜씨를 지녔으니 그는 목수가 되었어도 성공했으리라. 그렇지만 그는 목수보다 왠지 대장장이에 마음이 갔다.

“어릴 때 읽은 오성과 한음 이야기 중에 대장간에 놀러간 오성이 장난으로 궁둥이에 정을 끼워오다 대장장이가 일부러 놓아둔 달군 정에 궁둥이를 데는 이야기를 재미나게 읽은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다 동무들과 전쟁놀이할 때도 총이니 칼이니 여러 가지 모양을 곧잘 만드니 어른들이 ‘너는 커서 대장장이가 되려고 하느냐’는 말씀을 많이 하셨고요.”

말이 씨가 되었는지, 아니면 어차피 대장장이가 될 운명이었는지 그는 대장간을 찾아갔다. 그러나 너무 어린데다 덩치도 작아 퇴짜를 맞았다.

“어릴 때 씨름을 하면 열 명 중 일곱 명 이상은 이길 정도로 힘이 좋았지만 키도 작고 덩치도 크지 않으니 일을 안 시켜주더군요. 그래서 우마차공장에 들어가 느티나무로 바퀴를 만들고 쟁기 같은 농기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톱질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마침 대장간에서 일해달라는 연락이 와서 그는 대장간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밑의 사람에게 손찌검하는 대장장이의 버릇 때문에 일꾼들이 다 나가버린 ‘덕택’이었다. 어쨌든 그는 부지런히 대장간 일을 배웠다. 새벽 3시면 대장간에 나가 소나 말에 박는 징이나 편자 등 간단한 것을 먼저 만든 다음 아침을 먹은 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아침부터 먹고 일하면 금방 배고파지니까 우선 일을 시킨 다음 먹이고 또 일을 시키기 위해서였지요. 대장간 집 딸이 풀무를 불어주고, 키가 작은 저는 일할 때 디딤대를 두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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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심│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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